심리치료를 위한 글쓰기 수업 3강

주제 :: 가족

by 전대표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울산 북구 보건소 내에 위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한 자료를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3강 수업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반갑습니다. 한 주 동안 별일 없으셨나요?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춥네요. 선생님들도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글쓰기 수업을 한다고 해서 글쓰기에 대해서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저도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강의를 하지만, 글쓰기라는 게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니라서 정확히 확답을 드리는 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한가지 분명하게 이야기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매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우리의 글쓰기 실력이란 것도 오늘보다 다음주, 다음주보다 그 다음주가 더 좋아질 거라는 사실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이 자리에 앉아계신 선생님들의 생각과 마음도 훨씬 더 깊어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매주 조금씩 다른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데요. 주제를 정하면서 저도 나름대로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가족>이라는 주제를 갖고 글을 써볼까 합니다.

가족_1.jpg 가족은 유일한 무촌이며, 유일한 일촌이다. unsplash

<가족> 이라고 하면 어떤 게 좀 떠오르십니까?

행복한 가정, 좋습니다.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지구촌, 네 좋습니다. 굉장히 수준 높은 단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응도 좋고, 말씀해주신 단어들도 너무 좋네요.

저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가족이라고 하는 이 존재는, 사는 동안 우리에게 가장 기쁨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반면에 어떤 면에서는 살면서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척 중에 한 명이 결혼을 해서 결혼식을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별로 편하지가 않은 거에요. 가족인데, 명절 때만 보는 사이라서 결혼식을 가도 굉장히 어색한 겁니다. 취업 준비한다, 어디 유학 간다, 학교나 직장 업무 때문에 바쁘다, 이런저런 이유로 2-3년 동안 못 본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관계가 서먹서먹해지는 겁니다.

물론 가족입니다. 피가 섞인 가족이죠. 어릴 때는 친하게 지냈던 기억도 납니다.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게임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 사고라는 것을 할 만한 나이가 된 뒤에 만나 보니, 그냥 남보다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길 가다가 전단지 뿌리는 분들과 마주치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게 그런 가족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까운 남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더라고요. ‘가족이라는 게 이런 건가? 어릴 때는 연락도 자주 하고, 친하게 지냈던 거 같은데, 나이가 들어보니 가족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관계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까지 가족을 통해서 상처를 주고 받은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아주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고, 아주 형식적으로 축하하는 그런 관계가 저는 참 어색했어요.


“재수씨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

"그래 축하한다, 다음 명절 때 보자.”


아주 영양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사만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게 가족이라는 겁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저는 먼 사촌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많잖아요. 부모가 자식을 무시하고, 자식이 부모를 무시하고, 부부가 서로를 무시하는 그런 가족.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는 그런 가족도 많지 않습니까? 옆집 사람 같으면 “내일 연락드릴게요, 내일 봐요. 다음 주에 커피 한잔 해요.” 이런 게 되잖아요. 가족인데 “다음 명절 때 봐요.” 이러고 있는 거에요. 1년에 두 번 보는 사람들이 가족인 거지요.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남보다 못한 관계인 경우도 있는 겁니다. 아닌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요.

가족_2.jpg 가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중 하나. unsplash

반면에 가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아주 친한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형, 동생 하는 사이인데, 이 친구도 저도 해외 봉사를 다녀왔어요. 둘 다 남아공남아프리카공화국, R.S.A으로 다녀왔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주 친절한데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빈부의 격차가 상당히 심한 곳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제가 있는 곳은 평범한 동네인데, 1시간만 딱 걸어가면 아주 빈민촌, 말 그대로 판잣집인 사람들이 100만 명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산다고? 정말?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


그런 생각이 드는 곳에서 100만 명이 살아요. 근데 거기에서 차를 타고 15분만 가면 매일 수백, 수천 달러를 카지노에 쏟아 붓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있는 겁니다. 그 동네에는 넬슨 만델라(故Nelson Rolihlahla Mandela.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세계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며 동시에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였다.)의 별장도 있어요. 불과 빈민가에서 차를 타고 10분, 15분 이동해왔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런 시공간, 그러니까 아주 빈부 격차가 심한 곳에서 20대의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온 이 친구와 저는 사고思考의 흐름이 굉장히 비슷하겠죠. 주변 친구들을 둘러봐도 다 토익 공부하고, 무슨 자격증 준비하고, 공기관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할 때 이 친구랑 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활동을 했거든요. 호주도 가고, 태국도 가고, 홍콩도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근데 이 친구가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 바람에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병원생활을 했는데, 저랑 아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걸 10년 가까이 했으니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겠습니까?


편지를 보낼 때 서두는 늘 똑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벗 아무개에게”


그럼 이 친구도 똑같이 답장이 와요.


“사랑하는 준우 형에게”


이런 편지를 근 10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주고받으니까 관계가 어떠했겠습니까? 보통이 아니었겠지요? 이 친구가 자주 그런 얘기를 해요.


“나는 다른 사람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준우 형은 죽을 때까지 믿는다.”


라고요.


그래서 매일 통화를 주고 받습니다. 남자 둘이서 매일 통화를 주고 받는 거에요. 무슨 연인사이도 아닌데요.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인 거죠. 그래서 저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피로 맺어진 관계, 족보상의 관계’ 이런 것들보다 ‘나랑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나와 가족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떤 지인이 있습니다. 이분은 직업이 공무원이세요. 환경미화원이신데, 젊고 일도 잘해서 아주 인정을 받는 분입니다. 저보다 형님이라서 형님, 동생 하는 사이인데요. 하루는 연락이 와서 질문을 하는 거에요.


“준우야. 책을 좀 읽고 싶은데 뭘 읽어야 되냐?”

“그러시군요. 이러이러한 책 먼저 읽으시면 됩니다.”

“아, 그래 고마워.”


그리고는 얼마 뒤에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나 택시 기사 준비하고 있어.”


‘이게 무슨 소리야? 직업이 공무원인데 갑자기 택시 기사라니?’ 깜짝 놀랐지요. 그리고 또 얼마 있다가 이야기합니다.


“택시기사 준비하면서 무슨 무슨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어.”


이쯤 되면 답이 나오잖아요. 주변에서 만류를 했지요.


“그냥 한 가지만 해라. 공무원이지 않느냐? 수익도 안정적일텐데 뭘 따려고 하느냐? 아서라.”


그리고는 또 얼마 지나서 “나 무슨 기사자격증 준비하고 있어.” 그러는 거예요.

이쯤 되면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죠. 일이 힘든가, 가정이 좀 힘드나, 싶고요. 물론 그런 건 아니겠죠. 다 나름의 사연이 있었더라고요.

이 분은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4살인가, 5살 때 돌아가신 거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기셨는데, “내 가장 친한 친구 아무개가 당신이랑 우리 아들 지켜줄 거야.”하셨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그 친구한테 이렇게 이렇게 도움도 받고, 이런 거 물어보고 하면 될 거야.” 그렇게 얘기를 하고 돌아가신 거에요.

옛날에 여자분들이 결혼을 일찍 했잖아요. 23, 24살 되면 결혼 하고 애 낳고 했지요. 이 분의 어머니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니까 남편이 이야기한 친구에게 “혹시 이것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하면서 지내다가 정이 생기고, 결국 같이 살게 된 거예요.


그런데 남편의 친구라는 사람, 제 지인의 새아버지고 어머니의 새 남편이죠, 이 사람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주먹을 휘둘렀답니다. 어머니도, 이 분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거지요. 그래서 이 분은 어릴 때부터 새아버지를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오줌을 쌀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는 거예요.

하루는 TV를 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서 웃었대요. 애들이 잘 웃잖아요. TV 보면서 웃는데 “너 이 새끼야, 왜 웃고 있어?” 하면서 옆에 있던 몽둥이로 머리를 때렸대요. 이 분이 머리를 맞고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답니다. 그게 8살, 9살 때 있었던 일이에요. 그런 일을 어릴 때부터 겪어온 겁니다. 어머니도 많이 맞으면서 생활하는 걸 봤고, 자기도 맞고 자랐고요. 너무너무 힘든 학창시절을 보낸 거죠.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늘 집이 풍지박산 나 있더래요. 냄비랑 밥그릇이 마당에 뒹굴고 있고, 어머니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고.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란 이 분에게 가족이라는 것, 조금씩 나아지는 인생이라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이 분이 좀 더 컸을 때 엄마랑 새아버지도 갈라섰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분이 20대 중후반이 되었을 때, 새아버지라는 사람이 다시 찾아온 거에요. 어린 시절에도 늘 술에 취해있는 모습으로 기억하는데, 그 날도 술에 취해서 “너거 엄마 어디 갔노? 데리고 와라.” 그러더래요. 근데 이제는 어린 애가 아니죠. 젊으니까 힘도 세고 날렵하잖아요. 군대도 다녀왔고, 운동도 많이 해서 몸도 좋아졌고요. 이 분 표현에 의하면, 새아버지라는 사람의 멱살을 잡아서 한 바퀴 돌려 패대기 친 다음에 얼굴에 주먹을 갖다 대고 “두 번 다시는 엄마 건드리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내쫒아버렸대요. 그 때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마음에서 조금은 두려움이 올라오더랍니다. 그만큼 이 분에게는 악몽과 같은 유년시절이었고, 악몽과 같은 학창시절이었다는 겁니다.


이분도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했어요. 애들도 있습니다. 이분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전에 가져보지 못한 생각을 하는 거에요. ‘나는 절대로 내 아버지처럼 아내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절대로 새아버지처럼 술에 취해서 아내를 괴롭힌다’하고 생각한다던지, ‘나는 절대로 가족에게 불합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 나는 늘 도전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겠다.’ 하는 식으로요. 그렇다 보니까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면 뭘 해야 되지? 무슨 자격증이라도 준비해 볼까?’ 하면서 생각해낸 것들이 자격증을 준비한다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거였겠지요. 이분이 살아온 삶의 환경 속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나온 것들이 그런 것들인 거지요. 그 모든 것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던 겁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도 ‘아들, 딸에게 “우리 아빠는 항상 도전하는 사람이었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뭘 해야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분에게는 가족이라는 것이 굉장히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분은 절대로 내 아들 딸에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거에요. 굉장히 멋진 마인드죠.

가족_3.jpg 가장 작은 조직, 그러나 가장 위대한 울타리. unsplash

제가 결혼할 때 아내가 “오빠, 이제 우리는 무촌이야.” 하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부부사이에는 촌수가 없다는 거죠.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곧 나다.” 그게 굉장히 크게 들렸어요. “내가 잘못한 건 내 잘못이고, 니가 잘못한 건 니 잘못이야.”이게 아니라, “내가 잘못한 건 내 아내 잘못이고, 내 아내가 실수한 건 나의 실수다.” 이게 가족이라는 거지요. 아들이 생기니까 이 말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라구요. “내 아내가 아들 교육을 잘 못한다? 이거는 내 실수야, 내가 아들한테 뭔가 잘못한 게 있다? 이거는 내 아내의 실수야.” 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합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 그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아들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심이 많이 생깁니다. 저도 오랫동안 교육자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여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마음으로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경외심과 존경심을 갖고 대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진리는 아닐 수 있을지언정 나에게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는 분은 아니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의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 식의 관계가 제가 생각하는 부모, 나아가 가족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아들을 키우면서 늘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절대 내 아들에게 명품 입히지 않겠다.


항상 이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좋은 옷 입고, 좋은 것들만 걸치고 다니는 것은 결코 자녀 교육에 좋지 않다는 생각을 늘 갖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들한테 수백만 원짜리 옷이나 신발을 사줄 일은 없다,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애들은 금방 크는데, 거기에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옷이나 신발, 가방같은 걸 투자하고 싶진 않은 거에요. 대신 누가 깨끗한 옷 물려주면 그거 입히고, 씌우고 그랬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데 전혀 문제가 없더라구요.

그러다 하루는 아주 예쁜 가디건, 모자, 바지를 물려받은 게 있어서 아들한테 입혀본 적이 있습니다. 태어난 지 11개월째 되던 무렵이었던가, 그랬어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사진 속 아들을 보는데,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고요.


늘 새 제품 써야 되고, 늘 좋은 것 써야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차도 새 차만 타야 되고, 아기 유모차도 중고로 안 사고 새 제품을 사서 쓰다가 중고로 파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냥 그 분들의 스타일인 거죠. 저는 누가 “아들 옷이나 유모차 쓰던 게 있는데 필요하면 드릴까요?”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덥석 받는 스타일이거든요. 얼마나 좋아요? 깨끗하게 쓰던 걸 공짜로 주는 건데요.

근데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드는 겁니다. 더 좋은 걸 해주고 싶고, 더 좋은 걸 입혀주고 싶고, 더 좋은 걸 신겨주고 싶은 마음이 막 들더라고요. 그 사진을 보일 때마다 마음이 자꾸 울컥울컥해요. 돈이 없어서 안해주는 것도 아닌데, 돈이 없어서 못사주는 것도 아닌데, 괜히 그런 기분이 드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어릴 때 나온 분유통에는 외국 아기가 웃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빵긋빵긋 웃는 애기 얼굴이 그려져 있는 분유통이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잠깐 월세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주인집 바깥 화장실을 같이 썼어요. 근데 그 화장실에 외국 아기가 웃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는 분유통이 휴지통 겸 담배꽁초 버리는 재떨이 겸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 분유통을 그 쓰레기통으로 쓰는 분유통을 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 분유통을 매번 보면서 ‘나는 왜 어릴 때 우리 애들한테 이거 하나 못 먹였지?’ 하는 생각이 그렇게 많이 드셨대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냥 엄마 젖 먹고 잘 자랐는데? 저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가?' 생각했죠.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 부모가 되어 보니 조금 이해가 되는 겁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더 좋은 걸 해주고 싶고, 더 잘해주지 못한 걸 미안해하는 게 부모구나.‘하는 생각을, 저도 아들을 키우면서 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가족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되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감동과 배려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타인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오직 가족만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어느 지인이 해주신 말씀입니다.

가족_4.jpg 때때로 가족은 가장 큰 상처와, 가장 큰 행복을 번갈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unsplash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족은 가장 많은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겪지 않는 이상, 주변 사람들은 아주 큰 상처를 주지는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쿠사리 먹는다’고 하죠. 잔소리 듣고 실수에 대해 질책을 받는다, 뭐 그런 표현입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런 말들이 기분 나쁘고 속상하긴 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냥 짜증나고 기분이 나쁜 정도인 셈이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많지는 않아요. 근데 가족이라는 것은 남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상처를 주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장 많이 주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너 같은 자식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는 어떻게 된 애가 그것도 하나 못하냐?”

“니가 그러고도 자식이냐?”


마음에 굉장히 큰 상처를 남기는 건 결국 남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가장 기쁨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그래서 어떤 가족을 만들 것인가, 또 어떤 가정을 꾸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저에게 아주 큰 중요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가족이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글을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세분화시켜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족이라고 하는 대주제가 있으면 거기에서 조금 들어가서 나에게 있었던 아빠의 존재, 혹은 엄마의 존재,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줬던 여동생, 상처를 줬던 남동생, 그런 식으로 정리해 들어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가족 중에서도 누구인지 정해서 써보신다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사고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차분하게 가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생각해서 한번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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