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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May 31. 2024

일과 출산, 육아 양립 가능하긴 한 건가?

경제 구조의 문제

대표적인 여성 CEO, COO Marissa (야후), Sheryl (페이스북)


오늘날 일터에서의 여성 인권 향상을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는 바로 미국, 유럽의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입니다. (대체로 백인, 일부 인도인, 동양인). 그녀들은 아이 둘, 셋을 낳고 초인적인 힘으로 밤늦게 아이를 재우고 노트북을 펴서 일을 하며,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은 가능하며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여성 CEO들이 회사에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 절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국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의 여성은 고학력 전문직이 아니며, 금융계, 법조계, 그 외 고소득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과연 대다수의 여성들이 놓여 있는 현실에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한가? 라고 물어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노동의 유연성


아이를 가진 여성들에게 직장에 바라는 점을 물어보면 대부분 노동시간과 유연성에 관련된 것입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육아 휴직을 오래 쓰기가 겁난다던지, 아이가 수시로 아파서 데리러 가야 하는데 일찍 퇴근할 수 있는지 등입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육아휴직이 1년인 한국보다 짧은 대신, 여러 번 쪼개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사실상 근무시간을 줄이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즉 아이를 키우기 좋은 직장은 남편, 아내 모두가


1.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거나

2. 노동하는 장소와 시간을 유연하게 정할 수 있는 직장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북유럽식 육아 모델의 근간입니다. 아이가 생겼는데 똑같은 시간을 일에 투자하라고 한다면 슈퍼우먼이 되라는 주문이나 다름없습니다.


육아휴직에 대한 경향신문 인터뷰, 2023

하지만 한국은 북유럽이 아닙니다. 제조업, 자영업 비중을 보면 한국은 오히려 멕시코에 가깝지 미국이나 북유럽과 같은 경제구조라고 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노동시간도 OECD 중 탑을 달릴 정도로 가장 길고, 노동의 형태도 기계적으로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형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위주의 경제에서는 넷플릭스처럼 한두 명의 인재가 수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일한 시간만큼 비교적 정직하게 아웃풋이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유연근무 역시 일부 전문직, 프리랜서를 제외하면 한국 직장인에게는 딴 나라 얘기입니다. 2022년 기준 미국, 캐나다가 일주일에 1.6에서 2.2일을 재택근무하는 반면 한국은 평균 0.5일로 브라질, 인도보다 낮은 일수를 기록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재택근무 없고 휴가가 빡빡한 소규모 직장에서 일했을 당시 한 명이 육아휴직으로 쉬고 온다고 하면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겉으로는 축하한다 말해도 모두들 나한테 무슨 일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해하는 것이 현실이었으며, 새 직원을 뽑아다가 업무를 처음부터 가르치고 밀착 지도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절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더 일한다고 인센티브도 딱히 없는 공적조직인 경우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에 아무도 출산 소식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이익을 모두 상쇄할 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회사는 일단 우량 중소기업 이상일 것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직원들의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이 일 많아진다고 짜증 내는 수준이면 육아하기 좋은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아이 데리러 갈게~ 하고 오후 1시, 2시에 퇴근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무런 불이익 없이 수시로 조기퇴근 가능한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군대 그리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간호사 집단처럼 어디 다들 힘들게 일하는데 꿀을 빨려고 해? 이런 반응밖에 안 돌아옵니다.




고소득 전문직도 예외는 아니다


육아 휴직에 관대하고, 최고급의 의료보험을 지원해 주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대기업이라도 양립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습니다. 위 그래프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교수가 조사한 MBA 졸업생들의 연봉 증가 양상입니다. 많은 졸업생들은 컨설팅, 뱅킹, 빅테크 등 연봉 1억을 가볍게 넘기는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평균 MBA 졸업하는 나이가 30세라고 한다면, 시작 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연봉은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성의 평균 연봉은 해가 다르게 승승장구하는 반면 여성의 연봉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6-7년 차에 정체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왜 이런 갭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골딘의 노벨상 연구는 기존에 "젠더 페이 갭"으로 불리던 임금격차의 대부분의 원인은 출산에 있음을 밝혔습니다. 출산을 하고 노동시간을 크게 줄이거나 아예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경우, 빠르게 움직이는 컨설팅펌, 투자은행, 로펌에서 출산을 하지 않는 남성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똑같이 MBA를 졸업했어도 남성은 금방 매니저급으로 승진해 연봉 2억을 넘겨있지만 출산한 여성들은 공백기 때문에 1-2년이 더 걸립니다. 이게 골딘 교수가 말한 고소득, 고강도 직종(greedy jobs)일수록 오히려 출산으로써 여성이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역설입니다.




한국의 경제구조상 당분간은 단축 근무, 유연 근무가 가능한 직장이 많아지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꿈꾸는 IT, 서비스업, 금융업은 구조상 많은 인원을 채용하지 않는 직종이고, 앞으로 AI덕분에 그 수가 더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제조업 인력이 AI 대체에는 더 안전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과 북유럽의 사례를 가져와 벤치마킹만 하면 저출산이 해결된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아직 많습니다.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교수님의 진단


남녀의 문제를 떠나서, 한국은 노동시간에 대한 국민적 타협이 필요한 시점에 왔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택배가 하루 만에 오지 않거나, 담당 직원이 휴가를 갔거나 일찍 퇴근했다고 하면 화부터 내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1시간, 하루빨리 일 처리가 되지 않으면 당장 내가 불편하고 노동자, 공무원의 인권은 알 바 아니라는 시각부터 바뀌어야 남편, 아내 모두 편하게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아이보다 노동시간, 조직에 대한 충성이 더 중요하다는 "누가 애 낳으라고 했음?" 마인드를 갖고 있는 듯하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 꼴찌인 출산율로 나타날 뿐입니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데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기대할 수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우리와 비슷한 문화, 근무환경을 가진 일본의 경우 일과 가정 양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을 사실상 구분해서 채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전에 그랬듯이, 성별을 분업화해서 남성은 종합직(소고우쇼쿠)으로 밖에서 돈 벌어오고 여성은 어차피 아이 낳고 일하기 힘들 테니 강도가 낮은 일반직(잇판쇼쿠)이나 비정규직으로 처음부터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였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놀랍게도 아직도 이런 투트랙 고용을 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72%라는 높은 여성 고용률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는 별로 유망한 직업들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여성들은 결혼해서 퇴사(코토부키 타이샤)하는 것을 목표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해법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여성인권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별로 바람직한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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