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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Apr 23. 2024

왜 꾸밈노동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경쟁사회와 외모에 대한 고찰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보여준 출근룩 (문가영)


세계 어느 나라를 가보아도 한국처럼 남녀 모두 꾸미는 데 진심인 나라는 몇 없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 여성들은 가뜩이나 높은 미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30분-1시간씩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져야 했고 이것이 결국 2015년 즈음 "꾸밈노동" 이라는 신조어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일상의 모든 면에서 꾸미지 않겠다는 "탈코르셋" 운동 또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꾸밈노동이 대두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성의 학력과 사회 참여율은 더욱 높아졌고 더불어 경제적 구매력, 사회적 여론, 정치적 표심 등 다방면에서 여성의 권력이 계속 신장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10년 전에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 꾸밈노동이 줄어드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다들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줄지 않고 더 늘어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제는 일반 직장인들도 자발적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스타 피드를 관리하고, 바디프로필 열풍이 불면서 과거에는 일부만이 지향했던 몸짱, 얼짱이 거의 기본 소양이 된 한국 사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에서도 우리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먼저 이뤄낸 서양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며, 거기에서도 여성들의 꾸밈은 사라지지 않고 변함없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경제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세 가지 관점에서 알아봅시다.




1. 노동시장 경쟁에서의 우위


여성이 생산직이나 사무 보조만을 하던 30년 전에 비해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직군에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그 말은 이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노동시장에서 경쟁한다는 뜻이며, 외모도 경쟁력의 일부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꾸밈노동은 오히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예전에 비해 오늘날 대기업, 중소기업, 개인 사업 사장님들 중 여성 대표가 비교적 흔해졌지만, 꾸밈노동의 강도에 있어서는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신라호텔, 한진그룹은 여성 대표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 서비스 대기업인데 외모에 있어서는 남성이 대표로 있는 타 대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값이면 당연히 더 잘 꾸민 판매원, 모델,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뉴진스의 설계자가 여성이라고 해서 외모를 안 보진 않습니다. 여성들도 매력적인 여성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거기에 돈을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모델 사장님으로 유명한 이희은


2010년대 이후에는 회사 바깥에서의 노동인 개인 사업, 유튜브에서는 외모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적은 투자로도 엄청난 기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꾸미지 않을 이유가 더욱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나 온리팬스 같은 1인 방송이 엔터테인먼트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구독자 확보를 위해서는 외모 관리가 필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AI의 영역에서도 매력적인 버츄얼 여성을 만들어서 홍보하는 일이 흔해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무려 강릉시에서 홍보대사로 내세운 유투버인데 이 여성의 얼굴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젠 현실 여성을 안 사용하고 가상으로 대체해 버리면 되니까 꾸밈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외모지상주의의 끝판왕이 도래한 것일까요?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가상얼굴 버츄얼 유투버 "루이"




2. 연애시장 경쟁에서의 우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연애시장 또한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예전처럼 여성의 학력, 경제력이 월등히 낮아 상향혼이 자연스러웠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 모두가 만나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잘난 남자"의 비중은 그 결과로 크게 줄어들어, 현대 여성의 연애는 상위 10-15% 정도의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또 경제력까지 확보해야 하는 넘사벽 난이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학력과 스펙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한 한국에서 여성들이 나와 "동급의 남자"를 기대하는 것도 앞으로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예전처럼 가만히 있으면 남자가 알아서 다가오는 연애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브이로그나 인스타 피드를 통해 연애시장에서 자신을 마케팅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전략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꾸밈 경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데 안 할 수가 없으니까요.


거기에 더해서, 어플 만남이 대세가 된 현대에는 남자든 여자든 잘 꾸미지 못하면 입구 컷 당하기 딱 좋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어플이 없던 예전에는 학교, 직장, 동호회에서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닌데 자주 보다 보니 눈 맞는 경우도 흔했는데 (실제로 자주 가까이 있는 것이 호감도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얼굴이 안되면 만남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3. 미적인 행위에의 만족감


마지막으로 철학적인 접근을 하자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적인 동물이어서 꾸미는 행위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시인들도 장신구를 만들고 문신을 하고 다녔고, 꾸미는 것을 아예 못하게 만들어놓은 군대나 교도소에 가도 꾸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 개구리 무늬 시절에는 군인들이 전투복 색깔 배합이 더 이쁜 것을 골라갔습니다)


꾸미는 것이 노동인 여성들도 있지만, 네일샵에 가거나, 머리를 하거나, 스킨케어를 받는 데 큰 자기 만족감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여성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노동시장, 연애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이유 말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순전히 개인적인 욕구가 존재합니다. 일부는 사회가 그렇게 세뇌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꾸밈에 대한 욕구는 전 세계에서 문명과 부족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고, 전쟁 중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녀도 예쁜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존엄성을 잃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패션을 추구하는 1940년대 영국 여성들


경쟁사회가 결국은 외모경쟁으로 직결되는 것일까요?

AI의 발전과 머신러닝이 학습한 미의 기준이 이것을 더 부채질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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