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가리는 내 생각들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나
다들 게임을 한다.
월 얼마 이상은 벌어야 한다느니.
몇 살 안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느니.
어떤 외모의 사람과 만나야겠다느니.
특정한 순간에 꽂힌 경험을 믿겠다느니.
끌리는 종교 규칙들을 따르는 삶을 삶겠다느니.
깨달아야 하는 생각은 '아 내가 게임을 하고 있었구나'이다.
의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단지 끌렸다고 해서 그 생각에 나의 현실을 맞춘다.
'칼이 날아와도 피하지 말라. 규칙에 위반된다.'
이런 말을 들을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내가 그것을 믿기로 결정했다면 인간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
정신작용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굳건하게 어떤 것들을 해 나아간다.
심지어 그것을 잘하는 이들을 존경스러워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결과가 탐나서이지 않나.
도서관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앉아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높은 학력이 탐났던 것이고, 그 높은 학력이 할 수 있는 선택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경제적인 자유와 주도적으로 내 결정을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삶이 탐났던 것이지 않나.
인간과 인간이 같이 살다 보니 이런저런 것들의 노예가 되었다.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들과 억압하고 속이는 것은 서로에게 혼란을 일으키니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낳을 자식들이 자라기 위한 토대가 건강해야 유리하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개인적인 규칙 게임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인 걸까?
결과가 탐났는데 왜 과정을 지켜야 한다 고집부렸을까 생각해본다.
정작 원하는 것은 육체의 안정과 자유이다,
4시 44분에 빨간 판을 들고 내 이름을 쓰는 것이 지금 당장 나의 자유와 안정에 무슨 피해를 준단 말인가.
눈 앞에 올바르게 처한 현실을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내 몸의 무한한 욕구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 정말 맞는 행동일까?
아니면 내 유전자가 잘 보존될 안정을 마련하는 게 맞는 행동일까?
아니 그런 판단들이 의미가 있나.
지금 내 안정과 자유에 보탬이 되나?
왜 현재에 미래 욕구를 채울 게임을 하고 있을까.
나는 심심한가? 두려운가?
나의 게임 규칙이 오히려 나를 집어삼키지 않게 해야 함이 중요한 시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것도 사실 나의 규칙일 뿐이다라는 것을 이내 자각한다.
나도 살고 싶어 하는 규칙을 수행하려는 관성을 가진 그저 동물이다.
다만 선택하는척하고 싶어 하는. 내가 자유가 있음에 흥분하고 싶어 하는. 생존에 필요한 의식과정을 다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뿐인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