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점장에게 불려갔다. 50대 점장의 이마 주름에 날이 시퍼렇게 섰는데, 융기와 습곡 사이로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부는데도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어제 맞은 빗물인가, 눈 물인가 싶을 정도로 주르륵. 귓구멍에 굳은살 박이도록 들은 지청구지만, 의자에 주저앉는데 펄썩하고 한숨처럼 소리가 난다. 알레그로 콘 브리오 하게 하루를 보내고자 했건만, 낮은음자리표처럼 내려앉은 어깨를 걸어놓을 행거가 필요하다.
집에서 전화가 온다. 또 무슨 문제가 터진걸까? 집 주인이 전세값을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선반 위에 물건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나도 해결책이 없다. 어쩌면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실 옛날 수학의 정석에 실렸던 모든 문제보다 내가 가진 문제가 더 많아, 그 중 어느 문제 때문인지를 알려면 전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지만, 우선은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놓는다. 집에 가면 향기로운 임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임의 얼굴에 눈 먼 척,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벌 것이다.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사수인 이 차장이 슬며시 자리로 다가왔다.
우리 회사 코로나 때문에 올해 실적 안 좋아서 10% 정도는 구조조정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어. 신경 좀 써.
10%라는 숫자에 의미는 없다. 살아남거나, 떠나야 하거나. 50%의 확률이다. 그래도 만약 구조조정이 있다면 네가 1순위일거라는 말을 속으로만 삼켰다.
주머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이 스타카토 형태의 자극을 쭈그러진 몸에 옮긴다. 꺼내 확인해보니 카드값 독촉 문자다. 그래도 어젯밤 빗속을 걸어가 산 로또가 지갑에 있다는 사실에 살짝 위안이 된다. 동대구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에 일렬로 죽 늘어놓은 1원짜리 동전 중 하나를 맞추는 확률이라고는 하지만, 매주 누군가는 로또 1등에 당첨된다. 그 누군가들은 아마 공부머리로 따지면 대충 훑어봐도 전교 1등하는 그런 류의 타고난 사주팔자이겠지만, 내 사주팔자는 죽어도 안 될 확률에 죽어라하고 매달려야 될까? 안 되겠지?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명당이라는 로또판매점까지 걸어간 건 일종의 노력이다.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하는 게 삶의 진리니까. 그런데, 고속도로에 죽 늘어놓은 1원짜리를 전부 세면 얼마일까.
야. 선배가 이야기하는 데 정신을 놓고 있네. 우리는 직장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거야. 월세가 조금 밀린다 치면, 언제 자리를 빼라고 할지 모른다고.
에러 메시지가 노트북 메인 화면에 가득이다. 에러 메시지는 모니터 화면에 암울하게 비친 내 얼굴 위로, 전생에 지었을 내 죄목처럼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