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어려운 사건'에 대한 형이상학적 접근

생각의 서고, 31화

by 소는영


I. 서론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다리(橋)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Übergang)이며 몰락하는 존재(Untergang)라는 데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에서 묘사한 인간의 형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며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으로서의 존재다. 심연 위에 위태롭게 걸린 밧줄처럼,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내적, 외적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를 보존하려 분투한다.


법(Jus)의 영역에서 인간에 대한 경외는 헌법 제10조가 천명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법학이 규범적 당위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물음에 답해야 한다. 과연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적, 심리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를 '동일한 권리 주체'로 호명할 수 있게 하는 형이상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기존의 법철학적 논의는 인간 존엄의 근거를 설명함에 있어, 신의 형상(imago Dei)을 따르는 천부적 품성론이나, 이성적 자기 입법을 강조하는 칸트(Kant)의 자율성 이론, 혹은 상호 주관적 인정을 중시하는 하버마스(Habermas)의 의사소통 이론 등에 천착해 왔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간이 '왜' 존엄한지에 대한 규범적 정당성을 제공하지만, 정작 그 존엄성이 귀속되는 주체인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해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 존재의 바깥에서 존엄의 근거를 찾기에 앞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선제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존재론의 관점에서 명확한 개념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어려운 사건(Hard Cases)들, 예컨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은 전통적인 법해석학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히 실정법 조항의 적용 문제를 넘어, 인간의 정체성, 진정성, 그리고 시간적 지속성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하이데거가 통찰했듯, 현존재(Dasein)인 인간은 시간의 지평 위에서 존재를 이해하며, 시간성은 인간 존재의 근본 구조를 이룬다. 법적 판단이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외면한 채 추상적인 법리만을 강요할 때, 그 판결은 자유로이 날아가는 새를 바늘로 찔러 고정시켜 보겠다는 무모한 시도가 될 수 있다.

본고는 최근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들에 나타난 법적 논증의 심층구조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흐르는 형이상학적 전회(Metaphysical Turn)를 포착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먼저 존재론의 차원에서 구체적 개체(particulars)의 본질에 관한 기체 이론, 다발 이론,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 이론의 대립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사건'을 분석한다.

다음으로 시간론의 차원에서 맥타가르트(McTaggart)의 A-계열과 B-계열 이론, 그리고 개체의 지속성에 관한 이동지속이론(Endurantism)과 확장지속이론(Perdurantism)을 살펴본 후,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드러난 '진정한 양심'의 시간적 구조를 해명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현재 사법적 쟁점이 되고 있는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정정 사건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는 법적 판단이 단순히 규범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심연을 응시하고 그 고유한 존엄을 지켜내는 치열한 철학적 작업임을 드러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




II.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


법적 권리와 의무의 귀속점인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구체적 개체(concrete particulars)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개체들이 존재론적으로 더 근본적인 요소들로 환원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자체로 근본적인지, 그리고 속성(properties)들과 개체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1. 기체 이론 (Substratum Theory)


기체 이론에 따르면, 구체적 개체는 우리가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속성들'과, 그 속성들을 지지하고 소유하는 밑바탕인 '기체(substratum)'로 이루어진 구조적 복합체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놓인 붉고 둥근 사과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과의 '붉음', '둥긂', '매끄러움', '달콤함' 등의 속성을 지각한다. 그러나 기체 이론가들은 이러한 속성들이 공중에 독자적으로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가 "붉음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면, 우리는 붉은 사과나 붉은 장미와 같은 붉은 '사물'을 가져올 수 있을 뿐, 붉음 그 자체를 가져올 수는 없다. 즉, 속성들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이를 담지(擔持)할 주체가 필요하다.

이때 상정되는 것이 바로 기체이다. 기체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속성도 가지지 않는 벌거벗은 개별자(bare particular) 혹은 얇은 개별자(thin particular)로 정의된다.

멈포드(Mumford)는 이를 바늘꽂이에 비유한다. 바늘꽂이 자체는 바늘(속성)들이 꽂히는 장소이자 그것들을 한데 묶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꽂혀 있는 바늘 그 자체는 아니다. 사과라는 개체는 기체라는 보이지 않는 바늘꽂이에 '붉음', '둥긂'이라는 바늘들이 꽂혀 있는 상태로 이해된다.

존 로크(John Locke)는 이러한 기체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경험적으로 포착될 수 없는 그 성격을 두고 "그게 무엇인지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엇(I know not what)"이라고 표현하며 인식론적 난해함을 토로하였다.


기체 이론은 개체의 통시적 동일성(diachronic identity)과 변화를 설명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사과가 시간이 지나 붉은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더라도, 즉 '붉음'이라는 바늘이 빠지고 '갈색'이라는 바늘이 꽂히더라도, 그 기체(바늘꽂이)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같은 사과'라고 부를 수 있다.


데카르트 역시 왁스(wax)의 비유를 통해, 왁스가 불에 녹아 형태, 향기, 단단함 등 모든 감각적 속성이 변하더라도 여전히 연장(extension)으로서의 실체는 남는다고 보았다. 이를 법적 주체에 적용하면,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속성의 급격한 변화를 겪더라도 그 기저에 변하지 않는 기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권리 능력의 동일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체 이론은 "성질이 전혀 없는 존재자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치명적인 비판에 직면한다. 아무런 속성도 없는 기체는 사실상 무(Nothing)와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속성뿐인데, 경험 불가능한 기체를 상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형이상학적 가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2.2. 다발 이론(Bundle Theory)


다발 이론은 기체 이론의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흄(Hume), 버클리(Berkeley), 러셀(Russell) 등으로 이어지는 경험론적 전통에 선 철학자들은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인 기체를 단호히 거부한다.


다발 이론에 따르면, 구체적 개체는 속성들의 '집합', '묶음', 또는 '덩어리'에 불과하다. 개체의 본질은 속성들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속성들 그 자체의 결합이다.

예컨대 '탁자'라는 개체는 '갈색임', '단단함', '네모남', '다리가 네 개임' 등의 속성들이 공존 혹은 동시발생이라는 관계에 의해 묶여 있는 다발이다. 이 이론에서 자아(Self) 또한 고정된 영혼이나 실체가 아니라 지각(perception)들의 다발로 환원된다.


흄은 인간의 마음을 여러 지각이 잇따라 나타나는 극장 스크린에 비유하며, 자아의 동일성은 끊임없이 변하는 지각들의 흐름 속에서 발견되는 상상적 허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붓다(Buddha)의 무아론(無我論) 역시 수레가 바퀴, 축, 멍에 등의 집합일 뿐 그 자체로서의 실체가 없는 것처럼, 자아 또한 오온(색, 수, 상, 행, 식)의 다발에 불과하다고 보는 점에서 다발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다발 이론의 가장 큰 난제는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Identity of Indiscernibles)원리와 관련된 문제다. 만약 개체가 속성들의 집합으로만 정의된다면, 완전히 똑같은 속성을 가진 두 개의 개체는 논리적으로 '동일한 개체'여야 한다.

맥스 블랙(Max Black)은 대칭적 우주에 오직 두 개의 완벽히 같은 구(sphere)만이 존재하는 사고실험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두 구는 모든 속성이 같으므로 다발 이론에 따르면 하나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개의 개체다.


또한, 다발 이론은 변화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집합론적으로 볼 때 구성원소(속성)가 하나라도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같은 집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가 붉은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면 {붉음, 둥긂} 다발은 소멸하고 {갈색, 둥긂}이라는 전혀 다른 다발이 생성된 것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발 이론가들은 개체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다발들의 연속(series of bundles)으로 설명하려 시도하지만, 이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인가라는 법적 책임의 근거를 위협할 수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 이론(Substance Theory)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은 기체 이론과 다발 이론이 공유하는 구성주의적 전제, 즉 개체가 더 근본적인 요소들로 조립된다는 가정을 거부한다.

대신 구체적 개체 그 자체를 가장 근본적인 존재론적 단위인 실체(substance, ousia)로 파악한다. 이 이론은 개체의 속성을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으로 엄격히 구분한다.


본질적 속성이란 그 개체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속성(What it is)으로, 개체가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지녀야 하는 속성이다. 이를 상실하면 개체는 존재를 멈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에게 '사람임(being human)'은 본질적 속성이다.

이에 반해 우연적 속성이란 개체의 상태를 묘사하는 속성(How it is)으로, 개체의 존재 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고 변할 수 있는 속성이다. '대머리임', '앉아있음', '철학자임' 등은 우연적 속성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도입한 고유속성(propria)의 개념이다. 고유속성은 본질적 속성(정의) 자체는 아니지만,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혹은 정상적인 조건 하에서 흘러나오는(flow from) 속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이성적 사유 능력'이나 '웃을 수 있는 능력(risibility)'은 인간이라는 본질에서 유래하는 고유속성이다. 이는 우연적 속성보다는 본질에 더 가깝고, 개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 이론은 "본질적 속성 → 고유속성 → 우연적 속성"이라는 위계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를 파악한다. 이 틀은 법적 판단에서 매우 유용한데, 인간의 삶에서 변해서는 안 되는 존엄의 핵(본질 및 고유속성)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외피(우연적 속성)를 구별해 줌으로써, 무엇이 법적 보호의 절대적 대상인지를 명확히 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체의 구체적 형상'은 우연적 속성일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반성적 능력'은 본질에서 유래하는 고유속성으로서 절대적인 보호를 요한다.



III. 법적 판단과 존재론: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젠더(gender)는 생물학적 성(sex)과 구별되는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정체성이다. 법적 영역에서 젠더의 존재론적 지위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사건을 통해 첨예하게 드러난다.


과연 성별(Gender/Sex)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가, 아니면 우연적 속성인가? 만약 본질적 속성이라면,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염색체와 같은 생물학적 기체인가, 아니면 개인의 정신적 자각인가?


대법원 판례는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기체 이론적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 이론의 변용으로, 그리고 실존적 결단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1) 생물학적 환원주의(1996년 대법원 96도791 판결)

대법원은 성전환자가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면서, 성염색체의 구성, 생식기의 형태 등 생물학적 요소를 결정적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인간의 성별을 '염색체'나 '생식기'라는 물리적 기체가 결정한다는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시각이다. 여기서 개인의 정신적 귀속감이나 사회적 역할은 부차적인 우연적 속성으로 취급되었다. 즉, 존재의 본질은 '물질'에 있었다.


(2) 과도기적 절충 (2006년 및 2011년 전원합의체 결정)

2006년 결정(2004스42)에서 대법원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성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며 성별정정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1년 결정(2009스117)에서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의 복리"와 "사회적 혼란"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했다. 이는 성전환자의 존재론적 정체성보다 '가족 제도'라는 사회적 구조와 '아버지/어머니'라는 규범적 역할(Role)을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여기서 인간은 고유한 실존적 주체라기보다, 가족 관계망 속의 기능적 단위(아버지/어머니)로 파악되었다.


(3) 형이상학적 전회 (2022년 전원합의체 결정 2020스616)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용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다수의견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른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강조했다. 특히 김선수, 오경미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인간의 존재는 이를 가리키는 언어에 앞서며 언어를 넘어선다"고 설파하며, 제도가 인간 실존을 재단할 수 없음을 선언했다.

대법원은 '인간임'이라는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반성적 존재(reflective being)라는 고유속성(propria)이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재귀적으로 성찰하고 구성해 나가는 존재이며, 이러한 성찰의 결과물인 '성 정체성'은 단순한 취향(우연적 속성)이 아니라, 그가 그 사람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본질적 요소가 된다.


따라서 "아버지가 여성이 되는 것"이 기존의 언어 체계에서는 모순처럼 보일지라도, 존재론적으로는 甲이 자신의 진정한 본질(여성성)을 실현하여 자아의 통합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므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러한 판결은 다발 이론처럼 인간을 속성들의 느슨한 집합으로 보거나, 기체 이론처럼 생물학적 물질로 환원하지 않고, 통합된 인격체로서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실체의 핵심에 재귀적 자아 정체성을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전회'라 부를 만하다.




IV. 시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



법적 책임과 정체성의 연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어떻게 존재하며, 인간이라는 개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지속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시간은 법적 서사(narrative)가 펼쳐지는 장(場)이다.



1. 맥타가르트의 시간론: A-계열과 B-계열


영국의 철학자 존 맥타가르트(J.M.E. McTaggart)는 1908년 논문 「시간의 비실재성(The Unreality of Time)」에서 시간을 이해하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을 제시했다.

첫번째는 A-계열(The A-Series)이다. 이는 사건들을 과거(Past), 현재(Present), 미래(Future)로 구분하는 점에서 동적이다. , 현재였던 사건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가 되고, 미래였던 사건은 현재가 된다.

A-계열 이론가들은 시간의 흐름이 객관적 실재이며, '지금(Now)'이라는 시점이 존재론적으로 특권적 지위를 갖는다(현재주의)고 주장한다.

예컨대 "한국전쟁은 과거다", "나는 현재 글을 쓰고 있다"는 진술은 시제에 의존하며, 그 참/거짓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두번째는 B-계열(The B-Series)이다. 이는 사건들을 '...보다 이른', '...보다 늦은', '동시인'이라는 관계로 배열한다는 점에서 가히 정적이다.

한국전쟁이 2024년보다 앞선다는 사실은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B-계열 이론가들, 특히 영원주의자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인간의 주관적 인식일 뿐이며, 모든 시간대의 사건이 4차원 시공간 블록 안에 동등하게 실재한다고 본다.



2. 지속성 이론: 이동지속(Endurance) vs. 확장지속(Perdurance)


개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동일성을 유지하며 지속(persist)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서도 두 가지 대립적인 이론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이동지속이론이다. 이에 의하면 개체는 매 순간 '온전히' 존재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이며, 단지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이 이론은 3차원주의와도 연결되는데, 개체는 공간적 부분(팔, 다리)은 가지지만 시간적 부분은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도 나였고 오늘도 나다"라는 상식적 직관에 부합하지만, 변화의 문제를 설명할 때 난점에 봉착한다.

어제의 나는 배가 고팠고 오늘의 나는 배가 부르다. 동일한 존재자가 어떻게 모순되는 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


두번째는 확장지속이론이다. 이에 의하면 개체는 4차원 시공간에 길게 뻗어 있는 시공간적 벌레(spacetime worm)와 같다. 즉, 개체는 매 순간 시간적 부분을 가진다. 어제의 나는 전체 '나'의 한 단면이고, 오늘의 나는 또 다른 단면이다. 개체의 지속은 이 시간적 부분들의 합 혹은 연속으로 설명된다. 이 이론은 B-계열 및 4차원주의와 친화적인데, 예를 들어본다.

'티블스'라는 고양이가 사고로 꼬리를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동지속이론은 "동일한 고양이가 꼬리를 잃는 속성의 변화를 겪었다"고 설명한다. 반면 확장지속이론은 "t1 시점의 '꼬리가 있는 티블스'라는 시간적 부분과 t2 시점의 '꼬리가 없는 티블스'라는 시간적 부분이 4차원적으로 연결되어 단일한 개체를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V. 법적 판단과 시간론: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적 병역거부는 개인이 자신의 신념(양심)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행위로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6도10912)은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고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판결의 핵심 법리인 진정한 양심의 개념은 앞서 살펴본 시간론적 통찰을 깊게 내포하고 있다.


대법원은 병역거부의 근거가 되는 양심은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깊은 신념은 내면 깊이 자리 잡아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신념을, 확고한 신념은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이지 않고, 분명한 실체를 가지며 좀처럼 바뀌지 않는 신념을, 그리고 진실한 신념은 거짓이 없고 상황에 따라 타협하지 않는 신념을 뜻한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양심을 일시적인 기분이나 충동(A-계열의 순간적 현재)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지속적인 실체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삶의 궤적'을 전반적으로 살펴 양심의 진실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이는 피고인의 현재 진술만이 아니라, 그의 과거 전체가 판단의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의 논증 방식은 '확장하는 블록 우주(Growing Block Universe)' 이론과 유사한 형이상학적 전제를 깔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과거는 사라져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축적되어 실재의 일부를 구성한다. 피고인의 과거(어린 시절의 종교 교육, 학창 시절의 갈등 등)는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니라, 현재의 피고인이라는 인격을 구성하는 단단한 지층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접근은 이동지속이론과 확장지속이론의 흥미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우선 양심의 존재양식(이동지속적 요구)은 법원은 양심을 "좀처럼 바뀌지 않는 분명한 실체"로 규정한다. 이는 양심이라는 속성을 지닌 자아가 시간의 흐름과 외부의 압박(형사 처벌의 위협)을 견뎌내며 동일성을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양심은 자아의 본질적 속성 혹은 고유속성(propria)으로서, 상황에 따라 탈부착 가능한 우연적 속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양심의 증명방식(확장지속적/4차원적 관점)은, 그러나 그 내면의 양심을 입증하기 위해 법원은 피고인의 삶의 궤적을 요구한다. 이는 피고인을 4차원 시공간에 펼쳐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t1(어린 시절), t2(학창 시절), t3(입영 거부 시점)의 시간적 부분들이 일관된 경향성을 보일 때, 비로소 t3의 결단이 '진정한 양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한다.


요컨대, '진정한 양심'은 한 순간의 점(Point)이 아니라, 시간 속에 퇴적된 삶의 덩어리 혹은 시간적 벌레로서의 나를 통해 증명된다.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당신의 존재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일관되게 지속되어 왔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단순한 내심의 자유를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유지하며 살아갈 권리, 즉 '인격적 실존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VI. 통합적 고찰: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정정(The Hardest Case)



1.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요건 중 '성전환 수술(외부 성기 형성 및 생식 능력 제거)'을 필수적으로 요구할 것인가는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다.


2006년 대법원 결정은 "성전환 수술을 받아 반대 성의 외부 성기를 갖출 것"을 요건으로 제시했으나, 최근 하급심과 학계는 이러한 외과적 수술 요건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폐지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성기를 수술하지 않은 성전환자를 해당 성별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2.

법 해석의 원칙 중 현저히 불합리한 결과를 회피해야 한다는 법리가 있다. 문언의 기계적 적용이 정의 관념에 반하거나 인간의 존엄을 해칠 정도로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 법원은 목적론적 해석을 통해 이를 교정해야 한다.


성별정정을 위해 원치 않는,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가능한 외과적 수술을 강제하는 것은 '현저히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BVerfG)는 2011년, 성별정정을 위해 영구 불임 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신체적 온전성을 침해하는 부당한 요구(unzumutbare Anforderungen)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한국의 일부 하급심(서울서부지법, 청주지법 영동지원 등) 역시 외부 성기 형성 수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수술 없는 성별정정을 허가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행정적 편의(신분 관계의 명확성)를 위해 개인의 신체에 비가역적인 침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결단이다.


3.

이 쟁점은 앞서 논의한 '이동지속이론'과 '확장지속이론'의 "부분(Part)" 개념과 연결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1) 부분과 전체의 관계: 확장지속이론의 논의에서 "t1의 정상적인 나"와 "t2의 팔이 절단된 나"는 서로 다른 시간적 부분이지만, 4차원적 개체로서는 하나로 통합된다. 팔이나 다리와 같은 신체적 부분이 없어진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데카르트-마이너스(Descartes-Minus)' 사고실험으로도 설명된다. 데카르트가 신체의 일부를 잃어도 그는 여전히 데카르트이다.


(2) 성별정정에의 적용: 과연 외부 성기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인가, 아니면 우연적 속성(혹은 제거 가능한 부분)인가?

과거의 시각(기체 이론/환원주의)에선, 성기를 본질적 속성으로 보았다. 성기가 없으면 남성/여성이 아니다. 이는 존재를 물질적 기체로 환원하는 오류다.


현대의 시각(인격적 실체 이론)에선, 성기는 신체의 일부분일 뿐, 인간의 인격적 동일성을 규정하는 본질이 아니다. 트랜스남성에게 남성 성기 형성 수술을 강제하는 것은, 마치 "팔이 있어야만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존재론적 오류일 수 있다.


성전환자가 외부 성기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각하고, 그 정체성에 맞춰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면(통시적 지속성), 그는 이미 존재론적으로 해당 성별의 인간이다.


법적 성별정정은 이러한 '실존적 사실'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여야지, 신체를 훼손하여 규범적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4.

성전환의 과정은 여행이라는 내러티브로 이해될 수 있다. 여행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과 성찰을 통해 자아를 재구성하는 시간적 과정이다.


폴 리쾨르(Paul Ricoeur)가 말한 '이야기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은 시간 속에서 변화하면서도 유지되는 자아를 설명한다.

이에 의하면, 법관은 성전환자의 성별을 판단할 때, 현재 그의 몸에 달린 신체 기관만을 관찰하는 성 감별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대신 한 인간이 걸어온 여행의 경로, 즉 삶의 궤적(B-계열의 연속성)을 읽어내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2009년 부산지방법원 판결은 성전환 피해자가 살아온 "30년 세월의 애환"과 "여성으로서의 삶"을 상세히 기술하며, 생식 능력이 없더라도 그를 온전한 여성으로 인정했다. 이는 법이 순간적인 '생물학적 스냅샷(A-계열의 현재)'이 아니라, 장구한 시간 속에 축적된 존재의 역사에 주목할 때 비로소 인간의 존엄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VII. 결론



법은 존재(Sein)와 당위(Sollen) 사이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당위 명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이 해명될 때 비로소 구체적인 힘을 얻는다. 본 보고서는 최근 한국 대법원의 판례들이 보여준 '형이상학적 전회'를 분석함으로써, 법적 판단이 인간 존재의 심층 구조와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를 규명하였다.

첫째, 존재론적 측면에서 법원은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속성의 집합(다발 이론)이나 고정된 물질적 기체(기체 이론)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재귀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는 통합된 실체(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체 이론의 현대적 변용)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성전환자 부모 사건에서 생물학적 부모됨이나 사회적 역할보다 실존적 정체성을 우선시한 판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둘째, 시간론적 측면에서 법원은 자아의 '통시적 지속성'에 주목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요구된 '깊고 확고한 양심'이나, 성전환자의 '삶의 궤적'에 대한 고려는 인간을 찰나의 존재가 아닌, 시간 속에 두껍게 퇴적된'역사적 존재(historical being)'로 파악하려는 시도다.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와해되지 않고 지속하는 '자아의 통합성(integrity)'을 보호하는 것이 곧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임을 시사한다.

셋째,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정정이라는 현대의 난제 앞에서, 법은 다시 한번 형이상학적 결단을 요구받고 있다. 신체의 일부(외부 성기)를 제거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을 존재 증명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물질적 속성으로 환원시키는 오류이자 폭력이다.

법적 판단은 가시적인 신체의 형상이 아니라, 비가시적이지만 실재하는 '인격의 지속성'과 '삶의 내러티브'를 향해야 한다.


심연 위의 밧줄을 건너가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흔들리는 밧줄 위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지지대다.


법이 그 지지대가 되기 위해서는, 규범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그 밧줄 위를 걷고 있는 고독한 실존의 목소리에, 그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결국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형이상학적 열쇠이자, 법이 지향해야 할 정의(正義)의 본령이 될 것이다.



2025. 12. 10.




참고문헌(參考文獻)


민성일, 《법에서의 존재와 시간: '어려운 사건'에 대한 형이상학적 접근》,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이론연구센터, 『기초법학연구』 제4호, 2025. 5., 225-2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