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43화
1.
자유란 무엇인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답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1958년 가을, 옥스퍼드 대학 강단에 선 한 철학자는, 우리가 '자유'라는 단어로 전혀 다른 두 가지를 뒤섞어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사야 벌린이다.
2.
그는 자유를 두 범주로 나누었다. 하나는 '소극적 자유'—타인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을 자유.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내가 원하는 것을 실현할 자유.
3.
여기서 '소극'과 '적극'이라는 단어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흔히 소극적이라는 말을 수동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가. 그러나 법철학에서 소극적 자유는 그 어떤 자유보다 근원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할 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막을 수 없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자유의 출발점이다.
고대 아테네를 떠올려 보자. 그 시대의 노예와 여성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는 보호받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거에 참여할 자유도, 공정한 재판을 청구할 자유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을 자유도 없었다.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요구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4.
그렇다면 적극적 자유만 있으면 충분할까. 벌린은 여기서 날카로운 경고를 남긴다. '진정한 자유'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실제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것이 적극적 자유가 전체주의로 변질되는 경로라고. 역사는 '인민의 진정한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행된 숱한 폭력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벌린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진실 하나를 덧붙였다. 민주주의가 곧 자유를 보장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다수가 지배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보호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5.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유권은 공기와 같다. 너무 당연해서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것이 위협받을 때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실감한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논리를 제시했다. 내가 들판에서 사과를 따면, 그 사과를 따는 노동이 나의 일부를 사과에 섞어 넣는다. 그리하여 그 사과는 나의 것이 된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재산의 보호에 있다고.
이 사상은 미국 건국의 토대가 되었다. 독립선언서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는 로크의 '생명, 자유, 재산'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
6.
내가 손에 쥔 스마트폰을 붐비는 거리에서도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소유의 법익이 법률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이 보호막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안전한 환경에서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고, 공동체의 내적 성장을 통해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
7.
그러나 역사는 이 보호막이 얼마나 쉽게 걷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 소유 토지의 5분의 1이 몰수되었고 십오만 명이 망명길에 올랐다. 1793년 4월부터는 망명자가 귀국하면 24시간 내 사형에 처해졌다. 러시아 혁명에서는 더욱 급진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다. 토지 포고령은 선언했다. "지주의 토지 소유권은 보상 없이 즉시 폐지된다." 약 일억 오천만 헥타르의 경작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명분은 언제나 존재했다. '인민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그러나 그 명분이 설득력 있다고 해서 방법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8.
1835년, 젊은 프랑스 귀족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한 권의 책을 썼다. 그는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함께 그것의 어두운 그림자를 목격했다. 그가 남긴 경고는 거의 이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울림을 갖는다.
9.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는 단순히 정책을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며, 소수의 목소리를 침묵시킬 수 있다. 그는 물었다. 한 사람의 폭군에게 허용하지 않을 권력을, 왜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허용해야 하는가?
토크빌이 미국에서 목격한 광경은 이러했다. 다수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법부도, 입법부도, 여론도 결국 다수의 의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구조적 딜레마다.
더 나아가 그는 정신적 자유의 억압을 지적했다. 물리적 억압보다 더 교묘한 것은 사회적 압력이다.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 법적 처벌은 받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고립된다. 이 '보이지 않는 장벽'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은밀한 기제다.
1840년 출간된 속편에서 토크빌은 새로운 형태의 전제정을 예견했다. 칼로 위협하는 폭정이 아니라, 솜으로 질식시키는 폭정. 그가 예견한 이 '부드러운 전제정'은 오늘날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다.
10.
다수가 소수를 억압한 사례는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반복되어 왔다.
기원전 399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회복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오백여 명의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재판에 회부했다. 혐의는 불경죄와 청년 타락죄. 투표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유죄였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는 재판 과정에서 주장했다. 정책 결정은 다수의 의견이 아닌 진정한 지식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 사건을 "가장 현명하고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민주주의의 결함으로 기록했다.
11.
시간을 건너뛰어 보자.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유럽 전역에서 약 십만 명이 마녀로 기소되었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처형되었고, 희생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세일럼에서는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녀로 고발되었다. 법정은 꿈이나 환상에 대한 증언을 증거로 채택했다. 십구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오십여 년이 지나서야 이 재판이 불법이었음이 선언되었다.
집단 히스테리가 법적 절차를 통해 합법화되는 메커니즘. 이것이 마녀사냥이 남긴 교훈이다.
12.
1933년 1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권력이 이양되었다. 그해 3월, 의회는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의회와 대통령의 동의 없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었다.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도 제정할 수 있었다. 투표 당시 수십 명의 의원들은 이미 구금된 상태였고, 무장한 경비병들이 의사당을 포위하고 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과정이 '합법적'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나치독일의 시작이다. 독일의 법관들은 히틀러 정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법적 형식을 통해 독재가 정당화되었다. 이것이 '합법성의 외피'가 지닌 위험이다.
13.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하원 비미활동위원회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소환하여 청문회를 열었다.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찰리 채플린은 미국 재입국이 금지되었다. 청문회에서 반복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현재 공산당원이거나 과거에 공산당원이었던 적이 있습니까?" 협조하여 다른 이들의 이름을 대면 블랙리스트에서 해제되었고, 증언을 거부하면 의회모욕죄로 처벌받았다.
의회 청문회라는 합법적 절차 속에서 작동한 마녀사냥이었다.
14.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는 약 십 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삼십만 명이 체포되었고, 재판을 거쳐 처형된 사람만 만육천여 명에 달했다. 옥중 사망자를 포함하면 총 사망자는 훨씬 더 많다.
로베스피에르는 "폭정에 대한 자유의 전제정치"를 정당화했다. 혁명을 위한 법률들이 제정되었고, 단순한 침묵조차 유죄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피고인의 변호권이 박탈되었고, 거의 증거 없이도 처형이 가능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공포정치 희생자의 대부분이 평민이었다는 점이다. 혁명이 보호하려던 계층이 주된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인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그 구호가 더 고귀할수록, 그 이름 아래 저질러지는 행위는 더 참혹해지는 경향이 있다.
15.
1925년 일본에서 제정된 치안유지법은 '사상범'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후 이십 년 동안 칠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특별고등경찰은 '전향' 제도를 운영했다. 사상범에게 공개적으로 사상을 전환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16.
일본에서는 '비국민'이라는 낙인이 존재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기제였다. 한국에서 '빨갱이'라는 낙인이 작동했던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
현대 일본에는 '공기를 읽다'라는 표현이 있다. 집단 내 암묵적 규칙과 분위기를 이해하고 따르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전통적으로 일본에는 '무라하치부'라는 제재가 있었다. 마을의 주요 공동행사에서 특정인을 배제하는 것이다. 현대 집단주의의 역사적 뿌리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17.
일본식 집단 괴롭힘인 '이지메'의 특징은 '시카토'—집단 전체가 한 개인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에 있다. "못 튀어나온 못은 망치질 당한다"라는 속담이 이 문화를 압축한다.
'과로사'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통을 참는 미덕이 집단주의와 결합했을 때, 개인은 자신의 한계조차 말하지 못하게 된다.
18.
한국과 일본은 근대화의 경로가 달랐다. 일본은 자발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했고, 한국은 식민지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근대화를 겪었다. 민주화 역시 일본은 외부에 의해, 한국은 내부 저항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조압력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회는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일본의 '공기를 읽다'와 한국의 '눈치'. 경로는 달랐으나 도달한 곳은 비슷하다.
19.
1895년,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석했다. 그가 지적한 군중의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익명성—군중 속에서 개인 정체성이 상실되고 책임감이 감소한다.
전염성—감정과 행동이 급속히 확산된다.
암시감수성—최면 상태와 유사하게 암시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반세기 후, 솔로몬 애쉬라는 심리학자는 이를 실험으로 검증했다. 일곱 명의 협조자와 한 명의 진짜 피험자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정답이 명백한 선분 길이 비교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협조자들이 일제히 오답을 제시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20.
놀랍게도 피험자의 3분의 1 이상이 틀린 답을 따라갔다. 최소 한 번 이상 동조한 사람은 4분의 3에 달했다. 한 번도 동조하지 않은 사람은 4분의 1에 불과했다. 혼자 판단하게 했을 때의 오류율은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결과는 충격적이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이것이다. 동조하지 않는 동맹이 단 한 명만 존재해도 동조율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조자는 정답을 알면서도 집단에 맞추었다.
애쉬는 결론지었다. 우리 사회의 동조 경향은 매우 강력해서, 합리적으로 지적이고 선의를 가진 젊은이들이 기꺼이 흰색을 검정색이라고 부른다고.
21.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관찰한 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의 문제는 그와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그들은 끔찍하고 무섭게도 정상이었다.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악을 저질렀다. 이것이 아렌트가 발견한 진실이다.
집단사고라는 현상이 있다. 무적의 환상, 집단적 합리화, 도덕성에 대한 맹신, 반대자에 대한 고정관념, 이탈자에 대한 압력, 자기 검열, 만장일치의 환상, 불리한 정보의 차단.
이 증상들이 모두 나타났던 역사적 사례가 있다. 1961년 피그만 침공에서 케네디 행정부는 참패했고, 1986년 챌린저 호 참사에서는 엔지니어들의 경고가 묵살되어 일곱 명이 사망했다.
22.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무엇이고, 빈자가 빈자인 연유는 무엇인가. 어떤 믿음이 있다. 권력이 적은 자는 권력이 적기 때문에 선하고, 권력이 많은 자는 권력이 많기 때문에 악하다는 믿음. 이 믿음의 위험성은 '도덕적 자동 배정'에 있다. 실제 행동과 무관하게 권력 위치만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논리가 있다고 해보자. 상위 일정 비율의 부유층에게서 일정 금액을 거두어 나머지 다수에게 분배하자. 명분은 그럴듯하다. 가진 자가 더 부담하고, 없는 자가 혜택을 받는다. 이때 무엇이 문제인가?
23.
역사는 이러한 정책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는 1982년부터 부유세를 도입했다가 이를 여러 차례 손질했고, 결국 2017년 폐지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유층이 프랑스를 떠났다. 2006년 한 해만 해도 팔백여 명이 출국했고, 이로 인한 순손실은 수십억 유로에 달했다. 세금으로 거둔 금액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는 분석이다.
스웨덴에서는 더 극적인 사례가 있었다. 1976년,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02퍼센트의 한계세율을 경험했다. 그녀는 풍자 동화를 발표하여 정부를 조롱했고, 총리가 공개 석상에서 그녀의 계산이 맞다고 인정해야 했다. 이 사건은 그해 선거에서 사십사 년간 집권해온 사회민주당의 패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같은 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리허설 중 경찰에 연행되어 탈세 혐의로 심문받았다. 혐의는 불충분으로 기각되었고 정부는 공식 사과했지만, 베리만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입원했고 결국 독일로 이주했다. 그는 "이로 인해 약 팔 년간의 창작 시간을 잃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스웨덴 정부 관리들은 나중에 백 퍼센트가 넘는 세율이 "사고"였다고 인정했다. 스웨덴은 2007년 부유세를 완전 폐지했다.
24.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에 있지 않다. 문제는 정당성에 있다. 왜 그들이, 왜 그 금액을, 왜 그 방식으로 부담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단지 '가진 자가 더 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타인의 재산을 가져갈 수 있는가?
1927년에 발표된 노래 "50 Million Frenchmen Can't Be Wrong"은 원래 미국 금주법 시대를 풍자한 것이었다. 오늘날 이 문구는 '다수가 옳다는 논리의 오류'를 비꼬는 표현으로 쓰인다.
오천만 명이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25.
가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회에서 상위 오십만 명에게 일정 금액을 거두어 공익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정책이 제안되었다.
오십만 번째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자신의 재산 형성 과정이 낱낱이 추적되고, 다수에게 적용되는 것과는 다른 기준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오십만 한 번째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잘못이 없어서 벌 받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살아남은 건 저쪽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음'을 안도하는 것이다.
숫자에는 본래 이항대립이 없다. 그러나 구조의 틀을 조금만 바꾸면 손쉽게 전환이 가능하다. 오십만을 기준으로 위에 있느냐 아래에 있느냐로 구분하면 된다. 여기서 오십만 둘이라는 숫자는 없다. 오직 오십만 명의 '오십만'들과 나머지 사천구백오십만 명의 '오십만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26.
1957년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배심원 8번은 열한 명의 유죄 의견에 홀로 반대하는 이단자다. 그는 합리적 의심을 일관된 기준으로 적용하며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한다. 최종 결과는 전원 무죄.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집단사고의 위험성, 합리적 의심의 중요성, 그리고 소수 의견의 힘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사용되는 '합의'와, 다수가 소수에게 강요하는 '합의'는 다르다. 전자는 소수의견을 분명하게 기록함으로써 '사회 내의 구석진 목소리'를 존중한다. 먼 훗날 바뀔지도 모르는 새로운 시대의 방향성을, 과거의 기록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기록행위다.
27.
맹자는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 그리고 폭군에 대한 방벌론을 제시했다. 인의를 해치는 자를 주벌했다는 것은 들었으나 군주를 시해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고.
존 로크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입법자들이 인민의 재산을 빼앗고 파괴하려 할 때, 그들은 인민과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되며, 인민은 그로써 더 이상의 복종으로부터 해방된다고.
역성혁명이란, 위기에 닥친 이들이 선택한 자발적인 상전이다. 물이 일정 온도에 다다르면 끓어 수증기로 변할 준비를 하듯.
28.
전설 속 동물 해치는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뿔로 받는다고. 한자 '법'의 원래 글자는 물과 해치와 가다로 구성된다. "해치가 범죄자를 물속으로 빠뜨려 제거한다"는 의미다. 법이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 정의에 기반해야 한다는 관념이 이 글자에 담겨 있다.
29.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썼다. 사회는 자체적인 명령을 실행하며, 그것은 많은 종류의 정치적 억압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폭정을 행한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만약 한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가 같은 의견이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이라 해도,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는 그 한 사람이 인류를 침묵시킬 권리와 다르지 않다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은 경고했다. 민주정체들은 항상 혼란과 분쟁의 광경이었으며, 개인의 안전이나 재산권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발견되었다고.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말했다. 민주정에서 다수의 시민은 소수에게 가장 잔인한 억압을 행사할 수 있다고.
중국 고전 『사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천 명이 예예 하는 것이 한 선비가 직언하는 것만 못하다." '중구삭금'이라는 말도 있다. "많은 입이 쇠도 녹인다." 여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표현이다.
30.
토크빌이 예견한 '부드러운 전제정'은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과 결합한 집단의 목소리는 개인을 손쉽게 매장할 수 있다. 법적 처벌은 없지만 사회적 죽음은 있다. 공론장에서 특정 의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위험이 되는 시대. 틀린 것과 다른 것의 구분이 사라지는 공간.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 되는 구조. 반대 의견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되는 논리. 적과 아군으로 나뉜 세계에서 회색은 허용되지 않는다.
솔로몬 애쉬의 실험이 보여주듯, 동조하지 않는 동맹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상황은 달라진다.
숫자 오십만과 사천구백오십만. 그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사천구백오십만 중 누군가가 내일의 오십만에 포함될 수 있다.
"다음은 우리 차례다"라는 말은 경고가 아니다. 단지 가능성에 대한 진술이다. 그 가능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2026.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