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44화
1.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입법례로서, 실질적 위법성이론(Die materielle Rechtswidrigkeit)을 명문화한 대표적 사례이다.
2.
사회상규(社會常規) 개념은 가인(佳人) 김병로에 의해 최초로 소개되었으며, 그는 1915년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 형법학자 마키노 에이이치(牧野英一)의 영향을 받아 이 개념을 한국 법학계에 도입하였다. 제20조의 입법 취지는 형식적 위법성론(Die formelle Rechtswidrigkeit)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구체적 사안에서 실질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즉, 형식적으로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법익침해의 정도가 미약하거나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Rechtswidrigkeit)을 조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의도에도 불구하고, 사회상규조항은 그 추상성과 불명확성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특히 죄형법정주의(Gesetzlichkeitsprinzip)의 퇴색, 법적 안정성의 위태화, 형법의 도덕화, 그리고 심정형법(Gesinnungsstrafrecht)으로의 변질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3.
본고는 사회상규조항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하고, 그것이 한국 형사실무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후, 실질적 위법성이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4.
사회상규 개념의 이론적 기초는 일본의 형법학자 마키노 에이이치의 주관주의 형법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마키노는 사회진화론을 배경으로 하여, 형법의 목적을 사회방위에 두고, 범죄를 사회적 유해성의 발현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형식적으로 법규에 저촉되는 행위라 하더라도 사회상규에 부합하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마키노의 이론은 자유법운동(Freirechtsbewegung)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법관에게 실질적 정의 실현을 위한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법적 안정성을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에도 치안법규(Polizeirecht)의 구성요건에 대한 무제한적 해석을 허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마키노는 20세기 초 인권보장의 과제가 약화되었다고 강변하면서 이러한 우려를 일축하였다.
김병로는 1915년 발표한 논문 「범죄구성의 요건되는 위법성을 논함」에서 마키노의 이론을 한국에 소개하였다. 그는 위법성의 실질을 "사회생활상 유해한 결과를 야기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형식적으로 법조문에 저촉되더라도 사회상규에 부합하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김병로가 제시한 사회상규 개념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것은 실정법 외부에 존재하는 초법규적 성격을 지닌다. 둘째, 그 내용은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또는 "사회통념"과 같은 고도로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셋째, 그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1948년 법전편찬위원회는 김병로의 구상을 받아들여 형법초안에 사회상규조항을 명문화하였고, 이는 1953년 제정 형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일본 개정형법가안이 부작위범의 작위의무를 "법률상의 의무"로 제한한 것과 달리, 한국 형법은 이러한 제한 없이 사회상규를 작위의무의 발생근거로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6.
사회상규를 기준으로 하는 실질적 위법성이론은 1930년대 독일의 나치 형법이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리드리히 샤프슈타인(Friedrich Schaffstein)과 에드문트 메츠거(Edmund Mezger)는 "국민일반의 건전한 생각" 또는 "법감정(Rechtsgefühl)"을 위법성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는데, 이는 마키노나 김병로의 사회상규 개념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연원은 사회상규조항이 지닌 근본적인 위험성을 보여준다. 즉,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을 통해 적법과 불법을 구별하는 것은, 그 판단 주체의 의도나 이념에 따라 형법을 목적합리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나치 형법이 "국민의 건전한 감정"이라는 명분 하에 인권을 유린했던 역사는, 실질적 위법성이론이 극단화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극히 정상적인 생활형태의 하나로서 역사적으로 생성된 사회생활질서 내의 범위에 있는 것"이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보편화된 관례"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해 사회상규조항을 적용하여 위법성을 조각하였다. 풍속업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친구들과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한 도박을 한 경우, 형식적으로는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한 것이 그 예이다.
8.
또한 대법원은 구성요건요소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기준으로도 사회상규를 활용하고 있다. 뇌물죄의 직무관련성이나 음란성 개념의 해석에 있어서 "사회상규상 의례적 대가" 또는 "선량한 성적 도의감"과 같은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9.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상규조항은 한국 형법의 구성요건이 지닌 추상성과 포괄성을 보완하는 순기능을 수행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폭행, 협박, 공갈, 도박 등 많은 범죄의 구성요건이 매우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한국 형법의 현실에서, 사회상규조항은 구성요건해당성이 폭넓게 인정되는 경우에도 위법성 단계에서 가벌성을 제한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1.
첫째, 대법원은 사회상규조항을 적용함에 있어 고도로 추상적인 기준과 세부적인 총합기준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기준을 병존시키고 있다. 전자의 예로는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적 감정", "사회통념", "사회윤리"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과 방법의 사회적 상당성,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이라는 다섯 가지 요건을 들 수 있다.
12.
문제는 이 두 가지 기준을 언제,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없다는 점이다. 실무상 추상적 기준은 주로 위법성 조각을 긍정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반면, 총합기준은 위법성 조각을 부정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검찰 기자가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탈세에 대한 취재를 요구하면서 응하지 않으면 자신이 취재한 내용대로 보도하겠다고 말하여 협박한 경우,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기사작성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보도하기 위한 것으로 신문기자의 일상적 업무에 속하여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라고 하여 협박죄의 위법성을 조각하였다. 반면, 채권자가 채무자의 양도소득세 포탈 사실을 관계기관에 진정하여 일을 벌리겠다고 말하여 겁을 먹은 채무자로부터 채무지급 약속을 받아낸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상규에 위배됨을 이유로 공갈죄의 위법성 조각을 부정하였다.
두 사례 모두 "일반화된 관례"라는 동일한 기준을 사용하면서도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고 있는데,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사회상규 개념이 사실상 판단자의 주관적 가치판단을 합리화하는 수사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4.
예를 들어, 형법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을 받아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이 있다 하더라도 그 승낙이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사회상규를 피해자의 승낙의 효력을 제한하는 추가적 요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정당방위의 경우에도 대법원은 "방위행위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정당방위의 상당성(Angemessenheit) 요건을 판단함에 있어 사회윤리적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기간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어느 한순간 격분하여 과잉의 공격적 방어를 한 경우에도, 대법원은 "그 행위는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조차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긴급피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은 "피난행위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일 것"을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성, 법익균형성, 보충성, 최소침해성이라는 구체적 요건이 바로 어떤 행위를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다시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며 애매모호한 준거를 별도로 요구하는 것은 형법의 사회윤리적 차원에 지나친 무게를 두는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5.
이른바 갈라스(Wilhelm Gallas)의 예를 들어보자. 응급환자에게 요구되는 희귀혈액형을 구하기 위해 의사가 타인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채혈한 경우, 긴급피난의 보충성(유일한 치료수단), 균형성(신체의 완전성 내지 자유를 희생시켜 생명을 보전), 최소침해성(필요한 만큼의 채혈)을 갖추었다. 여기에 의사의 강제채혈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그 행위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추가시킬 때, 문제해결은 다시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이때 전거로 삼아야 할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은 사회적 연대성을 강조하는 출발점 하에서 절대적 생명보호의 원칙을 연계시키면 강제채혈을 정당화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개인의 자유를 절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윤리라고 하면서 강제채혈은 자유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므로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고 하는 반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형법 제18조가 부진정부작위범의 행위주체를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초법규적 사회상규를 근거로 한 작위의무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부진정부작위범의 구성요건을 무한히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7.
조선시대 대명률의 불응위율(不應爲律) 조항은 "금령에 위반한 자, 즉 사리에 추어 마땅히 해서는 아니 될 것을 한 자는 태50의 형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만약 금령 대신에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를 넣으면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자는 처벌된다"는 명제가 되는데, 이는 구성요건의 명확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상규를 작위의무의 발생근거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방적 구성요건(offener Tatbestand)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예를 들어, 어린이 통학버스 운행자에게 보호자 동승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구 도로교통법 제48조의6의 주의의무는 이 법이 정하고 있는 경찰서장에게 일정한 신고절차를 마친 자에게만 부여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신고를 하지 않은 운행자에 대해서도 "사회상규 또는 조리에 의하여 보호자를 동승하게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하였는데, 이 판시내용의 문맥상 신고를 하지 않은 운행자도 일정한 안전조치를 취한 바가 없었다면 사회상규 또는 조리에 의하여 보호자를 동승하게 할 주의의무를 인정할 수도 있음이 함축되어 있다.
18.
그러나 과실범을 근거짓는 객관적 주의의무는 사회상규나 조리라는 규범의 영역에서 도출되는 법규범이 아니라 어떤 결과에 대한 객관적 예견가능성을 토대로 삼는 사실판단을 기초로 하여 비로소 만들어지는 법규범이다. 어린이 통학버스 운행자에게 보호자 동승의무를 규정한 도로교통법의 규정은 입법자가 보호자를 동승하지 않을 경우 어린이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해 위험이 발생할 것이 일반적으로 예견가능하다는 입법자의 판단결과 그러한 주의의무를 규범화하여 규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법적용의 단계에서는 행위자가 그 외의 어떤 안전조치를 취하였는지에 따라 의무의 존부가 달라질 것이 아니다.
19.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 중 하나인 명확성의 원칙(Bestimmtheitsgrundsatz)은 형벌법규가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회상규 개념은 그 내용이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사회통념", "사회윤리" 등 고도로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일반인으로서는 어떤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예측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대법원이 사회상규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극히 정상적인 생활형태",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보편화된 관례", "처벌이 무가치하고 사회정의에 배반되는 경우"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러한 기준들 역시 고도로 추상적이어서 구체적 사안에 적용할 때 어떤 결론에 이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20.
만약 사회상규 개념이 구성요건의 해석기준으로까지 활용되는 경우, 명확성의 원칙 위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뇌물죄의 구성요건요소인 "뇌물"의 의미를 "사회상규상 의례적 대가가 아닌 것"으로 해석하거나, 음란죄의 구성요건요소인 "음란성"의 의미를 "선량한 성적 도의감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국 구성요건의 외연을 사회상규라는 불명확한 개념에 의존하여 결정하는 것이 되어,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명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위법성 조각사유까지도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의해 통제되는 것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즉, "형벌법규의 해석에서 법규정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유추해석으로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하게 되고, 이러한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은 모든 형벌법규의 구성요건과 형벌에 관한 규정에 준용되며, 위법성 및 책임의 조각사유나 소추조건 또는 처벌조각사유인 형면제 사유에 관하여도 그 범위를 제한적으로 유추적용하게 되면 행위자의 가벌성의 범위는 확대되어 행위자에게 불리하게 되므로, 이는 가능한 문언의 의미를 넘어 범죄구성요건을 유추적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되므로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인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위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상규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통해 위법성 조각사유의 적용을 제한하거나, 구성요건요소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 역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적 안정성은 법치국가(Rechtsstaat)의 핵심적 요소로서, 법규범의 내용이 명확하고 예측가능하며,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상규를 기준으로 하는 실질적 위법성이론은 그 본질상 법적 안정성과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22.
첫째, 사회상규 개념 자체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므로, 어떤 시점, 어떤 지역에서 무엇이 사회상규에 부합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대법원이 사회상규 개념을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또는 "사회통념"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불확정성을 가중시킨다. 국민일반의 도의감이나 사회통념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판사 개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국민일반의 그것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둘째, 대법원이 사회상규조항을 적용함에 있어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요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어떤 경우에는 고도로 추상적인 기준을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세부적인 총합기준을 사용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사회상규에 반한다" 또는 "반하지 않는다"는 선언적 판단만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 삼중의 잣대는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도 상이한 결론을 초래할 수 있어, 법적용의 평등성과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든다.
셋째, 사회상규 개념이 위법성 조각의 문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법적 안정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피해자의 승낙, 정당방위, 긴급피난 등 개별 위법성 조각사유는 입법자가 일정한 요건 하에서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됨을 명문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명문의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사회상규 또는 사회윤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법성 조각을 부정한다면, 이는 사실상 입법자의 결단을 사법부가 번복하는 것이 되어, 권력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날 소지가 있다.
23.
사회상규 개념이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사회윤리", "선량한 풍속" 등 도덕적·윤리적 개념과 동일시되는 한, 형법의 도덕화 경향은 불가피하다. 형법의 도덕화란 형법이 법익보호라는 본래의 임무를 넘어서 도덕적 가치나 윤리적 규범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근대 이후 형법학은 법과 도덕의 분리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왔다. 계몽주의 이래 형법의 정당성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타인의 자유나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에 한하여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법익보호원칙(Rechtsgutsprinzip)에서 찾아졌다. 이에 따르면 형법은 최소한의 도덕, 즉 공동생활을 위해 불가결한 최소한의 윤리적 규범만을 강제할 수 있을 뿐, 개인의 내면적 도덕성이나 윤리적 완성을 추구하는 것은 형법의 임무가 아니다.
24.
그러나 사회상규를 기준으로 하는 실질적 위법성이론은 이러한 법과 도덕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든다. 대법원이 "처벌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사회정의에 배반된다고 생각될 정도"의 행위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보거나, "사회관념상 비난의 대상"이 될 만큼 사회상규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형법적 평가에 도덕적·윤리적 비난이라는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25.
형법의 도덕화가 초래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도덕적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가변적이므로, 형법의 객관성과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둘째, 다원주의 사회에서 통일된 도덕관을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특정한 도덕관을 형법을 통해 강제하는 것은 소수자의 자유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 셋째, 형법이 도덕 집행의 도구로 변질될 경우, 형법의 최후수단성(ultima ratio)과 보충성(Subsidiarität)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
독일 형법 제228조는 신체상해의 경우 피해자의 승낙이 있어도 그 행위가 선량한 풍속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위법한 행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형법과 도덕의 결합이 상해죄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법의 도덕화에 대한 비판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원칙적으로 사회상규의 형식으로 도덕이 모든 범죄에 대해 형법을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형법의 도덕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26.
형법의 도덕화는 특히 임의죄나 사기죄와 같이 행위태양을 정형화하고 있는 범죄의 경우에도 나타난다. 대법원은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한 배임죄의 성립을 긍정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매매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중도금을 수수하는 등으로 계약의 이행이 진행되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그 채무의 이행은 채무자로서의 자기 사무의 처리라는 측면과 아울러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타인 사무의 처리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지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 그 채무자는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고, 이러한 지위에 있는 자가 그 의무의 이행을 통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재산에 관한 완전한 권리를 취하게 하기 전에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 상대방의 재산 취득 혹은 보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정당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으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형적인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시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은"이라는 표현은 전형적인 도덕적 평가의 언어이다. 물론 반대의견은 민법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한 행위를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형법의 지나친 확장이라고 비판하였으나, 다수의견의 논리 속에는 사회윤리적 차원의 비난을 근거로 배임죄의 성립을 긍정하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27.
형법과 도덕을 일치시키거나 양자를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형법에서 불법의 주관화 내지 의사형법화를 초래할 수 있다. 도덕적 평가는 유해한 외부결과나 법익의 침해 또는 그 위태화가 아니라 행위자의 비난받을 만한 의사나 심정 또는 내적 의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사회상규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위법하지 않다는 인식" 또는 "그 처벌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사회정의에 배반된다는 생각" 등과 같이 주관적 성격을 가진 기준을 동원하거나, "국민일반의 도의적 감정" 또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이라는 표현을 통해 결국 사회 전체의 도덕적 관점을 행위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려 할 때, 불법의 주관화 경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28.
오늘날 형법이론학에서 객관적 위법성론(objektive Rechtswidrigkeitslehre)이 주관적 위법성론을 밀어낸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상규를 준거로 하는 실질적 위법성이론이 극단적으로 관철될 경우 불법의 주관화 내지 형법의 심정형법화를 초래할 수 있음은 기우가 아니다. 나치 형법이 "국민의 건전한 감정"이라는 명분 하에 심정형법으로 변질되었던 역사적 경험은, 사회상규 개념이 지닌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법원이 사회상규조항을 적용할 경우 "사회관념상 비난의 대상"이 될 만큼 사회상규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은, 위법성 판단에 책임비난의 관점까지 관철시키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표명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외적 자유의 침해가 문제되지 않는 사례의 경우 사회윤리적 심정가치의 보호나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책임비난의 관점을 함부로 동원하거나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나 도덕적 의무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앞세우게 되면, 자유권에 기초한 형법체계의 근본이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다.
29.
사회상규조항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법 제20조에서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는 부분을 삭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형법전이 사회상규조항 없이도 개별 위법성 조각사유와 헌법상 기본권에 근거한 해석을 통해 적법과 불법을 합리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점은, 사회상규조항이 형법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입법론적 제안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입법전통을 단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으며, 많은 형법학자들이 여전히 사회상규조항의 순기능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상규조항이 삭제되기 전까지는, 구성요건의 명확화를 통해 사회상규조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30.
사회상규조항이 당분간 존속할 수밖에 없다면, 형법도그마틱은 사회상규 개념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석론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첫째, 사회상규조항은 오로지 위법성 조각사유로만 기능해야 하며, 구성요건 영역이나 책임 영역으로 그 기능이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부작위범의 작위의무나 과실범의 주의의무를 근거짓는 데 사회상규를 동원하는 것은 구성요건의 개방화를 초래하므로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둘째, 사회상규조항은 다른 개별 위법성 조각사유를 제한하는 상위의 기준이 아니라, 개별 위법성 조각사유와 병렬적 관계에 있는 보충적·최후적 위법성 조각사유로 이해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승낙, 정당방위, 긴급피난 등 개별 위법성 조각사유가 그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 적용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셋째, 사회상규 개념에서 사회윤리적·도덕적 색채를 가능한 한 제거해야 한다. "국민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사회통념", "사회윤리" 등의 용어는 판단자의 주관적 가치판단을 은폐하는 수사적 도구에 불과하다. 대신 헌법상 기본권의 체계, 법익균형성, 최소침해성 등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통해 위법성 조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31.
사회상규를 기준으로 하는 실질적 위법성이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법철학적 물음에 대해 실정법 외부의 자연법적·도덕적 기준을 통해 답하려 한다는 데 있다. 이는 극단적 자연법론의 방법론을 취하는 것으로서, 법적 안정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형법학의 방법론은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절충적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 이는 원칙적으로 실정법의 타당성을 인정하되, 극단적인 부정의의 경우에 한하여 예외를 인정하는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sche Formel)의 정신과도 부합한다.
구체적으로는, 입법자가 구성요건을 통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위법성 조각사유를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를 유형화하되, 그 유형화가 개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상규"와 같은 추상적 개념은 이러한 유형화 작업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유형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32.
형법학은 사회상규라는 빈 공식을 채우는 작업이 입법자의 몫이지 법관의 몫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법관은 입법자가 설정한 구성요건과 위법성 조각사유의 체계 내에서 해석을 통해 구체적 사안을 해결해야 하며, 그 해석의 근거는 실정법 외부의 사회상규가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과 법익보호원칙이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대법원이 사회상규조항이나 사회상규 개념을 활용하고 있는 면면을 보면, 한국의 형사실무가 제정형법 당시의 사회상규를 준거로 한 실질적 위법성이론과 확실한 단절성을 보이고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마키노의 실질적 위법성이론은 이미 당시에도 치안법규의 구성요건에 대한 무제한의 폭넓은 해석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러한 우려가 사라지거나 약화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여전히 없다.
사회상규조항 및 사회상규 개념은 실질적 위법성이론을 등에 업고 그 순기능적 측면의 뒤에서 수많은 역기능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형법도그마틱은 사회상규 개념의 의존도를 낮추고, 그 역기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입법론적, 해석론적, 방법론적 차원에서의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죄형법정주의의 퇴색, 법적 안정성의 위태화, 형법의 도덕화, 그리고 심정형법화를 경계하는 것은 형법학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과제이다.
2025. 12. 10. 수정.
양화식,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한 고찰》, 한국형사법학회, 『형사법연구』제19호, 2003. 02., 174-199면
신동운, 《형법 제20조 사회상규 규정의 성립경위》,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서울대학교법학』제47권 제2호, 2006. 2., 189-219면
김성돈, 《한국 형법의 사회상규조항의 기능과 형법학의 과제》,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성균관법학』제24권 제4호, 2012. 12., 247-2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