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도입의 비교법적 분석 및 전제조건에 관하여

서고지기의 생각, 제4면

by 소는영
목차 1
목차 2



제1장 재판소원의 입법 경위와 비교법적 검토


1. 입법경위

2026년 2월 11일,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안(이하 '재판소원법')과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14→26명 증원)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였다.


재판소원법의 핵심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의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을 삭제하여,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헌법소원이 도입되는 과정(1988년)에서, 원래는 모든 국가기관의 행위에 대해 헌법소원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었으나, 대법원이 뒤늦게 확인하여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단서가 추가된 경위가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 단서를 삭제하여 1988년 원래 설계로 복귀하는 성격을 갖는다.



2. 비교법적 검토: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2.1 독일의 Verfassungsbeschwerde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BVerfGG) 제90조는 헌법소원의 대상을 "모든 공권력의 행위(jeder Akt der öffentlichen Gewalt)"로 규정하며, 법원의 재판을 배제하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헌법소원의 대다수가 법원 판결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재판헌법소원(Urteilsverfassungsbeschwerde)이다.


다만 연방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초상고심(Superrevisionsinstanz)"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선언하며, 기본권의 방사효(Ausstrahlungswirkung)가 충분히 고려되었는지만을 심사하는 자기제한 교리를 발전시켰다.


2024년 기준 연간 4,595건의 헌법소원이 결정되었으며, 그중 39건만이 인용되어 인용률이 0.85%에 불과하다. 원(Senate) 결정의 경우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소요된다.



2.2 스페인의 Recurso de Amparo

스페인 헌법재판소조직법(LOTC)은 암파로의 세 가지 유형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사법적 결정에 대한 암파로가 포함된다. 배제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통상적 구제절차를 먼저 소진해야 하며, 2007년 개정 이후에는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especial trascendencia constitucional)"이 인정되는 사안만 수리되도록 하여 사건 과부하를 통제하고 있다.



2.3 오스트리아의 Verfassungsgerichtshof

오스트리아는 한국의 현행 제도와 유사한 배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행정재판소의 결정은 심사하지만, 민사·형사 법원의 판결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오스트리아는 최고법원(OGH), 최고행정법원(VwGH), 헌법재판소(VfGH)의 3원적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정리한 도표

소결: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하는 독일 모델이 비교법적 표준이며, 한국의 현행 제한은 오스트리아식 제한 모델에 해당한다. 다만, 독일의 "초상고심 금지" 교리는 기능적 분리가 정밀한 교리적 발전을 통해 달성 가능함을 보여준다.



2장 독일법학의 핵심 교리: Heck'sche Formel과 방사효


1. Heck'sche Formel의 내용과 구조

1964년 6월 10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특허결정(Patent-Beschluss, BVerfGE 18, 85)"에서 보고재판관 Karl Heck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공식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절차의 형성, 사실관계의 확정과 평가, 단순법률의 해석과 그 개별 사안에 대한 적용은 오로지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관할권을 가진 법원의 소관이며, 연방헌법재판소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오직 법원에 의한 특수한 헌법적 법(spezifisches Verfassungsrecht)의 침해가 있는 경우에만, 연방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에 의거하여 개입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개념은 "spezifisches Verfassungsrecht(특수한 헌법적 법)"이다. 단순한 법률위반(einfacher Rechtsverstoß)이 곧바로 기본권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법원이 민법이나 형법을 잘못 적용했다 하더라도, 그 오류가 기본권의 의미와 사정거리(Tragweite)를 근본적으로 오인한 것이 아닌 한, 헌법재판소가 개입할 수 없다.


이후 이 공식은 Schumann'sche Formel(슈만 공식)과 "Neue Formel(신공식)"에 의해 보충되었다. 슈만 공식은 Ekkehard Schumann이 1963년 박사논문에서 발전시킨 것으로, 연방헌법재판소 전 소장 Andreas Voßkuhle가 "실무를 명백히 지배하고 있다(dominiert eindeutig die Praxis)"고 인정할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2. 방사효(Ausstrahlungswirkung)의 의미

방사효는 1958년 연방헌법재판소의 뤄트 판결(Lüth-Urteil, BVerfGE 7, 198)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함부르크 프레스클럽 의장 에리히 뤄트가 나치 선전영화 감독의 불매운동을 호소한 사건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을 선언한다:


첫째, 기본권은 국가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방어권(subjektive Abwehrrechte)이다.


둘째, 기본권은 동시에 객관적 가치질서(objektive Wertordnung)를 체현한다. 이 가치질서는 "인간이 사회 안에서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헌법적 기본결정으로서 모든 법영역에 타당하며, 입법·행정·사법을 지도하고 자극을 부여한다."


여기서 방사효란, 기본권이 공법 영역에서의 대국가적 방어 기능을 넘어 사법(私法)을 포함한 전체 법질서에 그 가치내용을 '방사(ausstrahlen)'한다는 것이다. 사법의 일반조항(민법 §138, §242, §826 등)은 기본권의 가치적 내용이 사법으로 유입되는 "돌파구(Einbruchstellen)"로 기능하며, 법관이 이 일반조항을 해석·적용할 때 관련 기본권의 의미와 비중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3. 방사효와 대사인적 효력(Drittwirkung)의 관계

방사효는 간접적 대사인적 효력(mittelbare Drittwirkung)의 이론적 기초이다. 양자는 유사한 것이 아니라, 방사효가 간접적 대사인적 효력을 근거짓는 법리이다.


뤄트 판결에서 연방헌법재판소가 Hans Carl Nipperdey의 직접적 대사인적 효력을 부정하고, 기본권이 사법 규범의 해석을 매개로 간접적으로만 효력을 미친다고 판시한 것이 바로 이 방사효 이론에 기초한다.


Heck 공식과 방사효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방사효 이론에 의하면 일반법관은 사법규범를 해석할 때 기본권의 가치내용을 고려할 의무가 있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이 의무가 이행되었는지만을 심사한다. 일반법원이 이익형량 과정에서 기본권적 가치를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경우(Nichtberücksichtigung) 또는 그 비중을 근본적으로 오인한 경우(grundlegende Verkennung)에만 헌법소원이 인용된다.



4. 행정법상 재량심사 구조와의 구조적 유사성

행정법에서 재량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는 원칙적으로 재량의 결과가 아니라 재량의 과정을 심사한다. 법원은 행정청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으로 대체하지 않으며, 재량의 불행사(Ermessensnichtgebrauch), 재량의 일탈(Ermessensüberschreitung), 재량의 남용(Ermessensmissbrauch)만을 심사한다.


Heck 공식 하에서의 헌법소원 심사도 정확히 동일한 구조를 따른다. 헌법재판소는 일반법원의 법률 해석이 "옮은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권의 방사효가 "고려되었는지"를 심사한다.


이는 행정법상 형량의 불행사(Abwägungsausfall)와 형량의 비례원칙 위반(Abwägungsdisproportionalität)에 각각 대응한다. 양자 모두 기능적 권한 분배의 원리에 기초하며, 심사기관이 피심사기관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과정의 적법성만을 통제하는 구조이다.



3장 스페인의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과 객관적·주관적 긴장관계


1. STC 155/2009의 비한정적 유형 목록

2007년 조직법 개정으로 도입된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 요건은 암파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종전의 "명백히 근거 없는 청구의 불수리(부정적 필터)"에서 "헌법적 중요성 있는 청구만의 수리(긍정적 필터)"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2009년 헌법재판소 결정(STC 155/2009)은 다음과 같은 비한정적 유형(lista no cerrada)을 제시했다:


(a) 헌법재판소가 아직 판단하지 않은 새로운 기본권 문제,

(b) 기존 판례의 변경·발전 필요성,

(c) 일반법원의 반복적 판례 위반,

(d) 일반적 사회적 중요성,

(e) 특별히 중대한 기본권 침해,

(f) 침해 근거 법률 자체의 위헌 가능성,

(g) 새로운 법률에 대한 헌법적 해석 필요성.


이 개념은 학설상 불확정 법개념(concepto jurídico indeterminado)으로 분류된다. González Beilfuss는 이를 "공허한 개념(concepto etéreo)"이라 비판하며, 헌법재판소가 사건 과부하 해소에는 활용했지만 암파로의 보다 객관적·헌법적 개념화에는 불충분했다고 평가한다.



2. 객관적 방어 기능과 주관적 권리구제의 긴장관계

2007년 개정으로 암파로는 헌법적 체계의 합헌성에 대한 객관적 방어 수단이 되었고, 개인적 권리구제 기능은 후퇴하였다. 여기서 "객관적 방어 수단"은 기본권의 객관법적 기능(objektiv-rechtliche Funktion)에, "개인적 권리구제"는 기본권의 주관적 권리 기능(subjektiv-rechtliche Funktion)에 대응한다.


양자는 구조적 긴장관계에 있다. 뤄트 판결이 기본권의 객관적 가치질서 측면을 발견한 것은 기본권 보호의 확장이었지만, 이 객관적 차원이 강조될수록 개별 청구인의 주관적 권리구제는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개별 청구인의 기본권이 실제로 침해되었더라도, 헌법적 체계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다"면 수리되지 않는다.


다만 양자가 동시에 추구불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정교한 답변이 필요하다. 독일의 수리요건(BVerfGG 제93a조)은 (a) "원칙적 헌법적 의미"라는 객관적 기준과 (b) "기본권 관철을 위해 지시되는 경우"라는 주관적 기준을 양자택일적(alternativ)으로 규정한다. 이는 양 기능을 병렴적으로 보존하되, 각각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과부하를 통제하는 구조이다.



3. '상당한 재량'과 '예측가능성': 재량준칙과의 유비

"상당한 재량"과 "예측가능성 확보"는 일견 상충되는 듯 보이지만, 행정법상 재량준칙(Ermessensrichtlinien)이 수행하는 기능과 구조적 동형성이 있다. 재량준칙은 법규가 아니므로 법원을 기속하지 않지만, 평등원칙(행정의 자기구속 법리)에 의해 사실상의 구속력을 갖는다.

STC 155/2009의 비한정적 유형 목록은 바로 이 재량준칙의 기능적 등가물이다. 헌법재판소는 불확정 개념에 대한 판단 재량을 보유하되, 전형적 유형을 사전에 열거함으로써 청구인과 법공동체에 일정한 예측가능성을 제공한다. 목록이 비한정적이라는 것은 비전형적 사안에 대한 재량의 여지를 보존하는 것이고, 이는 재량준칙이 법규가 아닌 행정규칙으로서 이탈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4장 훈시규정 문제와 신속재판권


1. 헌법재판소법 제38조의 법적 성격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문언상 "하여야 한다"는 기속적 표현이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를 훈시규정으로 해석해 왔다.


이 태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가능하다.


첫째, "하여야 한다"는 법문은 통상 의무규정으로 읽히며, 이를 훈시로 해석하려면 강력한 체계적·목적론적 근거가 필요하다.

둘째, 헌법재판소가 자신에게 적용되는 기한 규정의 법적 성격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자기심사(nemo iudex in causa sua)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셋째, 헌법 제27조의 재판청구권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내포하며, 180일 규정은 이 권리를 구체화한 것이다.



2. 비교법적 검토: 합리적 기간 내 재판받을 권리

유럽인권협약 제6조 제1항은 "합리적 기간 내의 재판(trial within a reasonable time)"을 보장한다. 유럽인권재판소(ECtHR)는 Zimmermann and Steiner v. Switzerland(1983)에서 "체약국은 사법체계를 합리적 기간 내 재판이 가능하도록 조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사건 과부하나 사법개혁은 면책사유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6조의 신속재판권과 1974년 연방신속재판법(Speedy Trial Act)이 이중적 보호를 제공한다. 연방대법원은 Barker v. Wingo(1972)에서 신속재판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4요소 형량기준을 확립했다. 연방신속재판법은 기소로부터 70일 이내 공판개시라는 구체적 기한을 설정하며, 이는 훈시가 아닌 기속적 효력을 가진다.

종합하면, 심리기간을 훈시규정으로 운용하면서 동시에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재판소원의 핵심 논거가 "기본권 보호의 완결성"인데, 정작 그 보호 절차 자체에서 신속재판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본권 보호를 위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5장 재판소원 도입의 제도적 전제조건


1. 심사 기준의 정교화

독일이 50년 이상 판례 축적을 통해 발전시켰 핵심 교리가 바로 단순 법률 위반과 기본권 침해의 구별이다. 실무적으로 이 구별이 작동하는 유형은 다음과 같다:


* 자의금지(Willkürverbot) 위반: 법원의 법률 해석이 어떤 합리적 고려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을 정도로 자의적인 경우(GG 제3조 제1항, 평등원칙).

* 절차적 기본권 위반: 법적 청문권(GG 제103조 제1항), 법률에 의한 법관의 재판받을 권리(GG 제101조 제1항 제2문) 침해 등.

* 실체적 기본권의 방사효 무시: 법원이 이익형량에서 기본권적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않거나 근본적으로 잘못 평가한 경우.


한국에서 재판소원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유형론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출발하게 된다. 명확한 기준 없이 제도가 시행되면, 모든 패소 당사자가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될 것이고, 이는 "초상고심" 문제로 귀결된다.



2. 수리 요건의 엄격화

* 독일의 사전심사(Vorprüfung): 3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Kammer)가 사전심사를 담당하며, (a) 원칙적 헌법적 의미 또는 (b) 기본권 관철을 위한 필요성 중 하나를 충족해야 수리된다. 수리거부 결정은 이유 제시 없이 가능하다. 이 수리요건은 1970년, 1985년, 1993년 세 차례에 걸쳐 점진적으로 강화되었다.

* 스페인의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 2007년 개정으로 청구인에게 입증책임이 전가된다. 청구인은 기본권 침해 주장과 별개로 헌법적 중요성을 논증해야 한다.


한국의 재판소원 도입 시 최소한 독일형 사전심사 또는 스페인형 헌법적 중요성 요건에 해당하는 필터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필터 없는 재판소원은 사실상의 제4심이 된다.



3. 인적·물적 역량 확충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6인의 재판관(2개 원, 각 8인)에 더해 약 70명의 학술보좌관(Wissenschaftliche Mitarbeiter)이 사전심사와 결정 초안 작성을 담당한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인에 헌법연구관 약 30여 명이 보좌하는 체제이다. 현행 사건 규모에서도 180일 심리기간을 빈번히 초과하는 상황에서, 재판소원 도입으로 인한 사건 부담 급증에 대한 대비가 필수적이다.



6장 재판소원 지연의 책임 귀속 문제


1. 입법자의 책임

학계 및 법조 전·현직 전문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강행하여, 예견 가능했던 기본권 침해(신속재판권의 형해화)가 현실화된 경우, 이는 적극적 입법작위에 의한 기본권 침해 문제이다.


재판소원 도입 법률 자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또는 입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가 이론적 경로로 제시될 수 있으나, 후자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



2. 헌법재판소의 책임

법률이 제정·시행된 이상, 헌법재판소에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건을 심리·결정할 헌법적 의무가 발생한다. 법정 기간 내 결정을 하지 못하여 당사자의 권리 실현이 현저히 지연된다면, 헌법재판소의 부작위에 의한 기본권 침해 문제가 된다.


그러나 180일 규정이 훈시규정으로 운용되는 한, 기간 초과 자체로는 위법이 되지 않으므로 책임 추궁의 법적 근거가 약해진다. 훈시규정이라는 해석이 헌법재판소를 구조적으로 면책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3. 헌법재판소가 기본권 침해 주체가 되는 역설

기본권의 수호자로 설치된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절차적 지연을 통해 재판청구권(헌법 제27조)을 침해하는 주체가 된다면, 이는 단순한 절차적 하자가 아니라 제도적 자기모순(institutionelle Selbstwiderspruch)이다.


현행 한국 법체계 내에서 회복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첫째,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헌법소원은 무한소급(regressus ad infinitum)을 야기하므로 불가능하다.

둘째, 국가배상청구는 재판작용에 대해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

셋째, 한국은 유럽인권협약 체약국이 아니므로 유럽인권재판소라는 외부적 통제 기관이 부재한다.


독일과 스페인에서는 유럽인권재판소라는 외부적 통제 기관이 존재하지만, 한국에는 헌법재판소의 기본권 침해를 시정할 외부적 메커니즘이 부재한다. 이 구조적 공백이 의미하는 바는, 사전적 제도 설계의 정교함이 사후적 구제의 부재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어: 규범적 정당성과 제도적 현실 사이의 간극


재판소원은 비교법적 표준이며, 기본권 보호의 완결성이라는 규범적 관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독일이 1951년부터 70년 이상에 걸쳐 축적한 교리(Heck 공식→Schumann 공식→신공식), 제도적 인프라(사전심사 절차의 3차례 개혁, 학술보좌관 체계), 기관 간 신뢰(헌법재판소와 일반법원 사이의 기능적 분업에 대한 상호 존중)을 법률 한 조문의 개정으로 한꺼번에 달성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재판소원의 도입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으나, 도입의 시점과 방법이 관건이다. 심사기준의 교리화, 필터링 메커니즘의 법제화, 인적·물적 역량의 확충이 선행 또는 최소한 병행되지 않는 한, 이 제도는 기본권 보호가 아니라 사법 체계의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학계와 법조계의 우려는 단순한 반대론이 아니라, 제도의 실효성을 위한 구성적 비판(konstruktive Kritik)으로 진지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입법자가 이러한 우려를 무시하고 강행한 후 구조적 기본권 침해가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정치적 책임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법적 책임의 공백이기도 하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헌법재판 제도 설계에서 "신중함이 용기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참고문헌


독일법 자료

BVerfGE 7, 198 (Lüth-Urteil, 1958)

BVerfGE 18, 85 (Patent-Beschluss, 1964) – Heck'sche Formel

Ekkehard Schumann, Verfassungs- und Menschenrechtsbeschwerde gegen richterliche Entscheidungen, Duncker & Humblot, 1963

Dieter Grimm, "Die Urteilsverfassungsbeschwerde und das Verhältnis von Verfassungsgericht und Fachgerichten in Deutschland", Seoul Law Journal 2014, S. 339–376

Kwang-hyun Chung, Zur Nützlichkeit der Urteilsverfassungsbeschwerde: Eine rechtsvergleichende Betrachtung u.a. aus koreanischer Perspektive, Freiburg i.Br., Univ.-Diss. 2012

Klaus Schlaich/Stefan Korioth, Das Bundesverfassungsgericht, 11. Auflage, München 2019


스페인법 자료

Ley Orgánica 6/2007, de 24 de mayo (BOE-A-2007-10483)

STC 155/2009, de 25 de junio

González Beilfuss, "La especial trascendencia constitucional de las demandas de amparo", REDC Nº 107, 2016


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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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법 자료

ECtHR, Zimmermann and Steiner v. Switzerland, No. 8737/79 (1983)

Council of Europe, "Right to a trial within a reasonable time – comparative overview"

Barker v. Wingo, 407 U.S. 514 (1972)

U.S. Speedy Trial Act of 1974 (18 U.S.C. §§ 3161–3174)


한국법 자료

이부하, "헌법재판소의 업무부담경감", 법조 제56권 제2호, 2007

한수웅,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청구기간의 헌법적 문제점", 중앙법학 제15권 제4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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