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다의성, 그리고 법실증주의

서고지기의 생각, 제11면

by 소는영


대상 논문은 조홍식, "'법의 지배'의 침묵과 그 적대자들", 『서울대학교 法學』 제63권 제2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2022), 1-33면 입니다.





1. 조홍식(이하 동저이므로 생략), 앞의 논문(이하 동저이므로 생략)(주 1), 2면


저자가 보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법의 과잉이다. 이는 단지 법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실천에만 한정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 전반에 법의 과잉에서 비롯된 측면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법에 대한 사회의 의존은 자칫하면,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법률만능주의를 불러온다 그리하여 사회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그 해결을 위해 등장하는 담론은 도덕이나 정치의 장에서 채 숙성되기도 전에 법적 논쟁으로 비화하고 거기서 증폭된 갈등은 급기야 동료 시민을 승자와 패자로 영원히 갈라버린다. 법적 담론이 펼쳐질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는 법의 지배고 그것에 대한 찬양은 자연스럽다. 이때 패자가 생기는 건 법의 지배에 따르는 불가피한 현상이고 마땅히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일 뿐이다."




2. (주 2), 4면


그런데 이런 이해가 맞는지 아닌지는 단적으로 법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定義)하는가에 달려 있다. 전통적인 자연법론은 보편적 객관적인 옳음의 기준으로서의 자연법이 존재하고, 일반적인 사물과 마찬가지로 이성을 통해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가치상대주의의 확산에 따라 그 세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계기가 된 것은 나치스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홀로코스트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한 정치세력에 의하여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합법적인 정책으로서 실현된 점에 있다. 한 민족의 절멸을 목표로 하는 비인도적인 행위였지만, 그것이 일정한 절차에 의해 제정된 법에 터 잡은 행위라면 합법적이라고 우리는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목표로 삼은 것이 너무나도 명백히 악(惡) 이므로 그 형식적인 합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법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3. (주 3), 4면, "한스 켈젠, "Law and peace in International Relations", 3, Havard University Press, 1942"


개념을 정의할 때는 항상 그 개념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되는 말의 보통 의미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사유(思惟)'경제의 이유"에서 '법'이라는 말의 가장 포괄적인 의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4. (주 4), 7면, "長谷部恭男, 法 支配 意味, の が しないこと, 149 (東京大學出版会, 2000)"


말의 사용법은 물론 사람마다 이러저러할 수 있지만, '법'의 지배를 '좋은 내용의 법'의 지배와 동일시하여 바람직한 법체계의 존재방식을 모두 포함할 듯이 농후하게 정의해버리면, 이 개념을 따로 떼어 검토의 대상으로 삼을 의의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많은 법철학자의 용법대로 법의 지배를 '이성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하여 법이 갖추어야 할 특질'이라는 의미로 새기고 그런 의미의 법의 지배의 내용과 한계를 검토하는 게 합당하다.




5. (주 5), 8면


무엇보다 '법의 지배'를 그렇게 보는 것은 의미론적으로 맞지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널리 수용되는 법의 개념에 의하면 '법의 지배'에서 말하는 '법'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만들어낸 규칙이지, 이성을 통하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도덕률이 아니다. 시민들이 '법'의 지배 라는 말 속에 너무나 많은 걸 담으려고 하는 것은 이런 개념상의 혼란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생각한다.



6. (주 6), 9면


정치적 이상이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널리 퍼지면, 그것은 정치적 슬로건이 되어 대중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것으로 포장되게 된다. 법의 지배에 대해서도 좋은 것은 모두 다 수용할 수 있는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류(類)의 관념이 이미 형성되었다. 좋은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니 이런 관념을 채택하게 되면, 법의 지배가 의미하는 내용은 논자마다 다르게 된다.




7. (주 7), 13면


입법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불완전하고 그들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법에는 공백과 불확정성, 그리고 모순이 내재하게 된다. 민주와 법치 사이에 잠복해 있는 긴장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결정이 사법부에 맡겨질 때, 그 긴장은 고조되고 정치인과 법관은 그 해결사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이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8. (주 8), 16면


이처럼 전문가 집단에 의한 소외와 부정의(不正義)의 기운이 감도는데, 도대체 어째서 인류는 법적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일까? 하트(Hart)의 답은 간명하다. "법적 사회로 가지 않으면 상황이 더욱 나빠지기 때문이다." 사회가 진화하면서, 사회의 가치관은 더 이상 동질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도덕관념이 다원화하게 되면 사회구성원에게 도덕규칙과 관례는 이제 판명(判明)하지 않게 된다. 이런 자연상태 직전의 상황으로부터 다소간 예측가능한 세계로의 탈출, 바로 이것이 일정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법적 사회로 나아갈 때, 얻을 수 있는 확고한 이득이다.




9. (주 9), 22면, "Yasuo Hasebe, “The Rule of Law and Its Predicament,” Ratio Juris vol. 17 no. 4, 489, 498 (2004)."


독일의 법치국가는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계속 '실체화'되어 왔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 사회가 차 대전 후 겪게 된 상황, 즉 상처 입은 감수성과 끔찍한 국가적 굴욕감이 독일인들의 가치체계를 한 방향으로 수렴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차 대전 후 번창일로를 걷기 시작한 독일헌법재판소의 성공은 치욕의 헌정사, 즉 2차 대전에서의 패전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이 독일 사회를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동질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0. (주 10), 24면


개별 법규범이 일반추상적인 법과 관계없이 개개 기관의 재량에 의하여 창설되고 집행된다면, 공포와 운용이 불일치하는 법과 마찬가지로 피치자들은 정부의 행동에 관하여 예견가능성을 얻을 수 없다.




11. (주 11), 25면


입법에 있어서 모호한 ‘기준(Standard)’ 이나 일반조항의 다용(多用)은, 검찰은 물론 사법부에도 영향을 미쳐 그들이 결정할 때 형식적 추론 대신에 목적적이고 정책지향적인 추론을 채택하게 만든다. 형식적 추론이 해당 규칙으로부터의 연역에 기반해 형식적 정의를 추구하는 반면, 목적적 혹은 정책지향적 추론은 결정을 좌우하는 요소들의 복잡성과 가변성에 대응해 실체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다양한 논변이나 가치를 고려하고 선택한다. 결정과 관련한 고려 요소의 수와 종류가 증대하고 변화하면, 결정을 위한 분류나 유추를 하는 데 필요한 범주나 표지를 추출하고 유지하는 게 어렵게 된다. 또한 실체적 정의는 다른 상황을 다르게 취급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법부에 의한 법의 해석 적용에 있어서도, 재량이나 판단의 여지가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바, 이제 사법부의 결정은 그에 상응해 계층 혹은 집단 사이에 부와 자원을 (재)분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2026. 3. 14.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