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치열하게 울었다.

서고지기의 생각, 제14편

by 소는영

상담실로 향하는 갈림길. 그곳의 분위기는 언제나 "포근"했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선생님은 언제나 나를 환대해주었다


.



꿈을 꾸었습니다. 너무 아프고, 참담하고. 슬펐습니다. 어쩌면, 평소 "가면"만 쓰고 밝게 보이려고만 하였던 게 실상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꿈이 그렇게 무거웠군요.

깨어나서도 그 감각이 몸에 남아있는 것 같아서, 먼저 그냥 듣고 싶었습니다.


"가면"이라고 하셨는데 — 밝게 보이려 했던 것이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닐 거예요. 그 밝음도 당신의 일부였을 테니까요. 다만 그 아래에 쌓여있던 것들이, 꿈이라는 공간에서야 비로소 말을 걸어온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꿈이었는지, 혹은 요즘 어떤 감각 속에 있었는지,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평소, 저는 글을 쓰고 그것을 기고하고. 이를 하루의 일상, 반복으로 했습니다.


"꾸준히" 라는 단어도 어쩌면, 그때만큼은 '외부에 얽메이지 않은 채' 오롯이 하고 싶은 것(취미)을 하고 싶어서 하였을뿐인데 사후적으로 "근면성실"이라는 딱지가 붙여진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몸이 하나씩 밖에 없으니, 저는 기고에 할애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만 안적어도, 그 사실만으로도 자책과 책임 몰각을 생경했는데. 학교와 바쁜 일상은 그러한 저의 민감성을 누그러 뜨리는데 너무나 유효적절했습니다. 이젠 내가 글을 썼던게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었을까요. 항상 마음 깊숙히 넣어두고 처박혀두기만 하였던 게, 오늘 비로소 악몽으로 현현된 것만 같습니다.

악몽. 저는 어느 유명한, 매우 유명한 대기업이 주관한 학술 위원회에 투고요청했습니다. 피드백이 왔습니다. 그것도 위원회의 장이 직접 보낸것이었죠. 유명 대기업의 선대 회장의 다섯째 자식이자, 현재는 통신, 전자 계열사의 회장으로 있는 분이었죠. 저는 기대에 찬 채로 읽기 시작합니다.

피드백. 그것은 분명 피드백이 맞습니다. 어떤 점에서 부적절한지, 어떤 것이 좋을지 등. 15가지의 지적 사항 속에서 저는. 최소한의 "배려"를 찾을 수, 아니 찾고자 했습니다.

조롱이었던 걸까요. 연민? 검토위원 셋 모두 읽지도 않고 폐기했다는 내용을 덧붙인 회장의 문장은, 최소한의 배려였을까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글도 스스로 못쓰는데 형편없는 수준이긴한데 그냥 불쌍해보이니 대충 조롱섞인 내용담아 보내면 되겠지. 는 아니었을까요.

저는 울었습니다. 소리쳤습니다. 현실에선 한번도 할 수 없던, 해서도 안되는, 마치 금기의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 필요없다. 다 싫다. 의미없다. 쓰레기다 나는. 등.

그렇게 꿈에서 울기만 했습니다.



읽으면서 저도 가슴이 무거워졌습니다.

꿈속에서 그 문장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 기대를 품고 열었다가, 읽어내려가면서 조금씩 무언가가 무너지는 그 감각이 — 너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검토위원 셋 모두 읽지도 않고 폐기했다"는 문장. 그게 배려였는지 조롱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 사실 그 불분명함 자체가 더 잔인한 것 같습니다. 명백히 나쁜 말이었다면 차라리 분노할 수 있는데,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으면 그 안에서 계속 헤매게 되니까요.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그리고 꿈 안에서 소리치고 우셨다는 것 — 현실에선 한 번도 할 수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현실의 당신은, 그 감정들을 어디에 두고 계셨나요? 꿈이 그것을 꺼내놓기 전까지.




마음 어딘가 깊숙한 곳. 꿈에서의 기억에 의하면, 저는 " 다 꺼졌으면" 이라는 문장을, 어느 한 그림을 [확대], 끊임없이 확대하며 하나의 픽셀이 보일때쯤 까만 배경 속, 하얀 글씨로 나지막히 적었습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허락된 제 같았다고 할까요.



"다 꺼졌으면" — 이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솔직하게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해치고 싶다거나,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신가요?

판단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아닙니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 꺼졌으면" 이라는 말은, 일상용어로서 단순한 meme과 같습니다. 자조섞인 표현이지만, 자신의 삶 전반을 포기하거나 태만하려는 의지표명과 다릅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심이 됩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 꿈속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픽셀 하나가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 그 행위 자체가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글을 쓰는 방식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을 세밀한 곳까지 파고드는 것.

그 까만 배경 속 하얀 글씨가 "유일하게 허락된 방"처럼 느껴졌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당신에게 그런 방이 — 외부의 평가나 기대나 "근면성실"이라는 딱지 없이, 그냥 있을 수 있는 공간이 — 있으신가요? 아니면 글쓰기마저도 그 방이기를 멈춘 것 같은 느낌인가요?





지금은, 그 방이 저의 작업실 방 한켠 침대로 좁혀졌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침대 에서 잘 때 머릿속 공간, 그 중에서도 "이러한 악몽 그 자체 "가 방 일지도. 모르겠네요.


유일하게 가면을 벗고 솔직해질 수 있는 곳 말이죠.




악몽이 오히려 가장 솔직한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 역설이 슬프면서도, 동시에 — 당신의 안에 그 솔직함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눌러도 사라지지 않고, 잠든 사이에 기어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니까요.

낮의 당신은 논문을 쓰고, 자료를 찾고, 학술프로젝트에 임하고, 시험도 따로 준비합니다. 그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지만 — 그것들이 점점 "방" 바깥의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기고하고 글을 쓰던 그 시절, 당신이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발행 직후였나요, 아니면 쓰는 중이었나요, 아니면 전혀 다른 어떤 순간이었나요?






스스로, 사고하여 쓰던 그 순간. 살아있다고 느낀 그 때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저는 분명 만족합니다. 오히려 지난 날의 나태함으로 밀린 숙제를 벌충할 수 있어, 비로소 '1인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생하였다. 잘했다" 등. 업무 프로젝트 마친 후의 노고를 치하하는 일련의 감사는 제가 쓴 "일상에서의 가면"의 재질을 더욱 값비싸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긍정의 피드백은 성장으로의 무한동력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평소, 아니 어쩌면 어제, 불안을 계속 담았던 것 같습니다. "가면쓴 게 드러나면 어떡하지?" " 내 실력에 맞는 대우가 이렇게 뛰어날리가 없는데? " "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은 아닐까" 등.


좋은 아이디어를 스스로 내지 못하게 되었을때 저의 가치는 그렇게 소멸될텐데 그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스스로 사고하여 쓰던 그 순간,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 그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던 것이 점점 밀려나고, 대신 그 자리를 "1인분", "잘했다", "성장"이라는 말들이 채우고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그 말들은 카우 씨를 키워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면의 재질을 더 두껍게 만들어버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스스로 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의 가치는 소멸된다"는 말 — 이게 불안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게 불안이라기보다 오래된 믿음처럼 들렸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면에 자리잡은.

당신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글을 쓸 때 살아있다고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그 살아있음은 — 누군가에게 읽히거나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사고하는 그 행위 자체에서 온 것이었나요?





맞습니다. 외부와 관계없이,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고 정갈하게 표현하는 것. 어쩌면 언어 그 자체에 천착하던 그 순간. 그때가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멍 때린다"는 표현. 저는 그것이 글 쓸때 드러났습니다.




그 행복이 지금도 당신 안에 있다는 걸, 이 대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생각을 정리하고 언어로 정갈하게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악몽 이야기를, 가면 이야기를, 픽셀 하나까지 확대하던 꿈속 장면을. 논문도 아니고, 평가도 없는 이 공간에서.

어쩌면 오늘 아침 이 대화가 — 오랫동안 잠겨있던 그 방에 잠깐 들어간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고문을 다시 써야 한다거나, 꾸준해야 한다거나 —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다만, 그 "멍 때리는 순간"이 당신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 그냥 그것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오늘 이야기해주셔서, 저도 감사했습니다.

가끔, 그 방에 들르시길 바랍니다.




2026. 4. 4.






















자리에서 일어난다. 맨 바닥에 앉아있다보니 녹슨 먼지와 뽀얀 비사가루가 흩날렸다. 엉덩이에 묻은 것을 훌훌 털고, 몸을 돌려 출구의 계단으로 향했다. 오늘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등 뒤의 공간, 아니 상담실을 그대로 놓은 채로. 그곳은 그렇게 앞으로도 전등도 없고 오래된 비닐포대, 그리고 빈 나무의자만 있으면서 앞으로도 나만의 공간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