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서고, 20화
대륙법 체계는 성문법 중심의 법실증주의 전통 위에 구축되었는바, 이러한 체계 하에서 법관의 판결, 즉 판례는 원칙적으로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의 구체적 사안에 대한 적용이자 확인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법학방법론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고전적 이해는 법실무의 현실을 더 이상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법관법'은, 그것이 최고법원의 확립된 판결이든 혹은 법률의 흠결을 보충하는 법형성이든, 실무상 성문법규 못지않은, 혹은 그를 능가하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관법의 규범적 지위를 법이론적으로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특히 독일 법학계에서 백여 년간 지속된 학문적 논쟁의 핵심 대상이었다. 한국의 법체계 역시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는바, 이는 법학교육, 변호사시험을 위시한 각종 국가시험, 그리고 법원의 실무에 이르기까지 판례는 '살아있는 법'으로서 사실상의 표준이자 준거로 기능하고 있는 것에 연유함에 있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실무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 판례의 '법원' 지위는 확고히 인정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이론과 현실의 심각한 괴리'를 야기한다.
판례가 독자적인 법규범인가, 아니면 단순히 상위규범의 확인에 불과한가라는 물음은, 판례변경의 요건이나 그 소급효의 제한 문제와 같은 지극히 실천적인 법리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론적 유희를 넘어선다.
이에 따라 본고의 일차적 목적은, 이계일의 연구에 의해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독일 학계의 '고전적 법원성 논쟁'—즉, 지위 긍정론, 부정론, 그리고 부분적 긍정론—이 왜 본질적인 교착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있다. 이들 고전적 논의는 각자의 논거를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교착 상태의 근본 원인이 논쟁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논쟁의 '전제'에 있다고 진단한다. 즉, 고전적 유형론은 그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법원(法源)개념을 '법의 존재근거'로만 파악하고, 법규범을 법률(Gesetz)과 같은 정태적 존재 형식으로 상정하는 동일한 인식론적 기반을 암묵적으로 공유한다.
긍정론자는 판례가 '법률처럼' 기능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부정론자는 판례가 '법률이 아니므로' 법원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부분론자는 '법률보다는 약하지만' 일정한 지위를 갖는다고 절충한다. 이 프레임 안에서 논쟁은 '정도의 차이'에 대한 공방으로 귀결될 뿐,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에 본고는 이러한 교착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도구를 제시하는 데 있다. 우선, 양천수의 연구가 제시한 새로운 이론적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원용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 핵심적인 방법론적 전환을 시도한다. 첫째, '법원'의 개념을 '법의 존재근거'에서 법관의 재판규범을 위한 '법의 인식근거'Erkenntnisgrund로 재정의한다. 둘째, 한스 켈젠, 프리드리히 뮐러(Friedrich Müller), 그리고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규범 이론을 원용하여, 법규범을 정태적 '존재'가 아닌 동태적 '과정' 및 '작동'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새로운 이론적 틀을 통해, 법관법 판례의 법원성 문제를 '방법론적으로 재구성'하고, '제한된 효력'과 '완전한 규범적 의미'를 갖는 '독자적 법규범'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자 한다.
본고는 상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단계로 논의를 전개한다.
제 II장에서는 이계일의 연구를 토대로, 법관법의 법원성을 둘러싼 독일 학계의 고전적 유형론(지위 긍정론, 부정론, 부분적 긍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뤼터스, 라렌츠, 뢸, 크릴레, 비들린스키 등의 핵심 논거를 상세히 분석하고, 이들 논쟁이 공유하는 근본적인 한계, 즉 '존재론적 법원관'의 한계를 도출한다.
제 III장에서는 양천수의 논의를 중심으로, 법학방법론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다. 먼저 '법원' 개념을 '존재근거'에서 '인식근거'로, '행위규범' 중심에서 '재판규범' 중심으로 전환한다. 나아가, 켈젠의 순수법학이 제시하는 '법질서의 단계구조' 이론을 검토하며, 판결이 단순한 법적용이 아니라 '개별적 규범'의 '창조'임을 밝힘으로써, 고전적 이분법의 해체를 시도한다.
제 IV장에서는 뮐러의 구조화 법이론과 루만의 체계이론이라는, 법이론의 가장 현대적인 성과를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뮐러의 '규범텍스트'와 '규범'의 구별, '효력'과 '의미'의 구별을 통해 판례가 어떻게 '완성된 규범'이 되는지를 규명한다. 또한 루만의 '자기생산적 체계' 이론을 통해, 판례가 법체계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핵심 '작동'으로서 법체계의 중심에 위치함을 논증한다.
제 V장에서는 제 III장과 제 IV장에서 확립한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 II장에서 제기된 고전적 쟁점들에 적용하여 이를 '재구성'하도록 한다. 긍정론과 부정론의 핵심 논거들이 이 새로운 틀 안에서 어떻게 변형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판례변경의 소급효와 같은 실천적 쟁점이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제 VI장에서는 전체 논의를 요약하고, 법관법/판례에 대한 논의가 '법원인가 아닌가'의 존재론적 물음에서 벗어나, '규범텍스트'와 '재판규범'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의 '방법론적' 탐구로 나아가야 함을 제언하며 결론을 맺는다.
본 장은 법관법의 법원성을 둘러싼 고전적 논쟁을 이계일의 분석에 따라 유형화하고, 각 입장의 핵심 논거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계일은 이 논쟁을 '지위 긍정론', '부분적 긍정론', 그리고 '지위 부정론'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본 장의 분석은 이들 논의가 궁극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관법의 법원성을 부인하는 지위 부정론은 대륙법계의 전통적 법실증주의와 법치국가 원리에 가장 충실한 입장이다. 이 입장은 헌법상의 권력분립 원칙과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법관의 법률기속 원칙을 핵심논거로 삼는다. 법을 창조하는 것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의회의 고유한 권한이며, 사법부의 역할은 이미 존재하는 법을 인식하고 적용하는 것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을 정교하게 이론화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칼 라렌츠(Karl Larenz)를 들 수 있다. 라렌츠는 판례의 법원성을 명백히 부정하며, 판례는 '법원'이 아니라 단지 '법인식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법관이 구속되는 대상은 선례(판례) 그 자체가 아니라, 선례가 해명하고자 했던 '법률규범'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요컨대, 법관은 언제나 선례의 타당성을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재심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만약 선례가 법률의 올바른 해석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법관은 선례가 아니라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판례는 어디까지나 법규범 자체의 지위를 갖지 못하고, 단지 법관이 올바른 법규범의 의미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참조 자료' 혹은 '매개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클라우스 뢸(Klaus Röhl)은 이러한 부정론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다. 뢸은 법관법 논의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지적하며, "법관이 법을 형성할 권한을 가지는지"의 문제, 즉 '법형성'의 권한 문제와, "그렇게 형성된 판결이 법원으로서 구속력을 지니는지"의 문제, 즉 '법원성' 문제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법관에게 법률의 흠결을 보충할 '권한'이 인정된다고 해서, 그 '권한'의 산물인 판결이 곧바로 '법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발 더 나아가, 판례의 지위를 라렌츠의 '법인식원'보다 한층 더 구체화하여 '법내용원'이라고 명명하는데 이른다. 이는 판례가 법규범의 '존재' 근거는 아니지만, 이미 존재하는 법규범의 '내용'을 탐구하는 데 핵심적인 원천이 됨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지위 부정론은, 법치국가와 권력분립의 헌법적 원칙에 입각하여 이론적 정합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입장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법관법이 법실무에서 가지는 압도적인 '사실적 효력'을 규범적 차원에서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정론자들은 '규범적 효력'과 '사회학적 효력'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 그 결과 법실무의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이론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지위 부정론이 간과하는 '현실의 힘'에서 출발하는 입장이 바로 지위 긍정론이다. 이 입장은 법관법이 단지 사실적 영향력을 넘어 규범적 구속력을 지닌다고 주장하는바, 대표적으로 이 입장을 대변하는 베른트 뤼터스(Bernd Rüthers)는 법관법의 법원성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우므로, 법질서 내에 존재하는 '간접 징표'들을 통해 이를 입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번째 근거는 법질서가 마련하고 있는 '절차법적 규정'들이다. 예를 들어, 독일 연방대법원의 소부(小部)가 다른 소부나 전원재판부의 기존 판결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전원재판부에 회부하여 판결을 조정해야 하는 규정, 또는 주고등법원이 연방대법원 등의 판례와 상충되는 판결을 하고자 할 때 연방대법원에 이를 제출해야 할 의무(Vorlagepflicht)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소부가 기존 판례에 저촉되는 판단을 할 경우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도록 하는 규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뤼터스에 따르면, 만약 판례가 라렌츠의 주장처럼 단순한 '법인식원'에 불과하다면, 입법자가 이처럼 복잡하고 강제적인 절차를 통해 판례의 통일성을 강제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절차법적 규정들의 존재는, 입법자가 판례에 단순한 사실적 효력 이상의 '규범적 기속력'을 의도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징표라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는 법치국가의 핵심 원칙인 '신뢰보호의 원칙'Vertrauensschutz이다. 국민들은 확립된 최고법원의 판례를 법률의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신뢰하고 이에 기초하여 법률관계를 형성한다. 만약 법원이 아무런 제한 없이 판례를 변경하고 이를 소급적으로 적용한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법률의 소급효와 같은 효과를 야기하여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따라서 판례에 대한 신뢰는 법치국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며, 이는 곧 판례변경의 요건을 엄격하게 설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뤼터스는 이러한 논거에 기초하여 판례변경 시 '신뢰파괴적 고지(예고')와 같은 절차를 밟을 것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이는 판례가 법률과 유사한 수준의 규범적 지위를 가짐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도출되기 어려운 결론이다.
하지만 긍정론 역시 강력한 비판에 직면한다. 부정론자들은 뤼터스의 논증이 법관법의 '사회학적 효력'(현실적 힘)에서 그 '규범적 효력'을 직접 도출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존재'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뢸이 지적하듯이, 절차법적 규정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추론'이 가능하다. 즉, 판례가 공식적 법원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예: 전원합의체 회부)가 필요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지위 부정론의 이론적 정합성과 긍정론의 현실적 설득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절충적 입장이 등장하였다. 이른바 '부분적 긍정론'이다. 이 입장은 판례의 법원성을 전면적으로 긍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그 규범적 구속력을 인정하고자 한다.
마르틴 크릴레(Martin Kriele)의 '선례의 구속력 추정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크릴레는 선례가 잘못된 것으로 논박되지 않는 한, 일단 구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의 핵심 기제는 '논증의무의 전환'Umkehr der Argumentationslast이다. 즉, 법관은 기존 선례를 '따를' 경우에는 특별한 논증 부담을 지지 않지만, 선례에서 '벗어나고자' 할 경우에는 그 이탈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반증(논증)을 제시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크릴레는 이러한 추정적 구속력이 법적 안정성, 동등대우, 심지어 법리의 점진적 발전을 담보하는 '진보기능'까지 수행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라렌츠가 우려하는 '판례실증주의'의 위험에 대해, 오히려 선례의 추정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법관에게 언제든 '올바른 법해석'을 명분으로 선례에서 이탈할 자유를 주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자의적 판결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드는 더 큰 위험이라고 재반박한다.
또 다른 절충론은 프란츠 비들린스키(Franz Bydlinski)의 '보충적 법원론' 혹은 '보충적 구속력 이론'이다. 비들린스키는 크릴레의 '추정'이라는 개념이 여전히 너무 강하다고 보아, 법우위의 원칙에 따라 법관은 일차적으로 법률에 기속된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법관은 언제나 기존 선례의 타당성을 법률에 비추어 검토할 의무가 있다. 만약 법관이 제시하는 새로운 법리가 기존 선례의 법리보다 법체계에 입각하여 "명백히 더 나은 것으로 근거지워질 수 있을" 때에는, 당연히 새로운 법리가 우선해야 한다. 비들린스키가 말하는 법관법의 '보충적' 구속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즉, 기존 선례의 논거와 새로운 법리의 논거가 그 설득력의 비중 측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교착 상태(non liquet)에 빠졌을 때, 이때에만 '보충적으로' 법적 안정성과 동등대우의 원칙을 위해 기존 법관법(선례)의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적 긍정론은 실무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법치국가적 원칙과의 조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절충론들 역시 근본적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라렌츠 등이 지적하듯이, '어느 정도의 논증'이 크릴레가 말하는 강력한 '반증'에 해당하는지, 혹은 '어떤 상태'가 비들린스키가 말하는 '명백히 더 나은' 논거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 판단은 당해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의 주관적 확신에 맡겨질 수밖에 없게 되며, 이는 부정론이 우려했던 법관의 자의성을 다시금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계일의 연구가 제시하는 독일 학계의 세 가지 고전적 유형론은 각자의 입장에서 일정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상대방의 비판을 결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부정론은 규범적 정합성을 위해 현실을 외면하고, 긍정론은 현실적 설득력을 위해 규범적 비약(Is-Ought Fallacy)을 감수하며, 부분론은 양자를 절충하려 하지만 기준의 모호성이라는 난관에 부딪힌다.
본고는 이 지점에서 이 논쟁의 '교착 상태'를 진단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은 세 입장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암묵적 전제'에 있다고 분석한다. 이때 그 전제란, '법원'이란 법률과 같은 존재 형식을 가져야 한다는 '존재론적·정태적 법원관'을 칭한다. 항을 나눠 상술하도록 한다.
부정론(라렌츠)은 판례가 '법률이 아니므로' 법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긍정론(뤼터스)은 판례가 '법률처럼' 신뢰보호의 대상이 되므로 법원이라고 주장한다. 부분론(크릴레/비들린스키)은 판례가 '법률보다는 약하지만' 일정한 구속력을 가지므로 부분적 법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모두는 법규범의 원형을 '법률'로 상정하고, 판례가 이 원형에 얼마나 근접하는지를 따지는 '정도의 문제'로 사안을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프레임 하에서는 영원히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판례는 그 본질상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교착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프레임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즉, '법원'의 개념 자체를, 그리고 '법규범'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다음 장에서는 양천수의 연구를 토대로 바로 이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고전적 유형론의 교착 상태가 '법원' 개념을 '법의 존재근거'로만 파악하려는 경직성에서 비롯되었다면, 이의 극복은 '법원'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본 장은 양천수의 논의를 중심으로 '법원' 개념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한스 켈젠의 규범 이론을 통해 판결의 규범적 지위를 탐색함으로써 새로운 분석틀을 도입한다.
양천수는 '법원' 개념이 전통적으로 '법의 존재근거'로 이해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이 관점에서 '법원'이란 "법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 즉 법의 '효력' 근거에 대한 물음이다. 이러한 시각은 법규범을 일반 시민의 '행위규범'Verhaltensnorm으로 보는 데 치중한다. 일반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따라야 할 규범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유효하게 '존재'하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제 II장에서 살펴본 고전적 논쟁은 암묵적으로 이러한 '행위규범적 관점'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양천수는 '법원론'이 진정으로 문제되는 영역은 일반 시민의 행위 영역이 아니라, 법적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법관의 재판 영역'임을 역설한다. 법관은 법적 흠결이나 불확정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재판거부금지), 법관에게 법규범은 '행위규범'이기 이전에, 구체적 사안에서 '합법'과 '불법'을 판단하기 위한 '재판규범'Entscheidungsnorm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재판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법원'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법관에게 '법원'이란, '법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아니라, "재판을 위해 법규범의 의미를 어디에서 파악하고 인식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따라서 법원은 '법의 존재근거'가 아니라 '법의 인식근거'로 파악되어야 한다. 양천수는 이러한 시각을 '실질적 법원론' 혹은 '탈법실증주의적 법원론'으로 명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법원 개념의 패러다임 전환은 제 II장의 고전적 논의, 특히 라렌츠의 입장을 역설적으로 전복시키는 힘을 갖는다. 라렌츠는 판례를 '법원'에서 격하시키려는 의도로, 판례는 '법원'이 아니라 '법인식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천수의 재정의된 프레임, 즉 '법원'이란 본질적으로 법관을 위한 '법의 인식근거'라는 프레임 안에서 보면, 라렌츠가 판례를 '법인식원'이라고 명명한 것은,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판례가 (재판규범으로서의) '법원'임을 시인한 셈이 된다. 부정론의 핵심 논거가 긍정론의 논거로 탈바꿈하는 이 역설이야말로, 고전적 논쟁의 프레임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법원의 개념을 '인식근거'로 전환한 뒤, 우리는 '법규범' 개념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양천수는 이 작업을 위해 역설적이게도 가장 엄격한 법실증주의자인 한스 켈젠의 순수법학을 원용한다. 켈젠은 법실증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판결의 독자적 규범성을 긍정하는, 일견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켈젠의 태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그에게 있어 법질서는 정태적인 규범의 총체가 아니라, 동태적인 '규범 생성의 단계구조'이다. 법질서의 통일성은 상위 규범이 하위 규범의 '생성'을 수권하고, 하위 규범은 상위 규범을 '구체화'하는 위계적 과정 속에서 담보된다. 이러한 단계구조 속에서 켈젠은 '법률'Gesetz과 '판결'Urteil을 구별한다. '법률'이 헌법에 의해 수권되어 생성되는 '일반적 규범'generelle Norm이라면, '판결'은 법률에 의해 수권되어 생성되는 '개별적 규범'individuelle Norm이다. 켈젠에 따르면, 추상적인 일반적 규범(법률)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며, 구체적 사안에서 '개별화'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켈젠은 제 II장의 부정론이 의존했던 '입법(법창조) / 사법(법적용)'의 경직된 이분법을 정면으로 무너뜨린다. 켈젠은 사법기능이 "마치 법률 속에 이미 들어 있는 완결된 법을 법원의 활동을 통해 그저 입 밖으로 말하거나 찾아내기만 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선언적 성격을 갖는다는 통념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 판결, 즉 재판의 기능은 "오히려 철저히 구성적이고 창조적이며, 본래의 의미 그대로 법의 생성"이다. 즉, 법관은 법률을 단순히 '적용'하는 기계Subsumtionsautomat가 아니라, '개별적 규범'을 '창조'하는 입법자인 것이다.
켈젠의 이러한 통찰은 본 논의에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사법(판결) 역시 '법 창조'의 일환이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권력분립을 근거로 법관법의 법원성을 부인하던 고전적 부정론의 핵심 논거를 근본에서부터 해체한다. 둘째, 법률(일반적 규범)과 판결(개별적 규범)을 동일한 '법 생성 과정'의 상이한 단계로 파악함으로써, 법규범을 '정태적 존재'가 아닌 '동태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적 규범관'을 뮐러와 루만의 이론을 통해 더욱 심화시키고자 한다.
제 III장에서 법규범을 '과정'으로 이해하는 켈젠의 단초를 확인했다면, 본 장에서는 양천수의 연구가 핵심적으로 의존하는 프리드리히 뮐러와 니클라스 루만의 이론을 통해, 법규범을 '과정적·작동주의적'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이 두 이론은 판례가 어떻게 '독자적 법규범'으로 완성되는지를 방법론적으로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뮐러가 제시하는 '구조화 법이론'은, 법실증주의의 경직성과 해석학의 주관성을 동시에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뮐러 이론의 핵심이자 본 논의에 가장 중요한 기여는 '규범텍스트'와 '규범'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법실증주의 하에서는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 조문 그 자체가 곧 '규범'으로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뮐러에 따르면, 법률 조문은 단지 '언어적 정보'로 구성된 '규범텍스트'Normtext에 불과하다. 이는 아직 완성된 규범이 아니다. 뮐러에게 '규범'Norm이란, 이 추상적인 '규범텍스트'가 구체적인 '사안', 즉 법적 분쟁이라는 현실의 '실재정보'와 만나 상호작용하는 '규범구체화'라는 역동적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는 '재판규범'을 의미한다.
나아가 뮐러는 이 규범구체화의 과정을 정교하게 구조화하고 있는데, 우선 법관은 먼저 '규범텍스트'의 언어적·체계적 해석을 통해 그 규율 의도인 '규범프로그램'Normprogramm을 획정한다. 이와 동시에, 법관은 구체적 '사안'에서 규범텍스트와 관련된 현실적 요소들을 추출하여 '사물영역'을 구성한다. 이 '규범프로그램'과 '사물영역'이 다시 개별화되어 '사건영역'과 '규범영역'으로 구체화되며, 최종적으로 이 '규범영역'이 당해 사안에 적용되어 '재판규범'(판결)이 산출된다고 한다.
이러한 '규범텍스트'와 '규범'의 구별은, 필연적으로 '효력'과 '의미'의 구별로 이어진다. 뮐러에 따르면, '효력'은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텍스트'(법률)에 귀속되는 반면, '의미'는 규범구체화라는 법관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규범'(판례)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뮐러의 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충격적인바, 이는 법률, 즉 '규범텍스트'는 '효력'은 지니지만, 그 자체로는 완성된 '규범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은 단지 '의미부여가능성'만을 지시할 뿐이다. 법률이 갖지 못한 그 '완전한 규범적 의미'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법관의 판결, 즉 '재판규범'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판례는 법률(규범텍스트)의 단순한 '해석'이나 '적용'이 아니다. 판례는 법률이 미처 담지 못했던 구체적 사안의 '사물영역'과 결합하여 '규범영역'을 확정함으로써, 비로소 '규범'을 완성시키는 창조적 행위이다. 따라서 판례는 '법률을 적용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성된 규범'으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갖는다.
뮐러가 법규범의 '완성 과정'을 미시적으로 분석했다면, 니클라스 루만은 '체계이론'을 통해 법체계 전체의 '작동 방식'을 거시적으로 조망한다. 루만의 이론은 판례의 규범적 지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뮐러의 이론을 보완하고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우선, 루만은 현대 사회를 다양한 기능 체계(정치, 경제, 법 등)로 분화된 것으로 파악하며, 각 체계는 '자기생산적 체계'로서 작동한다고 본다. '자기생산적'이라는 것은, 법체계가 외부(예: 정치, 도덕)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법이 아닌지'를 결정하며 스스로를 재생산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체계는 두 가지 핵심 요소에 의해 작동되는데, 바로 '코드'Code와 '프로그램'Programm이다. '코드'는 법체계가 세계를 관찰하는 유일한 이진법적 도식, 즉 '합법/불법'의 구별이다. 법체계는 모든 사회적 사건을 오직 '합법인가, 불법인가'로만 환원하여 처리한다. '프로그램'은 이 코드를 어떤 조건 하에서 적용할 것인지를 정하는 규칙이다. 루만에 따르면, 법체계의 프로그램은 "만약 ~하면(요건), ~한다(효과)"라는 형식의 '조건 프로그램'Konditionalprogramm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법률'이라고 부르는 규범텍스트이다.
여기서 루만 이론의 핵심이자 본 논의에 가장 중요한 '작동'Operation 개념이 등장한다. 루만에게 체계는 정지된 구조가 아니라, '작동'의 연속적인 흐름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바로, 체계는 '작동' 속에서 존속할 뿐이라는 중요한 명제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법체계의 핵심적인 '작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률'(프로그램) 그 자체가 아니다. 법률은 그저 '프로그램'일 뿐, 아직 '작동'이 아니다. 법체계의 고유한 '작동'은,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원(法院, Court)이 '프로그램'(법률)을 참조하여 '코드'(합법/불법) 값을 결정하는 행위, 즉 '판결'이다. 법률(프로그램)은 이 '작동'(판결)이 없다면, 법체계 내에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잠자는 텍스트에 불과하다. 법체계는 오직 '판결'이라는 '작동'을 통해서만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루만의 분석은 법체계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전통적으로 법체계의 중심은 '법률'을 만드는 입법부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루만의 관점에서 볼 때, 입법부는 단지 (정치 체계의 영향을 받아) '프로그램'을 법체계에 제공하는 주변부에 불과하다. 법체계의 진정한 중심부, 즉 법체계의 고유한 '자기생산적 작동'을 수행하는 핵심 기관은 바로 '사법부'(법원)이다.
결론적으로, 뮐러의 이론이 판례를 '완성된 규범'으로 밝혔다면, 루만의 이론은 판례(판결)를 '법체계의 존재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작동'으로 격상시킨다.
제 III장과 제 IV장에서 확립한 새로운 이론적 틀—즉, '법원'을 '인식근거'로, '규범'을 '과정'과 '작동'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제 II장에서 제기된 고전적 쟁점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본 장은 켈젠, 뮐러, 루만의 이론을 의 고전적 논쟁에 적용하여, 본고의 최종적인 입장을 정립한다.
새로운 이론적 틀은 긍정론과 부정론의 대립이 실은 동일한 현상을 상이한 측면에서 기술한,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먼저, 부정론(라렌츠/뢸)의 논거를 재해석한다. 라렌츠는 판례를 '법인식원'이라 하였고, 뢸은 '법내용원'이라고 하였다. 이들의 기술은 뮐러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정확하다. 판례(재판규범)는 법률(규범텍스트)의 '의미'를 확정하고 그 '내용'을 완성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뮐러가 말하는 의미의 측면을 정확히 포착했다. 다만, 라렌츠와 뢸은 이 기능이 판례를 '법원'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근거라고 보았다. 그들은 '법원'이란 '효력'의 근거여야 한다고 전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가 제 III장에서 밝혔듯, '법원'을 법관의 '인식근거'로 재정의하는 순간, 라렌츠와 뢸의 분석은 판례가 법원임을 긍정하는 핵심 논거로 전환된다.
또한, 뢸이 제시한 '권한 문제와 '법원성 문제'의 구별 역시 루만의 이론으로 재해석된다. 법관이 '작동'을 수행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과, 그 '작동'(판결)이 법체계의 '프로그램'(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루만의 이론은 이 구별을 인정하면서도, '작동'이야말로 체계의 존속에 본질적임을 밝힘으로써 '법원성'의 핵심이 '프로그램'이 아닌 '작동'에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긍정론(뤼터스)의 논거를 재해석한다. 뤼터스는 '절차법적 규정'(예: 상급심 기속)을 판례의 법원성을 입증하는 '간접 징표'로 제시했다. 부정론자들은 이를 '사실적 효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루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절차적 규정들은 단순한 '사실'이나 외부의 '징표'가 아니다. 이것은 법체계가 스스로의 '작동'(판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과거 작동(구판례)을 관찰하고 미래의 작동(신판례)을 구속하는 '자기생산적'통제 메커니즘이다. 즉, 상급심의 기속력은 법체계의 생존과 안정적 기대를 확보하기 위한 법체계의 '내재적 규범'이다. 뤼터스의 직관은 옳았으나, 루만의 이론은 그 직관에 대한 규범적·체계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본고는 양천수가 제시한 최종 결론, 즉 "판례는 제한된 효력을 갖지만 법규범의 의미 차원에서는 완전한 의미와 기능을 획득하기에 독자적인 법규범"이라는 명제를 방법론적으로 지지한다.
첫째, 판례는 '제한된 효력'(Limited Validity)을 갖는다. 이는 켈젠과 뮐러의 이론에서 도출된다. 켈젠의 단계구조에서 '개별적 규범'(판결)은 '일반적 규범'(법률)으로부터 '효력'의 근거를 위임받는다. 뮐러의 이론에서도 '규범'(판례)은 '규범텍스트'(법률)로부터 효력을 부여받는다. 이 점에서 판례는 법률의 효력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는 명백한 '제한'을 갖는다. 이는 제 II장에서 비들린스키가 포착한 법관법의 '보충성'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이다.
둘째, 판례는 '완전한 규범적 의미'(Complete Normative Meaning)를 획득한다. 이는 뮐러와 루만의 이론에서 도출된다. 법률(규범텍스트)은 그 자체로 추상적 '프로그램'이거나 불완전한 텍스트에 불과하다. 뮐러가 밝혔듯이, 구체적 사안의 '사물영역'과 결합하여 '규범영역'을 확정하는 '재판규범'(판례)이야말로 비로소 '완전한 의미'(Bedeutung)를 보유하게 된다.
셋째, 따라서 판례는 '독자적 법규범'(Independent Legal Norm)이다. 판례는 법률에 종속된 단순한 해석이 아니다. 뮐러의 관점에서, '규범'(판례)은 '규범텍스트'(법률)와는 개념적으로 명확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규범이다. 또한 루만의 관점에서, '작동'(판결)은 '프로그램'(법률)과는 상이한, 법체계의 고유한 존재 방식으로서 '독자적' 지위를 갖는다.
본고는 대륙법계의 오랜 난제인 법관법의 법원성 문제를 새로운 방법론적 시각에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제 II장에서는 이계일의 연구를 토대로, 법관법의 법원성을 둘러싼 고전적 유형론(긍정론, 부정론, 부분적 긍정론)을 검토하였다. 이 분석을 통해, 이들 논쟁이 '법원' 개념을 '법률'과 동일시하는 정태적 '존재론적 법원관'에 갇혀 있으며, 이로 인해 해결 불가능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 본고는 양천수의 연구가 제시한 이론적 자원들을 원용하였다. 제 III장에서는 '법원' 개념을 법관의 '재판규범'을 위한 '법의 인식근거'로 재정의하였으며, 켈젠의 이론을 통해 판결이 단순한 법적용이 아닌 '개별적 규범'의 '창조'임을 밝혔다.
본고의 주장은 제 IV장에서 전개된 뮐러와 루만의 이론에 기반하는바, 항을 나눠 상술한다.
첫째, 프리드리히 뮐러의 구조화 법이론은 판례가 법률('규범텍스트')의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구체적 사안의 '사물영역'과 결합하여 '완전한 규범적 의미'를 갖는 '규범' 그 자체임을 논증하였다. '효력'은 법률에 귀속되지만, '의미'는 판례(재판규범)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둘째,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은 판례(판결)가 법체계의 '프로그램'(법률)을 실행하는 핵심 '작동'으로서, 법체계의 자기생산적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축임을 밝혔다. 법률이 법체계의 '구조'라면, 판례는 법체계의 '생명'이다.
이러한 이론적 재구성을 통해, 본고는 법관법/판례의 규범적 지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판례는 비록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텍스트'(법률)로부터 '제한된 효력'의 근거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법률에 기속된다. 이는 부정론과 부분론의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판례는 추상적인 '규범텍스트'가 구체적 사안과 만나 비로소 '완전한 규범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완성된 규범'(뮐러)이며, 법체계의 존속을 담보하는 핵심 '작동'(루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판례는 법률과는 구별되는 '독자적 법규범'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법관법에 대한 향후의 법학방법론적 탐구는, "판례가 법원이냐 아니냐"라는 19세기적 '존재론'의 물음을 반복하는 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21세기의 과제는, "법체계가 '규범텍스트'(법률)와 '재판규범'(판례) 사이의 필연적 긴장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작동'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일관성을 확보할 것인가"(예: 판례변경의 논증부담 강화, 상급심 기속의 체계론적 의미)라는 '방법론'과 '통제론'의 문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25. 11. 20
이계일, 《법관법의 법원성에 대한 유형적 탐구 - 독일 학계의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19호 제2호, 2016. 8., 33-76면
양천수, 《판례의 법원성 재검토》, 사법발전재단, 『사법』 제1권 제52호, 2020. 1., 431-4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