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권 정당화 논리의 허구성과 입법책임에 관하여(2)

생각의 서고, 23화

by 소는영



I. 서론: 민주주의의 역설과 법감정의 괴리


현대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배(demos-kratos)'라는 숭고한 이념에서 출발하였으나, 현실 정치의 작동 원리에 있어서는 종종 절차적 기제인 '다수의 지배'로 환원되곤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 천명하듯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주권을 위임받은 권력기관이나 의회 내 다수당에 의해 법치주의가 위협받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 특히 정치가 사법(司法)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법을 정치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때, 일반 대중이 느끼는 자연법적 정의감, 즉 '법감정'과 형식적 실정법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발생한다.


본고는 민주주의가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때 발생하는 폐단을 법철학적, 형사법적, 그리고 비교법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네 가지의 핵심적인 법적 논점을 전개하고자 한다.



첫째, 다수의 지지를 업은 입법자가 제정한 법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정의의 본질에 반하는 '사악한 법(Lex Injusta)'이라면 과연 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는 최봉철의 효력론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둘째, 최근 사법 농단이나 정치 검찰을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논의되는 '법왜곡죄'의 실체는 무엇이며, 독일의 입법례와 비교할 때 과연 타당한가? 이는 김상현과 이진국의 논의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셋째, 검찰청 폐지와 같은 급진적인 입법이 전문가 집단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되어 국가적 손해를 야기했을 때, 입법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김성룡의 검찰개혁 비판과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최신 판례를 접목하여 규명한다.


넷째, 법왜곡죄가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논의를 통해 다수의 지배가 초래할 수 있는 법치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 국민주권과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법적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본고는 앞서 게시한 생각의 서고 22화 "통치권 정당화 논리의 허구성과 입법책임에 관하여"와 궤를 같이하여 일부 레퍼런스가 중첩되는 점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






II. 사악한 법의 효력과 민주주의의 한계


1. 다수결 원리와 '사악한 법'의 탄생 가능성


민주주의의 현실적 운영 원리인 다수결은 모든 시민의 평등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곧 정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임화연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다수의 지배'로 이해될 때, 이는 일인이나 소수의 지배와 다를 바 없는 전제(專制)의 한 형태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만약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절대적 대원칙으로 승인되면, 다수의 의견과 감정이 모든 개인을 지배하는 '사회적 전제'가 등장할 수 있다. 이는 51%의 인민이 49%의 인민에 대하여 강제력을 행사하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소수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명분 아래 희생될 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다수주의(majoritarianism)의 위험성은 입법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다수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의의 원칙을 무시하고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법률을 제정한다면, 우리는 이를 '법'으로서 존중해야 하는가? 즉, 형식적 절차를 거쳤으나 내용은 사악한, 이른바 '사악한 법'의 효력 문제가 제기된다.



2. 법의 효력에 관한 4가지 이론적 검토


사악한 법에 직면했을 때 법학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네 가지 효력론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최봉철은 이를 강한 자연법론, 약한 자연법론, 통속적 법실증주의, 학문적 법실증주의로 분류하여 분석한다.




-.-가. 강한 자연법론의 효력론(가치론적 기준)


성 오거스틴, 1946년 이후의 라드브루흐, 알렉시 등이 대표적인 이 입장은 법의 내용이 정의나 도덕의 근본 원칙에 현저히 위배될 경우, 그 법은 '법적 효력' 자체를 상실한다고 본다. 성 오거스틴은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Lex injusta non est lex)"라고 천명하였으며, 라드브루흐는 나치 정권의 법률적 불법을 경험한 후, 이른바 '라드브루흐 공식'을 제시하였다. 이 공식에 따르면, 실정법이 정의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위반하거나, 정의의 핵심인 평등을 의도적으로 부정한 경우, 그 법률은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정의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이는 사악한 법의 '법적 효력' 자체를 박탈하는 가장 강력한 태도이다.



-.-나. 약한 자연법론의 효력론 (이원적 효력)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이 입장은 사악한 법이라도 입법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었다면 일단 '법적 효력(systemic validity)'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법이 공동선이나 신의 명령에 위배된다면 양심에 비추어 볼 때 '도덕적 효력'은 부인된다. 즉, 법적으로는 유효한 법일지라도, 도덕적으로는 준수할 의무가 없다는 이원적 태도를 취한다. 아퀴나스는 폭군의 법을 "무조건적 의미에서의 법이 아니라 일종의 왜곡된 법"으로 보았으며, 인간적 견지에서 공정성에 위반되는 법에 대해서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저항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 통속적 법실증주의의 효력론 (법적 안정성 우선)


1932년의 라드브루흐(나치 집권 전)나 미국의 그리스울드와 같은 입장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법의 내용이 도덕에 반하더라도 법적 안정성을 위해 그 법의 효력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로 대변되는 이 이론은, 재판관은 정의가 아니라 법규의 효력 의지에 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스울드 역시 법에 불복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권위주의 정권이나 다수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될 소지가 가장 큰 이론이다.


-.-라. 학문적 법실증주의의 효력론 (솔직한 방법)


하트(H.L.A. Hart)나 라즈(Raz)가 이에 해당한다. 하트는 사악한 법도 제정 절차를 거쳤다면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곧 도덕적 복종 의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트는 "이것은 법이다. 그러나 너무나 사악하기 때문에 준수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지적으로 솔직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악한 법을 법의 범주에서 아예 제외하는 것보다, 법이 사악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도덕적 비판을 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광의의 법개념'에 기초한다.



3. 밤베르크 고등법원 판결과 사악한 법의 청산


사악한 법의 효력 문제는 나치 청산 과정에서 실제 재판의 쟁점이 되었다. 최봉철은 일명 '악의의 밀고자 사건(Grudge Informer Case)'에 대한 1949년 밤베르크 고등법원의 판결을 상세히 소개한다.

1944년 나치 치하의 독일, 한 부인이 남편을 제거하기 위해 남편이 집에서 히틀러를 비난하는 말을 했다고 당국에 밀고했다. 당시 나치의 법률(배반법 등)에 따르면 이는 처벌 대상이었고, 남편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전선으로 보내졌다. 전후에 이 부인은 불법 감금죄(자유박탈죄)의 간접정범으로 기소되었다. 부인은 "당시 유효했던 법에 따라 신고했으므로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밤베르크 고등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의 요지는 "어떤 행위가 실정법의 권위에 따라 행해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가 모든 온전한 사람들의 공정성과 정의에 관한 감정을 위반하였을 때 그 행위는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하트(Hart)는 이 판결을 두고 법원이 자연법론을 근거로 당시 나치 법률을 소급하여 무효로 선언했다고 비판했으나, 최봉철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하트의 오해였다. 법원은 나치 법률 자체를 무효로 본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부인에게 밀고의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부작위 명령), 부인이 남편을 죽이려는 악의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밀고한 행위 자체가 당시 형법상으로도 범죄를 구성한다고 본 것이다. 이 사례는 다수의 지배하에 만들어진 사악한 법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보편적 양심과 정의감에 비추어 그 효력과 적용이 제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III. 법왜곡죄의 정체와 도입 논의의 비판적 검토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혹은 사법 통제의 수단으로 '법왜곡죄'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이는 판사나 검사가 법을 왜곡하여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사법 정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다수의 지배가 사법부까지 통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 법왜곡죄의 개념과 입법자의 의도


김상현에 따르면, 법왜곡죄 법률안은 2018년 '사법농단' 사태를 계기로 처음 발의되었으며, 이후 정치적 지형과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24년과 2025년에 발의된 법안들이 대법원의 특정 사건 파기환송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2024년 법률안은 "증거해석, 사실인정, 법률적용을 왜곡하거나 그 정을 알면서 묵인한 경우"를, 2025년 법률안은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들 목적으로 법을 왜곡하여 적용한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김상현은 이러한 입법 시도가 권력에 부역한 사법 관료를 단죄하기보다는,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법왜곡죄의 연원이 현대 민주주의가 아닌 신권이나 절대왕권을 지키기 위한 고대 로마법이나 뷔르템베르크 왕국 형법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2. 독일의 법왜곡죄와 한국 도입 시 실효성 검토


법왜곡죄 도입론자들은 주로 독일형법 제339조를 근거로 든다. 이진국과 김상현의 분석을 종합하여 독일 제도의 실체와 한국 도입 시의 문제점을 검토한다.



-.-가. 독일 법왜곡죄의 구성요건과 운영 실태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기타 공무원'에는 검사도 포함되지만, 독일 판례는 검사가 '판사와 같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에서 결정을 내리는 경우(예: 수사 종결 처분)에만 주체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이 조항은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단순한 법 적용의 오류가 아니라, "법적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위반"이나 "중대한 인권 침해"가 명백하고, 법관이 의식적으로 법을 배제하고 자의적으로 결정한 경우에만 법왜곡죄를 인정한다. 실제로 나치 시대나 구동독의 사법 불법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주로 적용되었으며, 평시에는 적용 사례가 드물다.



-.-나. 한국 도입 시의 체계적 모순과 실효성 문제


한국에서 법왜곡죄를 도입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효성이 없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첫째, 직권남용죄 체계의 차이이다. 독일은 공무원의 직권남용에 대한 포괄적인 처벌 규정이 없고, 개별 범죄의 가중처벌 요건이나 법왜곡죄와 같은 특수 유형만을 처벌한다. 반면, 한국은 형법 제123조에 포괄적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두고 있어 이미 판검사의 부당한 직무 수행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존재한다. 따라서 별도의 법왜곡죄 신설은 옥상옥(屋上屋)의 과잉 입법이다.


둘째, 구성요건의 불명확성이다. 한국 법안들이 제시하는 '사실인정의 왜곡', '법률적용의 왜곡' 등의 개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독일 연방대법원조차 '법의 왜곡'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모호한 법이 도입되면, 법관이나 검사가 소신껏 내린 법적 판단이 수사 기관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범죄로 둔갑될 위험이 크다.


셋째, 검사에 대한 적용의 모순이다. 최근 한국의 검찰 개혁 논의는 검사에게서 수사권을 박탈하고 행정청의 일원(공소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런데 법왜곡죄는 주체에게 '판사와 같은 수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요구한다. 검사를 당사자주의적 소송 구조의 일방 당사자로 격하시키면서, 동시에 판사와 같은 중립성을 요구하는 법왜곡죄를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3. 법왜곡죄의 내재적 모순과 비판


법왜곡죄는 그 자체로 심각한 내재적 모순을 안고 있다. 김상현은 '법'과 '정의'라는 개념의 상대성을 지적한다. 법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특정한 해석을 기준으로 다른 해석을 '왜곡'이라 단정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만약 하급심 판사가 내린 판결이 상급심에서 파기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두고 하급심 판사가 법을 '왜곡'했다고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판사들은 파기 환송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법적 양심에 따른 소신 있는 판결을 하지 못하고, 기존 판례나 다수 여론, 또는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는 판결만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법률 제도의 경직성을 심화시키고, 소수 의견이나 새로운 법리 구성을 통한 사법 발전의 길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정치적 사건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나 기소를 한 판·검사를 법왜곡죄로 고소·고발하는 일이 남발될 것이다. 이는 사법 과정을 정치 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사법 불신을 조장하며, 결국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에 법왜곡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법이 민주주의보다는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쓰일 위험이 높음을 시사한다.




Ⅳ. 입법자의 법적 책임: 검찰청 폐지와 국가적 손해



다수의 지배가 야기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포퓰리즘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입법으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고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검찰청 폐지' 및 '수사·기소 분리' 논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 검찰개혁의 현주소와 문제점


김성룡은 현재 추진 중인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 신설안이 전문가 집단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일방통행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정부와 여당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이유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청을 폐지하려 하지만, 이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가. 사실 관계의 왜곡


입법 발의자들은 "세계 주요 민주국가들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입법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김성룡이 제시한 유럽평의회 자료에 따르면, 46개국 중 38개국(82.6%)이 검사의 직접 수사나 수사 지휘를 인정하고 있다. 즉,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주장은 사실 왜곡에 기반한 것이다.



-.-나. 제도적·구조적 오류


수사와 기소는 본질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형사사법 작용이다. 경찰은 치안과 예방을 담당하는 행정 작용을, 검찰은 범죄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준사법 작용을 수행한다. 수사권을 경찰이나 중대범죄수사청 등에 전속시키고 검사는 기소만 담당하게 할 경우(보완수사조차 제한), 수사 과정에서의 법률적 통제가 약화되어 인권 침해의 위험이 커진다. 또한 공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 확보가 어려워져 범죄 대응 역량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다. 이는 결국 '범죄자의 천국'을 만들고 선량한 국민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2. 캐나다 연방대법원 판결과 입법자 책임론의 시사점


만약 전문가들이 예고한 이러한 '명백한 문제'가 현실화되어 국민에게 현저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러한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입법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입법 행위는 의회 주권과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면책 특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Canada (Attorney General) v. Power (2024 SCC 26) 판결은 이러한 전통적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가. Canada v. Power 판결의 요지


이 사건에서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위헌으로 판명된 경우, 국가(정부)가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법원은 입법 행위에 대해 절대적 면책권을 인정하지 않고, "법률이 명백히 위헌적이거나(clearly unconstitutional), 악의(bad faith) 또는 권한 남용(abuse of power)에 의한 경우"에는 국가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의회 주권이라 할지라도 헌법적 가치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히 잘못된' 입법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는 취지이다.



나. 한국 상황에의 적용


이 판결의 법리는 한국의 검찰청 폐지 입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성룡이 지적한 대로, 검찰청 폐지 법안이 ①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예: 한국 검찰만이 유례없는 권한을 가졌다는 허위 주장), ② 헌법상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여 법치주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③ 이러한 문제가 사전에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히 경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적(악의)이나 다수의 힘(권한 남용)으로 강행되었다면,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입법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캐나다 판례의 '명백한 위헌성' 또는 '악의' 요건을 적용해 본다면, 특정 정치 세력의 방탄이나 보복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적 책무를 방기한 채 형사사법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입법을 강행한 행위는 국가배상 책임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 이는 입법자가 다수의 지배 뒤에 숨어 무책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견제하고,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3. 오충환의 국민주권론과 대표의 책임 강화 방안


오충환은 국민주권론의 관점에서 대표(국회의원)의 책임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그는 국민주권을 단순히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원리로만 보는 견해를 비판하며, 국민을 실재하는 구체적인 주권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 기속 위임의 원칙과 국민소환제


오충환에 따르면, 대표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이익에 기속되어야 한다. 현재의 무기속위임 원칙(자유위임)은 대표가 선거 때만 국민을 위하는 척하고 당선 후에는 당리당략이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조한다. 따라서 국민의 이익(기본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린 대표는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하며, 이를 위해 기속 위임의 원칙을 도입하고 국민소환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입법자가 잘못된 입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


나. 저항권의 행사


또한, 오충환은 다수 국민의 의사라 할지라도(또는 다수를 가장한 대표의 의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궁극적 이익(생명, 자유, 평등 등)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저항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법적 형식만 갖추었다고 해서 모든 권력 행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선언이다.




Ⅴ. 결론: 진정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화



본고는 다수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때 발생하는 법적, 제도적 위기를 사악한 법, 법왜곡죄, 그리고 입법자의 책임이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조망하였다.


첫째, 사악한 법의 효력에 관하여, 우리는 "법률은 법률이다"라는 형식적 법치주의를 넘어 실질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밤베르크 고등법원의 판결이 보여주듯, 다수의 지지로 제정된 법이라도 인간의 존엄과 정의의 본질을 침해한다면 그 효력은 제한되어야 하며, 맹목적인 복종은 거부되어야 한다.


둘째, 법왜곡죄는 그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개념의 모호성과 정치적 악용 가능성으로 인해 사법 독립을 훼손하고 또 다른 형태의 '사법 통제 수단'이 될 위험이 크다. 법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이를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인 법관의 독립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독일의 예외적인 사례를 무리하게 도입하기보다는, 기존의 직권남용죄 등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사법부 내부의 자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검찰 개혁과 입법자의 책임에 관하여, 검찰청 폐지와 같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 전문가의 반대와 명백한 부작용 예견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힘'으로 강행된다면, 이는 입법권의 남용이자 국민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 캐나다 대법원이 설시한 바와 같이 '명백한 위헌'이나 '악의적 입법'에 대해서는 국가와 입법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나아가 오충환이 제안한 바와 같이 국민소환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결국,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헌법적 가치와 소수의 권리, 그리고 전문가적 합리성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법'이 권력자의 정적 제거를 위한 칼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기 위해서는, 입법자를 포함한 모든 권력 기관이 법의 지배 아래 겸허히 서야 하며, 그들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2025. 11. 15.




참고문헌(參考文獻)



최봉철, 《사악한 법의 효력》,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 『성균관법학』 제32권 제4호, 2020. 4. 135-163면


김상현, 《법왜곡죄에 관한 소고》,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17권 제2호, 2025. 6., 3-42면


이진국, 《독일 형법상 법왜곡죄의 구성요건과 적용》,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비교형사법연구』 제21권 제1호, 2019. 4. , 163-1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