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복종의무와 법철학적 재구성

생각의 서고, 24화

by 소는영


​1. 서론: 법치주의의 위기와 명령복종의무의 재조명




​비상계엄 사태(이하 '12·3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헌정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무원과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헌법과 양심에 따라 그 명령을 거부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더 이상 강단에 머무르는 법철학적 난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규명해야 할 시급한 실무적 과제가 되었다.

이는 인사혁신처가 최근 입법예고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바, 바로 1949년 제정 이래 76년간 유지되어 온 '복종의 의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이를 '직무상 지시 준수'로 변경하며 위법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공무원을 단순한 '집행기계'가 아닌,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로 격상시키려는 전환에서, 단순한 자구 수정 그 이상의 목적이 가늠되는 만큼, 거대한 변화의 법적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합법성과 정당성의 층위 이론,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형법적 평가, 군인의 불복종 권리에 대한 헌법적 고찰, 그리고 12·3 사태가 남긴 교훈을 종합하여, 공무원의 복종의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규범적 지평을 간접적이나마 제시하고자 한다.




​2. 입법예고의 심층 분석: '복종'에서 '합리적 이행'으로



-​2.1. 명령복종의무 삭제의 배경과 의도


​인사혁신처의 입법예고안은 수십 년간 공직사회를 지배해 온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질서'를 해체하려는 시도로서, 그 의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맹목적 복종 문화의 청산과 수평적 직무 환경 조성이다. 현행법상 '복종'이라는 용어는 상관과 부하의 관계를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통제 관계로 규정지었다. 이는 민주적 공직사회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창의적이고 소신 있는 직무 수행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개정안은 이를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변경함으로써,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합리적 관계를 지향하고자 목적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둘째, 위법한 명령에 대한 제도적 통제 장치 마련이다. 12·3 사태 당시 많은 공무원과 군인들은 명백히 위헌적인 계엄 선포와 국회 봉쇄 명령 앞에서 갈등했다. 현행법은 복종의무만을 강조할 뿐,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명확한 법적 근거를 제공하지 못했다. 개정안은 상관의 지시가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법률에 명시하여, 제2의 국정농단을 비롯한 일련의 사태를 방지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셋째, 공무원 개인의 법적 보호 강화이다. 위법한 명령을 따랐을 때 발생하는 법적 책임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고, 반대로 위법한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2.2. 현행 법제의 한계와 입법의 흠결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고, 군인의 경우 「군인복무기본법」 제24조에서 상관이 법규에 위반하는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하급자가 이에 불복종할 수 있는 적극적 권리나 요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는 동법 제25조에서 명령 복종의 의무에 의거하여,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조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입법의 흠결'로 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선 다툼의 여지가 많지만, 적어도 실무에서의 하급자에게 치명적인 딜레마를 안겼다. 법질서는 하급자에게 위법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징계나 형사처벌(군형법상 항명죄 등)을 가할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분명 이번 입법예고는 법적 공백을 메우고, 공무원이 '영혼 없는 하수인'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의 수호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게 한다는 점에선 분명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3. 합법성과 정당성의 다수준 해명: 복종의무의 철학적 토대



명령불복종을 가능하게 하는 입법이 실제로 도입되어, 실정법률로서 효력이 발생하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하급자로서 ​공무원이 상관의 명령을 따르거나 거부할 때,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합법성(Legality)'과 '정당성(Legitimacy)'이라는 두 개념을 분석해야 하는바, 이민열의 연구는 이 두 개념이 단일한 층위가 아닌 '다수준(Multi-level)'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3.1. 합법성과 정당성의 개념적 분화


합법성(Legality)이란, 행위나 제도가 현행 실정법에 합치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행위에도 적용되는 만큼, 합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적'이라고 불리는 것을 넘어, 내재적 요건을 갖춘 법체계 내에서 유효한 법에 합치해야 한다.


정당성(Legitimacy)은 그와 달리, 법체계 자체나 그 행위가 구성원을 규율할 '정치도덕적 권위'를 승인받을 수 있는 성질로서, 단순히 실정법 합치 여부를 넘어, 그 법을 만든 체계 자체가 도덕적으로 정당한지를 묻는 상위의 개념이다.



-​3.2. 정당성의 다수준 구조


이민열에 의하면, ​정당성은 국가 전체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수준'과 개별 행위에 적용되는 '최고 수준'으로 나뉜다.

우선, ​최소한의 수준의 정당성은 국가가 법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창설하고 구성원의 행위를 조정할 수 있는 기본적 권위를 의미한다. 이 수준의 정당성을 갖춘 국가는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장 높은 수준의 정당성은 개별적인 행위나 제도가 수범자(국민, 공무원) 모두가 준수해야 할 '정치도덕적 의무'와 일치할 때 성립한다. 즉, 국가가 내린 명령이 단순히 법조문에 적혀 있는 것을 넘어, 도덕적으로도 마땅히 따라야 할 의무일 때 비로소 최고 수준의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보다 엄격한 개념이다.



-​3.3. 합법성과 정당성의 연결 고리: 수행적 모순


​만약 국가가 어떤 행위를 법적 의무로 부과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정치도덕적 의무는 아니라고 말한다면, 규범적 주장으로서 '수행적 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을 범하는 것이다. 즉, 진정한 합법성은 단순히 실정법 절차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달성되지 않으며, '공정한 고지 원칙'과 '제도적 의사소통 원칙'이라는 제약 속에서, 수범자에게 '진지한 수범 의무'를 부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3.4. 위법하고 부당한 명령과 복종의무의 관계


​이 이론적 틀을 공무원의 복종의무에 적용해보자. 어떤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위법한 명령과 부당한 명령을 했다고 상상해보자.


​실정법을 위반한 명령은, 결과적으로 낮은 수준의 합법성조차 결여한 것인만큼 그에 대한 복종의무는 애초부터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인식론적 한계로 인해, 실정법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한 것이, 정작 당장은 위법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절차적으로는 잠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다(행정법에선 이를 공정력, 존속력 등의 표현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그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하다면, 애초에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복종의무도 없다.


​부당한 명령은, 위법하지는 않지만 합목적성이나 정의 관념에 반하는 명령이다. 어떤 사회 내에선 합법적이면 언제나 정당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사고방식으로서의 인식인 단일수준 이해에서는 합법적이면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복종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준 해명에 따르면, 최고 수준의 정당성(정치도덕적 의무)과 괴리된 명령은 '합법성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거나 민주적 의사소통 기제를 훼손하는 부당함은 단순한 부당을 넘어 법적 효력을 상실케 하는 요인이 된다.


​그렇다면, 법규에 적힌 '복종의무'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그 명령이 최고 수준의 정당성(정치도덕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는지를 전제로 성립하는 조건부 의무임을 간접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4.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법적 논거와 구속성이론



​실무적으로 가장 난해한 문제는 명령이 위법함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위계질서상 '구속력'을 가질 때이다. 이진국의 연구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4.1. 명령의 적법성과 구속성의 분리


​상명하복이 이뤄지는 영역에선, 명령의 적법성과 구속성을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적법성은 명령의 내용과 형식이 현행 법질서와 조화되는지를 묻는다. 구 군인복무규율 제22조는 법규에 반하는 명령을 금지하므로, 법을 위반한 명령은 곧바로 위법하다. 구속성은 하급자가 그 명령을 이행해야만 하는지를 묻는바, 군대와 같은 조직에서는 명령의 적법성이나 합목적성과 별개로, 지휘체계 유지를 위한 독자적인 구속성이 강조된다. 상관의 명령은 일단 '옳은 것으로 추정'되며, 직무 관할 내에 있고 형식을 갖추었다면 구속력을 가진다고 본다.



-​4.2. '위법하지만 구속력 있는 명령'의 딜레마


그러나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바로 명령이 위법하지만(경미한 절차 위반부터 시작해, 심각한 내부 규정 위반에 이르기까지), 형식적 요건을 갖추어 하급자에게 구속력을 미치는 경우다. 이때 하급자가 명령을 따라 위법행위를 했다면 처벌해야 하는가?


책임조각설(다수설)은 위법한 명령에 따른 행위는 위법하므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다만, 군대와 같이 절대적 복종이 강요되는 상황에서는 하급자가 적법행위를 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이른바 기대불가능성 논리), 책임을 조각하여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와 달리, ​위법성조각설(저자의 견해)은, 위법하지만 구속력 있는 명령에 따른 행위는 아예 위법성을 조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급자는 불복종할 법적 근거도 없고 사실상의 제재 위협 속에 놓여 있는 만큼, 이러한 상황에서 법질서가 무조건적인 불복종을 강요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요컨대 하급자의 갈등 상황을 객관적으로 해결해주기 위해, 해당 행위를 위법하지 않은 정당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4.3. 위법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법적 논거?


​"위법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면, 그 법적 논거는 무엇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명백히 위법한 명령(범죄 행위 지시 등)'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으며, 복종해서도 안 된다. 대법원 판례도 일관되게 이를 확인한다.


그러나 '경미하게 위법하거나 위법 여부가 불명확하지만 구속력을 갖는 명령'의 경우, 복종의 근거는 '조직의 존립과 질서 유지'에서 찾을 수 있다. 군대나 경찰 조직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상명하복의 체계가 필수적이며, 모든 명령의 적법성을 하급자가 일일이 심사하게 하면 조직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때의 복종은 '법에 대한 복종'이라기보다 '체계에 대한 복종'의 성격을 띤다.



-​4.4. 12·3 사태와 같은 '명백한 위법'의 경우


​하지만 계엄 사태와 같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나 과거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되어진 국가폭력으로서 고문이나, 선거개입과 같이, 중대범죄를 지시하는 명령은 '비구속적'이다. 즉, 이러한 명령은 애초에 직무상 지시로 볼 수 없으므로 따를 의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경우에 '복종'하는 것은 범죄행위의 공범이 될 뿐이며, 어떠한 법적 논거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5. 군대 등 특수집단과 헌법적 불복종 권리



​'상명하복'이 중추인 군대에서 복종의무가 완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소연의 연구와 박병욱의 연구는 이를 헌법적 시각과 12·3 사태의 교훈을 통해 분석하고 있어 시사적이다.



-​5.1. 군인의 특수성과 기본권의 조화


연구에서 저자는 군인을 '제복 입은 민주시민'으로 이해하고 있는바, 이는 군의 특수성(엄격한 규율, 전투 승리 보장) 때문에 다소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지만, 본질적인 인권까지 박탈당하는 것은 아닌 것을 강조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군인의 복종의무는 국가방위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지적은 의미있다.



-​5.2.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불복할 헌법적 권리


나아가 ​김소연은 수명자(명령을 받는 자)가 위법한 명령에 불복할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구성하려는 담대한 시도를 보여준다.


우선 권리의 근거를 헌법 제10조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 및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에서 찾는다.

그리고 권리 행사의 요건은 상관의 명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그 위법성이 일반인이 보기에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여야 한다. 이때 수명자는 명령에 구속되지 않으며 불복종할 헌법적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명령이 명백하게 위법하지 않다면(이른바 애매한 경우), 군 기강 유지를 위해 불복종 권리는 제한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 제한의 비례성 원칙에 따른 것이다.



-​5.3. 12·3 사태에서 현출된 명령복종의 구조적 문제


​박병욱은 계엄 사태를 통해 한국 군대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한다. 우선, 고위 지휘관들은 모의에 가담하여 위법성을 인지할 시간이 있었지만, 현장 군인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판단할 정보가 없었다는 점에서 시공간적 정보의 부재 및 비대칭이 현존했다.


그리고 군대라는 특성상, 명령을 ​거부하기 힘든 환경 역시 재확인되었다. 이른바 '까라면 까' 식의 문화, 광범위한 항명죄 적용, 평시 군사법원 제도 등은 하급자가 위법 명령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족쇄였다.


이에, 연구자는 군인복무기본법 등에 '위법·부당한 명령 거부권'을 명시하고, 상관이 위계를 이용해 부하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해야하며, 나아가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여 군 사법 시스템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6. 불복종의 판단 기준과 착오의 책임: 실무적 가이드라인



​현장의 공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위법하다고 판단해 거부했는데, 나중에 법원에서 적법한 명령이었다고 판결하면 어떡하나?"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6.1. 불복종의 판단 기준: '명백성 이론'


현재 대법원​판례와 다수설은 불복종이 허용되는 기준으로서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성'을 제시한다.


명령의 내용이 범죄행위를 구성하거나, 헌법상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해야 한다. 그러나 위법성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일단 그 명령은 유효한 것으로 추정된다(합법성의 추정). 이때는 즉각적인 불복종보다는 내부적인 이의제기나 사법적 절차를 통해 위법성을 확인받는 것이 원칙이다.



-​6.2. 판단 착오 시의 책임 문제


만약 ​공무원이 스스로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하여 불복종했으나, 사후 재판 결과 그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경우(즉, 명령이 적법했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이는 객관적으로 적법한 직무상 명령을 거부한 것이므로, 공무원법상 내부 징계의 사유나 군형법상 항명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이 자신의 불복종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했고,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책임이 조각되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형법 제16조).


이때의 '​정당한 이유'판단은, 공무원이 자신의 지적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명령의 위법성을 진지하게 심사숙고했고, 조회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오인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이번 입법예고안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공무원이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한 경우에는 비록 나중에 그 판단이 틀렸더라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 면책규정이나 징계 감경 규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실례로 독일의 경우 공무원이 이의제기(Remonstration) 절차를 거치면 자신의 책임이 면제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6.3. 반대의 경우: 위법한 명령을 적법하다고 오인하고 따른 경우


​반대로, 위법한 명령인데 적법한 줄 알고 따랐다면 어떻게 되는지 문제된다.


​단순 가담자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인식할 수도 없었던 경우(예: 현장 말단 군인이 계엄의 절차적 하자를 모른 채 출동함)에는 책임이 조각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사의 고문, 학살, 금번 국회 무력 점거 등 범죄임이 명백한 명령에 대해서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항변은 적절한 오인 사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7. 결론: '영혼 있는 공무원'을 위한 시스템의 재설계



​이번 국가공무원법 개정 입법예고는 단순히 법조문 하나를 고치는 작업이 아닌, '맹목적 복종'에서 '합리적 판단과 헌법적 충성'으로 바꾸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합법성과 정당성의 다수준 해명에 의거, 가장 높은 수준의 합법성은 결국 정당성과 연결된다. 즉, 공무원은 단순히 법전에 적힌 글자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지향하는 헌법적 가치와 국민의 기본권(정당성)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그 법이 지향하는 헌법적 가치와 정당성이라는 표현 역시 추상적인 만큼, ​판단기준의 구체화 작업이 긴요하다. 법에 '거부할 수 있다'고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경우에 거부할 수 있는지, '명백한 위법'의 기준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예를 들면 독일의 이의제기 절차)을 시행령이나 예규로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제도의 현실적 구현이 생활에서의 안착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법이 바뀌어도 문화가 그대로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무원과 군인에게 헌법적 가치와 위법 명령 식별 능력을 교육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충성임을 인식시키는 문화적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무원은 상사의 입만 바라보는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이 헌법을 가슴에 품고, 위법한 명령 앞에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제복 입은 시민'이 되도록, 소신을 위한 안전망이 반드시 갖춰져야 할 것이다.




2025. 11. 22.



참고문헌(參考文獻)



이민열, 《합법성과 정당성의 여러 수준과 그 실천적 함의》,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28권 제2호, 2025. 8., 45-103면


이진국,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른 행위》, 한국형사법학회, 『형사법연구』 제26권 제2호, 2014. 6., 377-404면


김소연,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불복할 수명자의 권리에 대한 헌법적 고찰 》, 한국법학원, 『저스티스』 통권 제208호, 2025. 6., 1-25면


박병욱, 《민주주의와 군대: 위헌ㆍ위법적인 계엄선포와 군인 등의 명령과 복종》,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법학』 제87호, 2025. 2., 187-2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