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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돌책깨기 Jun 17. 2021

죽은 경제학자 불러다 이야기 듣기(13)_마지막

13장 먹구름 그리고 한 줄기 햇살

2021.5.19(수) 오후 1시

참석자: H, Y, K, J, Y2(휴일이라 참석할 수 있었던 반가운 원년멤버)

마지막 장은 여러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정리한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리한다. 


시대별로 요구되는 경제현상에 대한 분석과 현실에 적용한 탁월한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들은 마무리되었다. 경제학은 “정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이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경향 tendencies을 연구하는 학문(p.585)”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위대한 경제학자들 모두 나름대로 한계가 있었고, 모든 분야에 정통한 완벽한 경제학자는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다. 하지만 모든 경제학자가 ‘정부와 경제는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p.587).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더라도 다수에 이득이 되더라도 손해를 보는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경제학자들이 민주적 정부에 조언하고 있다(p.588)

저자는 여론을 구성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경제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 가지 심리적 장벽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들이 간략하고 시선을 끄는 정보를 원하고, 둘째, 즉각적인 결과를 선호하고 인내심이 없으며, 셋째, “단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호시절(good times)을 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이 정말 호시절인지 인식하기 쉽지 않다. (p.589)” 언론은 부정적 정보를 다루고, 경기 침체와 사회문제를 가장 많이 다룬다. 


경제학자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새로운 현상, 새로운 숙제를 풀기 위해 이전에는 없던 불빛(아이디어)을 비췄다. 아이디어들은 당시로서는 최선이지만 언제나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지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외계층에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 무조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균형을 믿고 신뢰하는 것, 어떤 재화나 사회서비스가 부족하다고 해서 무작정 공급을 늘리는 것 등이 특정 상황의 단순한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복잡한 현상을 복잡하게 보는 것은 어렵다. 쉽고 명쾌한 해결책은 없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남은 것은 경제는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이해해야겠다는 마음.


슘페터는 자본주의 발달로 고등교육을 받은 유한계급이 풍부한 여가시간이 생기면, 그들이 자본주의의 도덕적 결함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지지를 약속하는 사회주의를 적극 지지하게 될 수 있고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소 체제 경쟁이 심화된 시기에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초판 1942)>를 집필하였고, 자본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진영과의 경쟁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하게 자본주의가 반성이나 보완 없이 가속페달만을 밟게 될 것을 경계한 것 같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기업가들의 ‘창조적 파괴’가 끊임없는 혁신을 불러오고 기존의 지배기업들도 멈추지 않고 기술개발에 투자하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마지막 장의 정리에서 언급된 슘페터가 궁금해져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다음 벽돌책으로 선정하여 2주간(5월19일, 5월26일) 읽었다. 책 앞부분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슘페터의 반박에 약간은 찜찜한 기분으로, 한편으로는 인정하고 후련하기도 했다. ‘가치’는 오로지 노동자의 노동에서만 창출된다는 기본 전제가 마르크스 이론의 주춧돌이다.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 전체 중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몫(전부)을 주지 않고 축적한 ‘잉여가치’가 ‘착취’와 ‘소외’의 근원이 된다. 슘페터는 자본가의 ‘창조적 파괴’ 등의 행위가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는 점등을 들어서 노동가치론을 반박한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의 메시지가 시대에 강력하게 호소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실패한 다수의 자기 치유적 태도인 좌절의 느낌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느낌을 아주 강력한 힘으로 정식화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그런 질환으로부터 사회적으로 치유되는 방법이 확실하게 있으며, 그것도 합리적 증거로 뒷받침된다고 선언했기 때문(<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23)”이라고 주장한다. 나를 비롯한 벽돌책 멤버들은 모두 임금노동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슘페터가 말한 “좌절의 느낌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느낌”을 정식화했다는 말에 공감하여 무릎을 쳤다. 나는 <자본론 공부> 책에서 내가 왜 이렇게 직장에서 힘들고 화가 나는지에 대한 언어를 발견하고 답답함이 해소되었던 기억이 있다. 노동자인 ‘내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노동자로서 연대하고 권리를 옹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노동자로만 살고 싶지 않고 기업가나 자본가로 살 기회를 만들려고 모색한다. ‘창조적 파괴’가 멋있어 보인다. 이런 나의 실존과 진심을 들여다보더라도 마르크스가 말한대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나 지향점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을 비판하는 슘페터의 글을, <자본론 공부>를 딱 한 번 읽었던 짧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읽으니 숨이 턱턱 막혔다.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제대로 모르는데, 그걸 잘 안다는 전제 하에 비판하는 슘페터의 글을 읽기에 버거웠고, 문체도 딱딱하고 어려운 글이었다. 경제학 해설서가 아닌 경제학자의 저서를 직접 읽고 싶었는데, 아직은 어렵다. 어려운 걸 어렵게, 복잡한 걸 복잡하게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중단하고, 요즘 벽돌책 멤버들의 관심을 한창 끌고 있는 마케팅 책을 읽기로 결정했다. 아, 후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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