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션(1999)>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꿈은 실현시키고 싶은 무언가이고, 머릿속에 이를 표상하는 행위를 꿈을 꾼다고 한다. 의식적으로 상상할 수도 있고 혹은 잠이 든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거나, 자신의 이상형인 현명하고 교양있는 여자를 꿈에서 그린다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것들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꿈꾸던 상황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고 그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내가 신중한 자세로 선택하지 못해서일까? 친구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이것들이 사실 얻을 수 없는 것이라서? 하지만 결과는 반성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대응책을 세우기도 전에 실패에 대한 대가로 고통을 안겨준다.
이 영화는 아내가 죽고 평범하게 살던 아오야마가 현명하고 교양있는, 새로운 아내를 찾다가 파국을 맞는 이야기이다. 그가 생각하기로 이상적인 여자였던 아사미가 알고 보니 남자를 혐오하는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이다. 감독은 아사미의 정체를 반전으로 사용하지 않고 중반부터(어쩌면 첫 장면(아내의 죽음이 음산하게 느껴진다)부터) 암시한다. 그래서 '아사미가 어떤 사람일까?'가 아닌 '아사미가 무슨 짓을 할까?'에 기대감이 쏠린다. 아오야마가 첫번째 의문의 답을 추론하며 진상을 깨닫기도 전에 습격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객은 이미 아사미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반부에 고문하는 장면을 10분 동안 보여주는 것은 타당하다. 관객들이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추측했더라도 이 충격적인 장면을 놓고 진부하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오야마가 악한 인물이었다면 흔한 고어영화 혹은 복수극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영화를 한층 더 매력으로 만드는 점은 영화 내내 드러나는 아오야마의 진정성 있는 성품과 그런 아오야마를 더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한 아사미의 오해가 서로 충돌을 일으켜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에게 닥친 불행의 이유를 그녀의 본성에서 찾지 않고 뒤얽힌 상황을 중심으로 보여줌으로써, 단순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한층 복잡해지고 생각해볼만한 지점을 제공한다.
아내가 죽고 7년 동안 좋은 부모, 정직한 상사로 살아온 아오야마는 재혼하기 위해 영화 제작자로 일하는 친구 요시카와의 도움을 받는다. 그건 바로 오디션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아내 후보를 고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남자들이 지위를 이용해 성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전형적인 방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오야마는 조급함이 밀려오더라도 이를 티 내지 않고, 진실되고 매너있는 태도로 아사미를 대한다. 그녀의 자기소개서의 문구('인생에서 가장 우선시했던 일이 무너지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 이는 고통 전문가인 그녀의 철학의 뿌리처럼 보인다)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모습이나 아사미와 저녁을 먹고 아무런 요구 없이 집에 바래다주는 것, 함께 떠난 여행에서 섹스보다 대화를 원하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아사미는 사이코패스로서 그의 모습을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짓는다. 이것은 후반 고문 장면에서 밝혀지지만 중간중간에 단서들이 나온다. 아오야마와의 첫 만남 이후 전화를 기다리는 아사미의 모습(불룩 솟은 척추, 고개를 숙여 귀신처럼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린 자세, 전화가 오자 올라가는 입꼬리)과 방 안에 놓인 포대(사람이 있을 거라 추정)를 통해 그녀가 아오야마를 연인이 아닌 먹잇감처럼 본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아오야마가 사라진 아사미의 흔적을 쫓다가 만난 휠체어 남과의 대화 장면에선 아사미의 과거(폭력과 성적 대상으로 살았던)가 교차편집을 통해 드러나는데, 감독은 과거 사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비명소리 같은 휠체어소리, 높은 컨트라스트 같은 직설적인 표현들과 함께 조각난 이미지를 제시하여 효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왜 남자를 고문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도 와닿는 표현법을 활용하여, 영화의 시점을 아오야마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돕는다.
이후에 벌어지는 고문은 관객들에게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를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고통은 자기 자신을 알게 해준다"는 아사미의 말은 아오야마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영화)에 대해 진심 어린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고문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없다. 고문은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오야마의 오해 받을 행동(오디션에서 아내를 찾겠다니?)과 아사미의 오해(아오야마가 진짜 변태야?)가 불러일으킨 파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신을 위해 짧은 변호조차 못 하고 온몸에 바늘이 꽂힌 채 발목이 잘려나가는 아오야마에게 감정 이입을 한 채,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일이 불행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아오야마가 고문당하기 '직전', 그리고 아사미가 집에 온 그의 아들을 급습하기 '직전'에 삽입되는 꿈 시퀀스는 인상적이다. 이것은 '꿈'과 아오야마의 관계를 이상적 대상인 '꿈'을 넘어 이상 세계를 그리는 '꿈꾸는 행위'와도 연결 짓는다. 이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본능이 현실에서 꿈으로 탈출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마치 악몽을 꾸면 잠에서 깨어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여기서는 악몽 같은 현실에서 꿈으로 들어간다. 전자는 아오야마가 아사미의 흔적을 쫓으며 알게 된 사실들을 종합한 결과 앞으로 겪게 될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잘 드러난다. 후자는 아오야마가 잠에서 깨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마치 지금까지의 고문이 꿈이었나? 싶은 의문이 들도록 한다. 그곳은 마침 아사미와 함께 머무른 여행 숙소인데 아사미가 사라지기 직전, 가장 행복했던 시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아오야마는 꼼짝없이 누워서 아들과 아사미의 전투를 지켜본다. 아들은 아사미의 스프레이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계단으로 올라가고 따라온 그녀를 계단 아래로 밀친다. 높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아사미는 그대로 죽는다. 아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동안 아오야마는 죽은 그녀를 쳐다보는데 아사미는 목이 꺾인 채 말을 하기 시작한다. "전화를 기다렸어요. 아오야마씨처럼 따뜻하게 저를 감싸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오야마를 들뜨게 했던, 그래서 신중함을 잃게 했던 말들이다. 그녀의 말이 끝날 즈음 탄식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원망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녀가 그런 인간임을 믿기 힘들어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