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日1文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우리 어머니는 믿음이 흔들리는 자식들을 향해 항상 이런 말을 하시곤 했다.
"기독교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면, 어떻게 그 오랜 세월동안 그 많은 사람이 믿을 수 있었겠니.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런것 아니겠니? 그리고 부활이 없고 천국도 없다면 얼마나 인생이 허무하겠니?"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순한 양처럼 내 믿음 없음을 탓하며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항상 다시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으며 기도하는 생활로 잠깐씩 돌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교회 밖의 사상과 지식을 배워가면서,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은 그 세계를 깨고 나오려 했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TV세트 속의 안정적인 (하지만 거짓인) 삶을 버리고 결국 탈출을 시도하는 것처럼. 나의 이 시도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종교를 믿지않는 사람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무신론적인 소신을 아래처럼 밝혔다.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명확히 표현해왔다. 내 안에 종교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과학이 밝혀낼 수 있는 세계의 구조에 관한 무한한 찬탄이다.
아인슈타인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은 종교인들에게는 안됐지만 그는 명확히 무신론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리고 흔히들 미국 대통령이라면 기독교 정신에 투철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정말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전혀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붙들고 씨름하거나 고심하지 않으며, 실재하는 것들에 만족하며 충분히 몰입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까지 얘기한다.
가장 명석한 사람들, 지혜와 덕을 겸비한 사람들 중에 종교적 회의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된다면 세상은 경악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 국립 아카데미 회원중에 인격신을 믿는 사람은 7퍼센트에 불과하고, 영국 왕립학회 회원들중 3.3퍼센트 만이 인격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종교는 진실한가
혹자는 개인적인 종교적 신비체험을 이야기하며 종교의 진실성을 주장한다. 도킨스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뇌는 본인도 모르게 현실적인 힘을 지닌 환시와 강림을 구성할 능력을 갖고 있다.
뇌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속임수에 매우 취약하다. 개인적 신앙경험은 종교의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기독교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진화론/창조론 관련 문제에도 도킨스는 구체적인 예를 들며 창조론을 압박한다.
자연선택은 경제적이고 설득력있고, 우아한 해답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제시된 것들 중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
진화한 기관들은 뛰어나고 효율적이지만 종종 결함도 보인다. 그것은 그 기관들이 진화된 경우 예상되는 일이며, 설계된 것일 경우에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요통, 탈장, 자궁탈출증 등) 인간의 질병중 많은 것들은 수억년에 걸쳐 네발로 걷도록 다듬어진 몸을 그대로 지닌채 두발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종교가 살아남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수만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멀쩡히 존속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집단선택론에 대한 설명을 먼저 꺼낸다.
호전적인 전쟁의 신을 섬기는 부족은 평화와 조화를 역설하는 신을 섬기는 경쟁부족이나 신을 섬기지 않는 다른 부족과 전쟁하면 승리한다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는 부족보다 호전적인 부족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더 커진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설명은 진화의 부산물로서의 종교이다. 어른 혹은 권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선택이었고, 이런 성향이 신앙의 행위로 발현된 것이 바로 종교라고 보는 것이다. 마치 달빛이나 별빛에 이끌리는 나방의 진화적 성향이 불꽃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언뜻 말도안되는 이런 행동을 인간 스스로 버젓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을 봐도 이런 성향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듯 하다.
역사적으로도 종교는 원시부족의 애니미즘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로마 다신교를 거쳐, 유대교와 그 파생 종교인 카톨릭, 기독교, 이슬람 등의 일신교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본다. 기독교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약의 중요한 소재인 동방의 별, 동정녀 출산, 부활, 승천 등은 그 시대 지중해, 근동 지방의 신화에서 차용하며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다. 참고로 그 지방의 신화에 나오는 미스라 신의 탄생일이 크리스마스와 동일하다고 한다.
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종교 없이 찾는 삶의 의미
역사와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열정과 열망은 진실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 에드워드 윌슨, 통섭(1998)
믿음은 선의의 거짓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믿음은 저주받아 마땅한 헛된 희망이다.
- 토마스 A. 에디슨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역사와 과학을 통해 인류는 이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 중의 하나는 사람에게 종교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종교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며, 도덕심을 고양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줬지만, 이제 그 효용가치가 다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과 역사를 통해 그 진실성이 심각하게 의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종교인들보다 더 영적이라고 자부하는 무신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인생의 의미를 이야기 할 것이다.
“종교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어떤 신적인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우주의 규모에 놀라워하고, 진화를 통해 스스로의 기원을 모색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인간의 지성이 경이롭다.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진보(때로는 퇴보)와 문명의 유산을 만끽하며, 생명의 숭고함에 경의를 표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찬탄한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의 기쁨을 누리며, 그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현재 하는 일에 몰입하며 충만감을 느끼고,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고 만날 사람들이 궁금하다. 죽음이 있기에 더 소중한 삶의 가치를 극대화 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더욱 밀도있고 충실하게 음미하며 살면 충분하지 않은가. 종교가 없더라도 말이다.”
신자가 회의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과 별 다를 바 없다.
- 조지 버나드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