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치료, 이제 끝!
방사-선(放射線)「명사」 『물리』 방사성 원소의 붕괴에 따라 물체에서 방출되는 입자나 전자기파. 프랑스의 물리학자 베크렐이 우라늄 화합물에서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파선ㆍ베타선ㆍ감마선이 있다.≒방사능선, 복사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방사선사 두 명이 척척 호흡을 맞추며 알 듯 모를 듯 한 신호를 서로 주고받는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높낮이를 조정해 가며, 반라의 내 몸뚱어리를 들었다 놨다 하며 제로를 맞추고 뎁스를 맞춘다.
*들리는 대로 옮겨 적어 맞는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로(zero)와 뎁스(depth)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환상의 콤비가 퇴장하고 난 후에는 숨 쉬는 것도 조심한 채 꼼짝 마 자세로 몇 분을 버틴다. 방사선 기계가 침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기괴한 소음을 만든다. 지이잉 소리가 약간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게, 흡사 화면 조정시간에 나오는 TV 소리 또는 PC통신 연결 소리와 같다.
침대에 닿는 엉치 부분이 너무 배긴다. 얇은 시트지까지 하나 깔아주셨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잔뜩 튀어나온 꼬리뼈의 존재감을 느끼며, 나는 진화가 덜 된 걸까, 원래 이 모양으로 태어난 걸까, 아니면 살이 조금 빠져서 그런 걸까… 별의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치료 끝. 약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렸으려나?
수술한 지 한 달 반 만에 드디어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표준치료의 마지막 단계다.
암덩어리를 잡초로 본다면, 잡초를 뽑는 수술, 제초제를 뿌리는 항암에 이어 방사선 치료는 아예 땅에 불을 질러 잡초 따위가 뿌리를 내릴 수 없도록 하는 마무리 과정이다.
방사선(radiation)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으며 몸에 와닿는 느낌도 전혀 없으나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물질이다. 방사선은 신체에 투과되며 세포 내에서 전리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는 세포의 DNA 또는 화학적인 변성을 초래해 세포를 죽게 한다. 이때 정상조직과 종양조직 모두 손상을 입지만, 정상조직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는 반면 종양조직은 회복이 되지 않는데, 이러한 회복 속도의 차이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것이다.(국립암센터)
*전리 현상(電離, ionization) :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의 원소에서 외곽 전자를 분리시켜 이온을 만드는 현상. 아 되게 어렵네
하지만 방사선은 정확성·안정성·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심각한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과도한 방사선은 병을 치료하긴커녕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방사능 물질 피폭에 의한 질병 및 각종 후유증은 SF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방사선 치료의 핵심은 얼마나 정확하고 정밀하게 방사선을 조사(照射)하느냐에 달려있는데, 이를 위해서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뿐만 아니라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물리학자(!)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환자들은 본격적인 방사선 치료에 앞서 면밀한 모의치료와 설계과정을 지나야 한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신체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방사선 조사량, 치료기간, 치료범위도 환자별로 모두 달리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CT(컴퓨터단층검사) 촬영을 통해 치료할 종양부위와 주변 정상조직을 3차원적으로 파악하는데, 이때 특수한 잉크로 가슴을 포함해 명치, 옆구리, 겨드랑이 등에 그림을 그린다. 방사선이 조사될 위치 표시를 위한 기준선들이다. 관건은 방사선 치료가 시작될 때까지(모의 치료 후 약 2~3주 소요) 이 선들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비누칠은 금물이고 최대한 짧은 시간에 샤워를 마쳐야 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도 자제하는 게 좋다. 몸무게가 지나치게 빠지거나 찌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기준선이 지워지거나 신체가 변형(?)된 경우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진행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가 비용과 시간이 그만큼 더 소요된다.)
내가 받아야 할 방사 횟수는 총 10회. 주말과 빨간 날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병원에 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제외하고는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도착 접수를 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순서가 되면 치료실로 들어간다. 그 이후 과정은 글 첫머리에 설명한 바와 같다. 환상의 콤비, 방사선사님들만 믿고 침대에 잘 누워있기만 하면 된다.
이렇듯 방사선 치료는 항암이나 수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환자가 수월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느 치료가 그렇듯 부작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약간의 피로감과 함께 조사 부위에 열감과 쓰라림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부분 경미한 정도지만, 심한 경우에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벗겨지고 물집이 잡힐 수도 있다. 드물게 폐렴이나 심장독성 등의 후유증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치료 직후 보습에 좋다는 알로에겔을 꾸준히 발라준 덕분인지, 나의 경우 병변에 다소 열감이 느껴진 것 말고는 큰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월화수목금퇼. 방사선 치료는 마치 눈 깜짝할 새 없어지는 주말과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물론 하나도 아쉽진 않다.) 항암이나 수술에 비하면 정말 식은 죽 먹기였다. (물론 또 하고 싶진 않다.) 방사선종양학과 선생님과는 1년 반 후에나 다시 뵙기로 했다. (아무래도 의사는 자주 보지 않는 게 좋다.)
이로써 드디어 표준 치료가 끝났다. 1차 항암을 전년도 10월에 시작했고, 마지막 방사를 5월에 끝냈으니, 꼬박 7개월이 걸렸다. 표적 치료는 연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나, 큰 과정은 모두 끝났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아직도 몸 여기저기가 삐그덕 거리지만, 마음 만은 슈퍼 히어로처럼 벅차다. 크고 작은 항암 부작용은 아직 남아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질 것이고, 가발 없이 외출하기에는 조금 용기가 필요하지만, 머리카락도 시나브로 자라고 있다.
마지막 방사를 마치고 집에 온 날, 두 아이의 (나름) 서프라이즈 축하가 있었다. 저녁을 먹다 말고 둘이서 (너무 티 나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더니 첫째는 갑자기 준비물 살 게 생각났다며 나가버리고, 둘째는 주방 서랍을 뒤져 라이터를 찾아들더니 언니를 쫓아나갔다. 나 보고는 꼭 눈을 감고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면서 말이다.
“치료 마침 축하합니다~ 치료 축하 합니다~”
치료를 축하한다는 건지, 치료를 끝마친 걸 축하한다는 건지… 편의점 빵에 초를 하나 꽂고 정리가 덜 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부르며 나타난 아이들. 발 연기도 감동을 막을 순 없다. 다 알면서도 놀란 척, 서로를 꼭 끌어안고 고맙다고 토닥토닥,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다시는 아프지 말자고 토닥토닥.
*참고 글
방사선 치료에 관한 50가지 상식(삼성서울병원)
[건강 에세이] '방사선 의학물리학자' 자격증 도입해야 (서울경제, 2018-08-26)
암치료 좌지우지 하는 정확한 방사선량 계산 의학물리학자 주된 역할 (울산제일일보, 201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