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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Oct 04. 2023

환자란 무엇인가, 환자다움이란 무엇인가.

특별함과 일상 사이에서. Life Goes On..


환자 vs 환자다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환자는 ‘병들거나 다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환자'와 '환자다움'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환자다움'은 병들거나 다친 그 상태가 아닌, 환자로서 스스로 느끼는 본인의 모습이자, 타인으로부터 기대받는 모습을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환자다움은 종종 연약하고, 유약하고, 나약한 ‘을’의 모습을 띤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는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2018)

철학자 김진영 선생은 암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메모를 남겼다. 그가 느낀 환자다운 모습은 죄인이고 을이다.


죄인인 것이다. 환자는 무언가 잘못한 죄인이다. 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래서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그렇게 오늘도 을이어야 한다. 아무도 뭐라 한 적도, 눈치를 준 일도 없건만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말하지 못한다.(양은주, <갑들에게 을이> 의협신문, 2018)


암 환자들을 여럿 돌보았던 재활의학전문의 양은주 교수도 김진영 선생과 생각을 같이 한다. 환자가 느끼는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다. 아마 암 환자들이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이 이 표현들과 별반 다를 리 없으리라.


고통이 엄습해 오면 몸은 자연스럽게 움츠러들고, 마음은 흙빛으로 가득 찬다. 가족들에게는 마음의 빚이 켜켜이 쌓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나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숨고 싶어 진다.


하지만 환자다움은 어느 한 가지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유약하다고 불쌍한 것도, 연약하다고 불행한 것도, 나약하다고 무능한 것은 아니다. 죄인의 마음이라고 진짜로 죄인은 아니고, 을의 자세를 취한다고 정말 을이 아니지 않은가.





환자다움 vs 암적이득



환자다움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환자들, 일상을 누리는 환자들을 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목도한 환자의 모습이 자신이 기대한 환자다운 모습에 충족되지 않으면 걱정을 넘어서 의심하고 비난한다.




지난 2011년 <슈퍼스타K> 시즌3의 우승을 차지한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은 프로그램 출연 당시 암 말기 환자였다. 그러나 활기 넘치는 그의 모습에 일부 네티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역경을 이겨내고 우승까지 차지 한 인간승리 스토리를 그들은 ‘구라’라고 생각했다.


"암 말기 환자들은 병동에서 골골대고 누워있으면서 얌전히 눈감을 때를 기다리는 게 보통”인데 “무대 위에서 멀쩡하게, 심지어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저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의 결혼과 출산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암 말기라면서 결혼과 출산이라니 암 환자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그를 매도했다. 그의 부고가 떴을 때 그들은 마침내 만족했을까?'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도 있었다. 질병으로 인해 휴직을 하게 되었다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나에게, “안 아파 보이는데? 나도 (일하느라 힘든데) 병가나 낼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의 소소한(?) 활동을 알리는 SNS 포스팅을 보고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그런 포스팅은 올리지 말고) 최대한 아픈 척하고 있어야 한다”며 조언한 사람도 있었다.


기초수급대상자는 감히 돈가스를 시켜 먹으면 안 되고, 아파트 경비원은 감히 해외여행을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왜 환자는 일상을 누릴 권리가 없다고, 적어도 일상을 누리는 걸 들켜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환자다움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환자는 ‘암적이득’을 바라는 존재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암적이득(Cancer Perk)’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2012)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용어다. 암적이득은 평범한 아이(사람)들은 얻지 못하지만 암환자는 얻을 수 있는 사소한 것들, 예컨대 스포츠 스타가 사인한 야구공, 숙제를 늦게 내도 그냥 넘어가는 것, 실력이 부족한데도 운전면허를 얻는 것 등을 말한다. 동정과 시혜를 그냥 그렇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슈퍼스타K의 우승과 1년 간의 질병휴직이 암적이득이라고 생각하는가? 부러운가?

그러면 당신들도 한번 아파보던지, 암에 걸려보던지.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지만, 이런 못난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다. 암 환자가 되고 나서 정말 다양한 경험과 호의와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묻고 더블로 준대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과정임을 당신들은 왜 모를까.



내가 환자답지 못한 이유?


나는 암에 걸렸으므로 환자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국가공인’ 환자다. (암 진단을 받으면 향후 5년 간 건강보험공단에 ‘중증질환 산정특례’ 대상자로 등록된다.) 나는 암을 이유로 휴직을 했고, 그 기간 동안 건강을 회복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일 년 동안 항암-수술-방사선으로 이어지는 표준치료와 열두 번의 표적치료 과정에 충실히 임했다. 나는 또 그 일 년 동안 배달을 했고, 춤을 추었으며,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로또를 사 모았고, 봉사활동을 했으며, 글을 썼다. 그렇다면 나는 환자다웠나?



투병의 시간, 휴직 기간 안에서의 이러한 경험들은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골골 누워’ 있어야 할 전형적인 '환자다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료과정이 살 만했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나? 씩씩해 보이고 싶었나? 아니다. 난 그저 “지루함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있었고, “이 예외 없는 시간을 불행으로만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뿐이다.


* "I have an irrational fear of boredom." - 주디 덴치, <The Talks> 인터뷰 중

**장일호, <슬픔의 방문>, 2022


억측과 오해가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험들을 부러 펼쳐 놓고 싶은 이유가 있다. 울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존에 나와있는 수많은 암 투병기들은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을 맺는 경향이 있다.) 나는 환자 당사자에게, 그 가족에게, 그 주변인들에게, 그리고 아플 수 있는 누구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암에 걸렸다고 만날 울면서 지내진 않는다고. 환자의 모습은 다양하다고.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말고 그냥 일상을 살라고.


지난 일 년 간의 나의 특별한 경험들은, 사실은 또 다른 일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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