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의 꽃

25-04-01

by 메밀

2025년의 끝자락에서, 한동안 묵혀두었던 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올려본다.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 올해를 조용히 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이랄까...

(…라는 말로 게으름을 살짝 포장해본다.)

12월까지 밀린 포스팅을 모두 마무리하는 게 작은 목표



아파트 단지 안에 꽃이 가득 피었다. 보통은 목련이 먼저 피고 지면 벚꽃이 피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날씨가 오락가락해서인지 나란히 피어있다. 매년 꽃이 피는 이맘때 즈음이면 내 마음에도 살랑살랑 봄바람이 이는데 올봄의 꽃에는 어쩐지 약간의 우울감이 드리운다.


세상 일에 크게 관심없이 지내는 편인데, 지난 달 산불 소식을 접하는 내내 유난히 마음이 아팠다. 그런 와중에 피어난 꽃을 보며 아무일도 없는 듯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듯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무거운 감정을 소화하는게 쉽지가 않다. 요즘 열에 아홉은 본다는 <폭삭 속았수다>를 시작할 생각도 안하는 이유다.


점점 더 간결하고 깔끔한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봤던 <퍼펙트 데이즈>는 정말 최고로 괜찮았던 영화. ‘정말 재밌어요!’라고 말하며 누구에게나 쉽게 추천할 수는 없는 영화지만, 메시지, 연기, 연출, 미감 등 모든 부분이 잔잔하게 와닿았다. 게다가 나에겐 꽤나 흥미진진하기까지해 내내 몰입해 볼 수 있었다. (절대 흥미진진한 스토리 아님 주의)


요즘 나의 일상에 있는 일, 요가, 독서 그리고 사람 관계까지. 너무 딥(deep)해지지 않으려 한다. 너무 깊이 생각하거나 애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측면도 있고, 부족해진 신체적, 정신적 체력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힘이 빠져 일상이 다소 심심해졌기도 한데, 확실히 사람을 대할 땐 이런 잔잔한 태도가 도움이 되는 듯하다. 물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나 감정은 여전히 힘들다.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마다 휘감기는 모순적 감정들이 나를 좀먹는다. 이런 감정이 한편으로는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당장의 나에게는 무력감으로 더 강하게 와닿는다.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힘들면 외면하기도, 기운이 남으면 살피기도 하며 그렇게 지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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