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5회에 걸쳐서 영어회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매거진이 ‘회화책’이 아닌지라, 영어회화 표현을 알려주는 글들은 아니다. 다만, 영어회화를 공부할 때 염두에 두면 좋을 점들을 알려주고자 한다. 우선 영어 한 마디도 내뱉기 힘들어하는 왕초보들을 위한 조언부터 시작하자.
평생 영어랑 담쌓고 살아온 이들이라면 영어 울렁증이 있을 확률이 높다. 외국인과 말할 일이 생기면 주눅이 들고, 학원에서는 행여나 선생님이 자기를 시킬까 봐 온 몸이 움츠러들고, 우리말을 할 때는 김제동 뺨치는 달변가인데 영어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그런 울렁증 말이다.
이런 분들은 당장 영어 표현 몇 개 외우는 것보다 이미 아는 단어를 활용해서 (때로는 손짓, 몸짓, 콩글리쉬까지 동원해서)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해보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경험을 한 번 두 번 하게 되면 “영어가 어려운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이렇게 말했더니 통하네, 외국 사람도 다 똑같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일단 영어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 이건 왕초보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영어를 많이 아는 사람도 자신감이 부족하면 외국인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맞는 표현을 쓰고 있는 건가? 문법이 틀리진 않았나? 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아는 게 많아도 말은 못 하게 된다.
또한 “내가 해냈다, 나도 하니까 된다”는 성취감도 중요하다. 모든 분야가 대개 그렇듯이, 중급에서 고급으로 실력을 올리긴 어려워도 왕초보가 초급자가 되고 중급자가 되는 건 상대적으로 더 쉽다. 영어 초보자일수록 조금만 투자해도 실력이 확 늘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영어로 얘기하려면 두꺼운 책으로 공부하고, 몇 년은 매달려야 할 거라고 겁을 먹고 있다가 자신이 공부한 몇 개의 문장으로 외국인과 얘기를 하게 되면 그 성취감은 하늘을 찌른다. 이런 자신감과 성취감은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왕초보가 초급자로, 초급자가 중급자로 올라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런데, 외국에 나갈 일도 없는데 어떻게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경험해보냐고? 걱정 마시라. 영어 학원의 회화 선생님과 영어로 얘기하는 데 성공해도 자신감은 상승할 테니까. 또한 영어 스터디도 좋은 방법이다. 영어 스터디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을 꼽으라면 바로 신나는 동기부여다. 당장 입시를 앞두고 있거나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어 공부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영어 잘하면 좋지, 그렇지만 힘들고 피곤한데 굳이 공부해야 해?
만일 당신이 영어를 꼭 공부해야만 하는 절박한 (하지만 행복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면, 그리고 그 필요성이 앞에서 언급한 자신감, 성취감과 한데 어우러진다면 왕초보를 벗어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놈의 자신감과 성취감, 신나는 동기부여를 갖게 되느냐고? 바로 다음을 이어서 계속 읽어보자.
지난 시간에도 간단히 얘기했지만, 영어회화 초보들은 많은 표현을 외우는 것보다 한 가지 표현만을 달달 외우는 게 더 좋다. 영어회화 왕초보들은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극도로 긴장을 해서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얘지고, 그동안 알고 있던 것도 다 잊어버린다.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을 외워봤자 소용없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표현들 중에 어떤 걸 써야 할지 몰라 망설이게 될 수도 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많다’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건 many일 것이다. 셀 수 없는 것이나 양을 나타낼 때는 much를 쓴다. 셀 수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하고 싶다면 a lot of나 lots of를 쓰고, 너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면 too many, so much를 써도 된다. 그 외에도 plenty of, excessive, numerous, myriad, abundant, gazillion 등의 단어를 쓸 수도 있다. 이 단어들을 다 알고 있다면 분명 필기시험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회화 왕초보들은 이 단어들을 다 알고 있어도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릴 수가 있다.
Many를 쓸까?
가만, 돈은 셀 수 없는 거잖아. 그럼 many가 아니라 much를 써야지.
돈이 가산 명사던가, 불가산 명사던가?
아, 헷갈리는데 그냥 a lot of를 쓰자.
그런데 부정문에 이 표현을 써도 되나? 긍정문에 쓴다고 문법책에서 본 거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excessive라고 하자. 아니야, 그건 너무 문어체잖아.
믿기진 않겠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말할 때도 0.01초 사이에 머리 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간다. 이 표현이 맞는지, 문법은 틀리지 않았는지, 발음이 너무 이상하지는 않은지. 그러다 보면 아예 말을 못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초보자들의 경우는 일단 말을 입 밖에 내뱉는 연습이 더 중요하다. 일단은 양과 수에 상관없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는 lots of나 alot of 같은 표현을 달달 외워서 말하는 연습을 하자. 한 가지 표현을 영어로 하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그다음엔 다른 표현에 도전을 해도 좋다. 한꺼번에 여러 표현을 다 외우려고 하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보자. 영어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영어 회화에서 성취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급자는 조금만 노력해도 실력이 금방 는다는데 정말일까?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보려면 패턴화 되어 있는 문장을 외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패턴화 되어 있는 문장’이라고 하니 어려운 것 같지만, 이 말은 “활용도가 높은 쉬운 문장”을 뜻한다. 그런 문장들은 한번 외워 놓으면 여러 상황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고, 나중에 영어 실력이 높아지면서 아는 단어 수가 많아지게 되면 활용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 마시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려면 I want to drink water 나 I’d like to drink water라고 하면 된다. 이 문장을 확실히 외워 둔다면 I want to~나 I’d like to~ 뒤에 다른 문구를 넣어서 다양하게 말을 할 수 있다.
I want to go shopping. (쇼핑하고 싶어요)
I want to make a phone call. (전화 걸고 싶어요)
I’d like to change rooms. (방을 바꾸고 싶어요)
I’d like to buy this. (이걸 사고 싶어요)
I’d like to make a reservation. (예약을 하고 싶어요)
물론 왕초보라면 이런 문구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활용도가 높은 문장을 하나라도 확실히 외워 놓으면 추후에 단어를 많이 알게 됐을 때 회화 실력이 확 늘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그럼 도대체 활용도가 높은 문장은 무엇인가? 사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초보자용 회화책은 활용도가 높은, 패턴화가 가능한 문장들 위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초보자용 회화 책 한 권이면 충분히 실력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회화책으로 공부하다가 실패하는 초보자들이 많다. 그건 책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회화책에서 제목으로 제시되는 대표 문장만이라도 달달 외우자.
영어회화 초보자들이 영어회화 책을 사서 공부하다가 실패하는 이유는 한 번에 모든 걸 다 외워서 내 것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표현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더 많은 내용을 알차게 채워서 보여주고 싶다. 책을 설렁설렁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초보자용 책이라 하더라도 초보를 마스터하고 중급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을 위해 심화된 내용까지 다루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책을 사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그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외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책을 산 값을 하는 것 같고,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1장 첫 페이지부터, 예문이나 부록으로 나와 있는 문장까지 꼼꼼히 다 단어 찾아보고, 공부하고 외우다가 지쳐서 챕터 1이나 2를 미처 못 끝내고 책을 덮어두기 일쑤다.
앞서 2번에서 말했듯이 영어 왕초보들은 여러 표현을 외워봤자 머리만 아프고, 헷갈리고, 그러다가 흥미를 잃게 되고 만다. 일단은 한 가지 표현이라도 완벽하게 외우는 게 중요하다. 만일 어떤 교재가 됐건 초보자용 회화책을 샀다면, 우선 제목으로 제시되는 대표 문장들만이라도 달달 외우자. 즉, 한 챕터에 나와 있는 모든 예문과 심화학습과 보너스 문장까지 다 외우려고 애쓰지 말고, 차라리 설명을 확실히 이해한 후 제목으로 나와 있는 대표 문장들만이라도 다 외우는 게 더 낫다는 거다.
물론 능력과 시간이 된다면 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외우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한 챕터만 공부하는 것보다 책 전체에 걸쳐서 ‘기본 문장’을 많이 외우는 게 초반 실력 향상에 더 큰 도움이 된다.
즉, 왕초보 시절에는 I’d like to change rooms(방을 바꾸고 싶어요), I’d like to buy this(이걸 사고 싶어요), I’d like to make a reservation(예약을 하고 싶어요)처럼 하나의 문장 유형을 가진 세 문장을 외우는 것보다 I’d like to change rooms (방을 바꾸고 싶어요) Could you give me a wake-up call, please? (아침에 전화로 깨워주실 수 있나요?), It took an hour to get here (여기 오는 데 한 시간 걸렸어요)처럼 활용도가 높은 문장 유형을 세 개 외우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나중에 영어 실력이 더 늘게 돼서 아는 단어와 구문들이 늘어나게 되면 이미 알고 있던 기본 문장들을 더욱 살찌워서 다채로운 회화 구사가 가능하게 된다.
I’d like to get a refund. (환불하고 싶어요.)
I’d like to take a taxi. (택시 타고 싶어요.)
Could you give me your e-mail address, please? (이메일 주소를 주실 수 있나요?)
Could you give me a glass of water, please? (물 한 잔 주실 수 있나요?)
It took longer than I expected.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어요.)
It took half an hour. (30분 걸렸어요.)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왕초보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신나는 동기부여이다. 공부를 안 하면 큰일 나니까 하기 싫어도 죽기 살기로 하는 것 말고, 정말로 하고 싶어서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동기 말이다.
학생이 아닌 어른의 경우, 영어회화 실력이 왕초보라고 하면 대개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다. 영어를 아예 시작조차 안 했거나 어느 정도 공부하다가 포기했거나. 이런 분들은 영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영어는 억지로 공부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혹여 취직이나 이직을 위해 공부하더라도 ‘시험공부’만 하지 회화 공부는 잘 하지 않고, 그 마저도 자신이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면 고3 졸업생들이 교복 벗어던지듯 후련하게 영어 공부에서 손을 떼곤 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웬만해서는 영어회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내가 이 나이에 영어 배워서 뭐하겠어?
내가 외국에 나갈 일이 있냐, 외국 사람이랑 결혼을 하겠냐?
어차피 요즘은 번역기 돌리면 다 통하게 돼있어.
우리나라에 왔으면 자기들이 우리말을 배워야지, 왜 내가 영어로 해야 돼?
영어 못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
어차피 시험은 잘 보잖아. 굳이 회화까지 할 필요는 없지.
이런 왕초보 분들이 맨 처음 영어회화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그 불씨를 죽 이어가게 만들려면 그들이 “나도 영어 회화를 공부해야겠구나.”라는 절박한 (하지만 싫지는 않은) 필요성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즉, 아주 적절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영어회화 왕초보들은 "영어회화를 공부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굉장히 많다. 그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본인이 완전히 설득되어 있기 때문에 취직이나 자기계발과 같은 웬만한 이유로는 본격적으로 영어회화 공부에 나서지 않는다.
그건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 좋다. 남들이 볼 때는 이상한 이유여도 상관없다. 미드를 좋아해서 그 촬영 장소를 꼭 가보고 싶다거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감상하고 싶다거나, 센트럴 파크에서 여유롭게 산책하고 싶다는 것도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NBA 농구나 MLB 야구를 현지로 여행 가서 보고 싶을 수도 있다. <영국 남자>를 패러디해서 한국에 대한 동영상을 올리거나, 전 세계 한류 팬들을 위해 한국 드라마와 K-pop 스타에 대한 소식을 올리고 싶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 영어 회화 공부를 하자는 재미있는 선전문구가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때 만인의 연인이었던 브래드 피트가 이혼한다는 기사 때문에 나온 농담이다. 물론 애 딸린 늙은 돌싱 배우(?)를 꼬시기(?) 위해 영어를 배울 리는 없겠지만, 그게 포인트가 아니다. 영어회화 왕초보들은 이미 “영어회화를 공부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굉장히 많다. 그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본인이 완전히 설득되어 있기 때문에 취직, 자기계발과 같은 웬만한 이유로는 본격적으로 영어회화 공부에 나서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하려면 자기 눈이 번쩍 뜨일만한 재미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만일 여러분이 “난 영어회화 공부 안 해도 돼.”라고 생각해온 분이라면, “오호라~. 이건 재미있는데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이 드는 동기를 찾아 나서는 게 중요하다.
영어회화 왕초보들을 위한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글에서는 영어회화 중급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 글은 철저히 내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쓴 글임을 밝힌다. 내가 왕초보 시절에 느꼈던 것, 겪었던 것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그래서 개인 차가 있을 수 있고, 내 조언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 감안해서 읽어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