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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Aug 27. 2021

일과 가족은 한마리 토끼가 될수 없나요?

워킹맘의 비애

오늘은 유난히 업무가 몰리는 날이었다.

사실 매일 그러하지만, 오늘따라 더 쫒기는 느낌이었다. 원래 일이란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중간에 자꾸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계획한 시간 내에 업무종료가 안되고 자꾸 밀린다.


오전엔 업무연락 및 강의 준비.

(코로나로 인한 실직으로, 24시간 집에 있는 남편과 아직 개학전이라 역시 집에 있는 아이를 위한)점심 준비도 내 몫.

오후 2시반부터 4시20분까지 기업가정신 창업 강의. 컴퓨터가 갑자기 랙 걸려서 강사인 내가 튕겨나가는 등 말도 아니었다.

4시30분에 옷매무새 매만지고 나가서 바람정원코칭하고 8시30분에 귀가.


한 20여분 잠깐 소파에 앉아 쉬는둥 마는둥 하다가 9시부턴 애들 씻기고 재울 준비도 내 몫. (아~ 나가있는동안 챙겨먹을 저녁도 해놓고 나갔지....하...)


애들 잠자리 책 읽어주는 것도 내가...

10시에 줌 회의가 예정돼 있기에 부랴부랴 읽어주고. 나가려는데 큰애가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내 억장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겉으론 속상해 티 안내려고 애쓰며 목소리 가다듬고 물어봤다.

"우리딸 왜 울어요?"

"엄마가 밤에 일하는게 싫어요."

"엄마가 밤에 일하는게 왜 싫어요?"

"......"


훌쩍이느라 대답이 없는 딸 대신 아들이 툭 내뱉은 말도 가슴을 후벼팠다.

"자려고 누운 다음에, 또 필요한게 있어서 아빠한테 가면, 아빠는 안 들어주니까 그렇죠"


딸이 울먹이며 말을 잇는다.

"제가 이상한거 같아요."

"아니야, 이상할거 없어. 엄마가 다 들어줄테니까 얘기해봐요"

"엄마가 자꾸 안 돌아올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일하러 가면 안 들어올 것 같고... 그냥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데 엄마는 맨날 회의하고 강의하고..."


이젠 나도 울고 싶어졌다.

"그럼 엄마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말해도 안될거 같아."

"아냐~ 엄마 노력하고 싶으니까 얘기해봐요"

"음~ 엄마가 밤에는 일 안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때는 해도 되는데 밤에는 우리랑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미안해. 우리딸 원할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그런데 엄마가 일을 해야 우리딸 먹고 싶은것도 사주고 너 좋아하는 수영장 있는 풀빌라도 놀러가지. 그리고 일은 엄마가 좋아하는거야. 일이 너보다 먼저인건 아니지만 엄마는 일하는것도 참 좋아해. 엄마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해해줄수 있을까? 엄마가 일한다고 해서 너를 떠나거나, 놓고 가거나, 덜 사랑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을거야. 사랑해 우리딸. 엄마한테 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건 변함없을거야."

"엄마 나 이제 기분좋아요. 엄마가 나만 바라보면서 얘기해주니까 좋아."


정말 대화하면서 울고 싶어서 혼났다. 아홉살이지만 엄마한테 안기고싶어하고 어리광 부리고 싶어하는 아직 어린 내 이쁜 아기. 일이 뭐라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꼬 내가 이 금쪽같은 아헤를 두고 자꾸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건가.


회의하기로 한 단톡방엔 미안하지만 10분 늦게 들어가도 되겠냐고 톡을 남겨둔 상태였다. 3명이 프로젝트 건으로 회의하기로 돼있었는데 한 명은 안 읽었고 한 명은 10시 30분 아니냐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다시 채팅창을 훑어봐도 줌회의는 10시로 예약돼있었고 30분만 하자고 얘기했던 상황. 그 말을 오해한 모양이다. 30분에 하면 나야 더 좋지 하고 딸하고 더 긴 대화를 했던 것이다.


딸애를 겨우 달래어 재우고 나와서 노트북 화면을 켰는데 정말 어이없는 톡이 올라와있었다. 줌 회의 주체자가 다른 일하느라 정신없어서 오늘 회의가 내일밤인줄 알고 깜박잊었다는 내용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이 회의 참여를 위해 아직 화장도 안 지우고 정장 차림에, 딸과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대화를 힘겹게 나누고 시간맞춰 들어갔는데 이걸 깜빡했다고?


나 외에 둘은 남자다. 한 명은 싱글. 한 명은 애도 있는 유부남이지만 둘다 참 프리하게 날라다니시는 상황. 일에 하등 지장을 안 받는 사람들. 오로지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의 사람들. 너무너무 열이 뻗쳤다. (이게 혹시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보인대도 할말은 해야겠다)


왜 애 있는 여자는 이렇게 일하기가 힘들고 감정에너지가 소진되는데 반해 남자들은 가정 여부, 아이 유무 상관 없이 날라다니는가? 왜 여자들만 결혼하면 커리어를 유지하는데 어려운 환경에 처하는건가?


비단 커리어 뿐인가? 나는 자고 싶을때 잠도 못 잔다. 왜? 애들이 자야 비로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집에 같이 사는 애들의 아빠는? 자기가 졸릴 때 잘 수 있다. 내가 9년째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유다.


잠만 그런가? 화장실에서 볼일도 혼자 편하게 못본다. 밖에 버젓이 아무일도 안하고 TV리모콘만 만지는 어른남자가 있지만 그 사람은 아이들이 원하는 걸 거의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애들은 엄마만 찾는다.


이게 비단 나만의 문제일까?


일과 가정이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한 마리일순 없는걸까? 재택근무는 토끼 두 마리를 합체 시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킬뿐.


정말 울컥울컥 자꾸 올라와서

분통해서 잠 못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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