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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Dec 01. 2023

병아리를 키울 수 없는 운명

마침내 병아리를 샀다. 그리고 강아지가 먹었다.

 따듯한 봄날이 오면, 학교 앞에 병아리 파는 아저씨가 종종 출몰했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교문 밖을 나섰을 때 '삐약'거리는 귀여운 소리가 내 귀로 흘러들어오고, 그 소리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몹시 흥분했다. 나는 실내화 가방도 집어 던지고 아이들 무리로 뛰어들었다. 만약 그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엄청난 강철 심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병아리는 '삐약삐약'하고 내는 귀여운 소리만큼이나 생긴 것도 귀여웠다. 병아리 파는 아저씨가 오면 나는 집에 가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병아리를 구경했다. 참 노랗고, 작고, 소중해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병아리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어쩐지 심장이 아팠다. 그럴 때면 아저씨는 꼭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귀여우면 한 마리 사가." 하지만 내 주머니엔 늘 용돈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나는 항상 똑같은 말로 아저씨의 말에 화답했다. "아저씨, 언제 또 올 거에요?"


 병아리를 사기 위해 신중하게 병아리를 고르고 있는 친구를 보면 대리 만족과 부러움의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병아리를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나는 용돈이 생기면 주로 불량식품을 사 먹기 바빠서 대부분은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병아리를 데려오리라 생각했다. 나는 병아리를 잘 키울 자신이 있었고, 내 병아리를 행복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사실 나는 가끔 근거도 없이 자신감을 갖는다.)


 나의 바람이 커서 이루어진 건지 내게도 병아리를 살 기회가 생겼다. 병아리 아저씨가 오랜만에 학교 앞에 나타난 그날은 마침 아침에 용돈을 받은 날이었다. 나는 나의 병아리를 사기 위해 병아리들을 신중하게 살폈다. 그리고 털빛이 유독 노랗고 눈이 또랑또랑한 아이를 골랐다. 소중히 집어 든 이 아이는 '삐약' 소리도 우렁찼다.


 집에 가는 길에 내 병아리를 바라보았는데, 아주 사랑스러웠다. 내 품 안에서 한 번씩 삐약삐약 거릴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는 병아리를 위해 일부러 천천히 조심조심 걸었다. 병아리는 몸집이 작으니까 조금만 빨리 걸어도 쉽게 멀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 15분 걸리던 하굣길이 30분이나 걸렸다. 집에 가면 어서 병아리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따듯하게 해주어야지, 생각했다.


 빠르고 느린 걸음으로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대문을 열려는데 대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황급히 책가방에서 열쇠를 찾아보았으나, 열쇠를 집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냥 담을 넘었을 텐데 병아리가 문제였다. 병아리를 어찌해야 하지? 병아리를 들고 담을 넘는 건 불가능해 보였고, 꽉 차 있는 책가방에 병아리를 아무렇게나 담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 집에 있어서 문을 열어주길 바라며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애꿎은 똥개만 짖어댔다. 조용히 해 똥개야! 나라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귀여운 나의 병아리와 함께 계속 길바닥에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병아리를 대문 아래쪽 공간으로 먼저 들여보내고, 재빠르게 담을 넘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병아리는 작으니까 대문 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해 보였고, 달리기도 그렇게 빠르지 않을 테니 혹시나 내가 담을 넘는 시간에 요리조리 움직이더라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병아리를 대문 밑으로 들여보내고, 재빠르게 담을 넘었다. 그리고 담을 넘어 착지하는 순간, 끔찍한 비극을 마주했다. 우리 집 똥개가 내 소중한 병아리를 물어뜯고 있는 것이었다.


 "악!!! 이 똥개가!"


 나는 똥개의 머리를 세게 한 대 때렸다. 똥개가 깨갱, 하며 물고 있던 병아리를 놓아주었다. 내 병아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안타까움과 분이 풀리지 않아 똥개의 머리를 두 대 더 때렸다.


 "똥개 놈아! 왜! 대체 왜!!!"


 내 병아리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병아리의 상태를 살폈다. 병아리는 가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삐야..." 그토록 검고 똘망하던 눈이 이내 감겨버렸다. 힘없이 눈을 감고 있는 병아리의 모습은 애처로웠다. 너무 심하게 애처로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직 이름도 못 지었는데...병아리는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 병아리와의 만남이 그렇게 끝났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만남이었지만, 아주 강렬한 행복이었고, 아주 강렬한 불행이었다. 나는 병아리를 키울 수 없는 운명이었나보다.


 참혹한 살해의 현장에서 나는 배운 것이 있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나니까 잘 해낼 수 있다고 함부로 자만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집 똥개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진: UnsplashAfra Rami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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