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럴 때가 있어
마냥 좋았던 것들이 이유 없이 싫어질 때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찾고 싶지 않을 때
무작정 좋아하려 애쓰던 것들이 갑자기 내 삶을 빼앗아가는 것만 같고, 마음 썼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게만 느껴질 때
그런 순간들은 꽤 자주 날 찾아오곤 했어
인정하기 싫은 것들이 무섭게 내 앞을 가로막곤 했어
무거운 발바닥, 벗어나기 힘든 한숨, 둘 곳 없는 시선 그리고 그 한 편에 자리한 깊고 짙은 동굴
언젠가 내가 만들어놓은 곳인지 갑자기 내게 생겨난 곳인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깊숙이 펼쳐진 곳으로 몸을 들이밀었어
수그린 허리가 불편하고 웅크린 어깨가 아팠지만 그래도 무릎을 양 팔 가득 꽉 안으며 애써 고개를 파묻었어
이러고 있다 보면 사라질 거야
그러면 잊을 수 있을 거야
언제 그랬냐는 듯 뭐가 있기라도 했냐는 듯 아무렇지 않아질 거야
‘굳이 맞설 필요 없는 거겠지?’
‘잠깐 외면해도 되는 거겠지?’
‘어차피 상처받을 거 도망쳐도 된다고 해줘’
끝내 어떤 밤에도 답하지 못한 기억이었다
기억에 물들어 깨어나면 다시 또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