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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노들 May 07. 2017

엄마가 혹시 먼저 가게 되면 말야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 생기는 많은 즐거움 중에 한 가지는 엄마와 데이트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거다. 날씨가 너무 추워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귤이나 까먹으며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고 싶은 날씨였지만, 엄마가 강동원의 붐바스틱 춤사위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해 이른 아침부터 영화관으로 향했다.


우리 엄마는 시간을 넉넉히 쓰는 타입이라 그날도 역시 상영시간 한 시간 전쯤 영화관에 도착했다. 큰 사이즈의 커피를 하나 사서 둘이 나눠먹으며 영화관 안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엄마가 갑자기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열었다. 이 아침부터 어디에 전화를 걸려고 그러나 싶어 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친구들이 그러는데,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이 이렇게 핸드폰 연락처를 열어보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한테 부고 문자를 돌리는 거래. 그러니까 엄마가 혹시 먼저 가게 되면 말야... 너도 이렇게 연락처를 열어서 이 사람들한테 연락하면 돼. 여기 이렇게 앞에 직장 써있는 사람들은 굳이 안 해도 되고... 음 이 사람은 엄마 국민학교 동창모임 회장 하는 애니까 얘는 꼭 연락하고. 그리고 또... 얘한테도 하고, 얘한테도.. 엄마 핸드폰 비밀번호는 너가 아니까.."


그날 아침 나는 덜 깬 잠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말짱한 우리 엄마는 평생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에 대한 후속조치에 대해 일러주고 있었다. 4년 전 가을 뇌혈관 수술을 받은 후로 엄마의 관심사는 늘 본인이 다시 아플 때와 죽고 난 다음 내가 느낄 슬픔에만 쏠려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걸 최소화할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가끔 이렇게 정말 뜬금없이, 내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을 때 불쑥불쑥 나를 겁준다.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오줌이 마렵다는 소리나 해댄 게 전부였다.


엄마는 분명히 내가 울기 싫어서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왜냐면 그때 엄마가 예쁘게 웃어주었으니까.




*이 브런치에 올라오는 에세이는 제가 첫 직장을 그만둔 2015년부터 써왔던 것들이라 계절 및 날씨 등등에서 현재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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