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어릴 때는 TV에서 '사랑의 리퀘스트'나 EBS에서 종종 모금 방송을 했다. 우리 아빠는 그런 프로그램에서 특히 할머니들의 사연이 나오면 좀처럼 채널을 돌리지 못했는데, 역시 부전 여전이라고 나도 그런 아빠의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다.
공부를 마치고 엄마 심부름을 하느라 시장에 들르는데, 시장 어귀에 가만히 앉아 물건을 팔고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오늘 처음 본 것은 아니고 종종 마주치는 할머니인데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제주도인지 북한말인지 알 수 없는 사투리를 쓰시는 분이라 내 나름대로는 평양 할머니라고 부르는 분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할머니 덕후인 우리 아빠는 그 할머니를 볼 때마다 같이 쭈그려 앉아 주머니 속 천 원짜리들을 탈탈 털어 면봉이며 건전지 같은 것들을 샀더랬다.
더울 때나 추울 때를 가리지 않고 늘 거의 같은 복장으로 앉아 계시던 그 할머니가 오늘은 내 눈에도 밟혔던 거다. 마침 면봉도 떨어지고 주머니에 천 원짜리도 있겠다, 나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면봉을 집어 들고 돈을 건넸다. 1팩에 한 100개쯤 들어있을 법한 면봉이 4팩에 천 원이었다. 천 원 마켓 다이소에서도 이렇게는 못할 거다. 염가판매!
무튼 면봉 이천 원어치를 사고 값을 지불하는데 할머니가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편의점에서 만나는 젊은 알바생에게 들었다면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을 말이 왜 꼭 할머니 입에서 나올 때는 그렇게 가슴 한편이 찡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고개를 푹 숙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가려는데 할머니가 급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주섬주섬 앞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를 찾으시더니 가지고 계신 것 중에 가장 새것을 골라 검은색 비닐봉지를 쥐어주셨다. 담아가라고. 그때 나는 거의 이민가방 수준의 큰 에코백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따로 봉지가 필요 없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는데, 할머니는 네모 반듯하게 접힌 그 비닐봉지를 다시 떨리는 손으로 펼치며 사투리로 뭐라고 말을 하셨다.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지만 맥락상 이 봉지가 작아 보여도 다 들어가니까 여기에 넣어가라,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모습에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콧바람이 들어 그런지, 또 평소에 시도 때도 없이 별 것도 아닌 일에 눈물 글썽이는 감성녀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건전지가 다 떨어진 것 같은데 내일 또 가야지.
*이 브런치에 올라오는 에세이는 제가 첫 직장을 그만둔 2015년부터 써왔던 것들이라 계절 및 날씨 등등에서 현재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