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더라
나는 좀 불의를 못참는 성격이랄까, 반동분자의 기질이 뼛속부터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체육시간에 본인 마실 물을 떠오라는 담임 교사의 말에 화가나 그길로 교장 선생님께 찾아가서 (지금 생각하면 다소 극단적..) "학생이 교사의 물까지 떠와야하냐"고 따진 적도 있다. 담임교사는 그 후 나를 따로 불러, 교장 선생님한테까지 찾아갈 일이냐며 한층 수그러든 톤으로 나를 타일렀다. 부조리한 일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꼭 따지는 '프로불편러'의 새싹은 하루아침에 일구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어쨌든 이런 나의 성향은 유전으로 인한 선천적인면(부모님)도 있는 것 같고 자라온 환경(조기유학, 집안 분위기 등)같은 후천적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누군가에겐 짜증나는 대상이겠지만 나 스스로는 내 이런 성격에 나름 만족하며 살고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이런 나의 성격이 유학을 간다고 바뀌었을까? 전혀. 고등학교 때는 수업중에 아시안에 대해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같은 클래스 학생에게 "그 발언은 인종차별이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따져 물었다가 그 친구가 별안간 울며 뛰쳐나가는 바람에 졸지에 선생님께 앞으로 불려나가기도 했다. 'X발, X됐다'고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리던 내게 선생님은 '잘했다. 앞으로도 항상 이런일이 있을 때 나서서 얘기해야한다.'며 한국이었으면 나대고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고 혼났을 일에 대해 칭찬하고 오히려 독려(?)를 해주셨다. 이 후에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건 다음에 풀겠다.
쨌든,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결정을 한 나는 꽤나 고무적인 태도로 내 미래를 그렸고 그 꿈이 한국 땅을 밟기도 전에 개박살나면서 예전의 다크템플러로 퇴화하기 시작했다. 이젠 한국사회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점심때가 되면 팀장/대표의 식사를 챙겨야 했고, 윗사람들의 반말에도 존댓말로 응해야 했으며,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가는 등 짜치고 구시대적인 일들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진짜 직장내 괴롭힘을 목격한 후로 내가 겪은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며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한 회사에는 일을 빠릿빠릿 잘하고, 나와 또래여서 단기간에 친해지게 된 직원이 한 명있다. 스타트업에서 피봇을 겪고 4년을 넘게 근속하며 회사의 개국공신, 백두혈통, 고인물이 되어 임원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던 그였다. 성격이 안좋아서 그 때문에 퇴사한 사람이 수두룩빽빽하다는 다른 고인물의 경고를 들은 나는 '그래도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그와의 친분을 유지해갔다. (물론 회사에서만)
그(이하 A)와 일을 하며 인격적으로 문제를 느낀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이기에 그 직원 밑으로 중고신입(이하 B)이 들어오게 되며 바뀐 그의 태도에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무실 내에서 소리를 지르며 질책하는 건 기본, 슬랙 DM으로 B에게 폭풍 "피드백"을 하루에도 수십개씩 보내는가 하면 모두가 보는 슬랙 단체방에서도 B의 잘못을 짚어내기 바빴다. 거의 하루 일과 중 80%가 B가 뭘 안했는지, 뭘 잘못 했는지 꼬투리 잡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 정도가 지나쳤다. 소위 '처세'를 잘해 윗분들께 예쁨을 많이 받던 A였기에 나는 왜 유독 B에게만 열을 끓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불편했다.
견디다 못한 A가 '피드백 해주시는 건 좋지만 남들이 보는데서가 아니라 나가서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톤이 너무 공격적이라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힘들다.'라고 몇차례 면담을 했지만 감히 내 톤앤매너에 대해 질책을 해? 일도 못하는 네가? 라고 받아들인 A는 그 질책의 수위를 되려 높여서 본격적으로 B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B가 권고사직을 당했다. (A가 아니라!)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