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야누스 그리고 박성연
한국 재즈계, 별이 지다.
박. 성. 연 !
한국 재즈계의 전설인 그분의 부음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고인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재즈'라는 장르만큼이나 일반 대중에겐 다소 낯설은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재즈, 블루스 또는 그런 분위기 류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 보았음직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일생은 이땅의 재즈음악과 궤도를 함께 했지만, 척박한 재즈 문화 만큼이나 고단하고 힘겨운 인생이었으리라 추측됩니다.
박성연 님의 분신이었던 야누스는 신촌의 허름한 모퉁이, 청담동 영동대교 근처 지하, 마지막에는 교대역 근처 지하를 전전해야만 했죠. 그것도, 재즈를 사랑하는 어느 후원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고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음에도 늘 변함이 없었던 건,
'야누스'라는 간판, 어느 클럽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그 독특한 '야누스'만의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재즈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밤 늦은 시각, 야누스 클럽에서 단 한 사람, 단 한 테이블만이 자신을 기다리더라도 기꺼이 무대 위에 올라 'my way', 'imagine'을 재즈 풍으로 부르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제 눈에 선명하게 남아 있네요.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잠긴 채, 뒤에 있는 밴드와 호흡을 맞추어가며 노래를 부르실 때는,
'아! 진정한 재즈 뮤지션이란 바로 저 분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배어 나오곤 했습니다.
또, 언젠가 친구로 부터 선물 받았던 박성연 님의 '세상 밖에서', 'if', 'my funny valentine'이 수록된 음반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튀지 않으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보이스가 제가 아는 그분만의 매력이었죠.
그 이후, 세상사에 파묻혀 최근 몇 년 동안 야누스에 가보지 못했고 그 분의 공연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사이, 선생님은 연로하셔서 요양원으로 가셨고, 어느 젊은 뮤지션 후배가 '디바 야누스'라는 새이름으로 클럽을 이어받았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언듯 본 적이 있습니다.
한때, 야누스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좀 더 젊어진 '디바 야누스'가 고인이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한국 재즈, 재즈 음악을 한단계 업그레드시켜 대중속에서, 대중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드는 재즈문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