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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 Apr 08. 2021

'딴소리'를 한 판 크게 벌려본다면, 공연 '딴소리 판

관극의 틀, 공연의 틀을 시원하게깨 보자

한국의 관객들은 미국 브로드웨이 같은 해외 공연장의 관객들에 비교하면 굉장히 조용한 편이다. 한국엔 공연장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시체 관극'이라는 말도 있다. 시체처럼 조용히, 가만히 앉아 다른 관객을 방해하지 않고 관극하는 것을 말한다.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그렇지만 몇백 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의 공연 관람 방식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는 아주 흐릿했다. 관객은 때로는 말로 추임새를 넣고, 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흥을 즐기며 자유롭게 극에 개입했다. 관객은 극의 주요한 출연자 중 하나로 기능했다.


그리고 여기 2021년, 연희집단 The 광대의 공연 '딴소리 판'이 있다. 공연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객석과 무대가 엄격히 구분된 프로시니엄 극장이지만, '딴소리 판'의 첫 막이 오르는 순간 그 경계는 순식간에 흐려진다. 몇백 년 전 공연을 즐기던 우리 사람들처럼.


코로나 19로 인해 기존의 대면 공연들조차 관객이 없는 비대면 공연으로 형식을 달리하고 있는 요즈음, 무대와 객석 사이 자유롭게 말소리와 추임새가 오가는 '딴소리 판'의 현장은 틀림없이 새롭고 또 소중한 것이었다.






막이 오르면 한 소리꾼이 등장한다. 소리로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내던 소리꾼은 거지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를 만나고, 다 함께 판소리의 '판을 깨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기존의 판소리 다섯 마당의 이야기가 전부 무대에 오르지만, 현대적인 요소와 코믹한 요소가 적절히 섞여 전개와 결말이 새롭게 창조된다. 첫 마당인 춘향전에서 춘향이를 구하러 온 이몽룡이 실은 암행어사가 아닌 거지 '아맹거사'였고, 고로 춘향이는 이몽룡과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떠도는 '추랑'이 되는 결말을 맞는 식이다.


의외의 부분에서 이야기가 방향을 틀고 전개를 달리하기에, 기존의 판소리 다섯 마당에 익숙했던 관객들은 예상 밖의 전개에 웃음을 터뜨릴 수 있고 또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판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다섯 마당의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달라진 부분들이 훨씬 흥미롭고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판소리를 잘 알지 못했던 관객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극이었다고 생각된다. 군데군데 21세기의 유행어와 '무상급식' 등 최근 사회 이슈가 아주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의 내용을 전혀 몰라도, 우리 예술의 또 하나의 재미인 '풍자적 재미'를 충실히 느낄 수 있는 공연이다.


뿐만 아니다. 판소리와 무용, 그리고 다양한 전통 연희와 예술이 한데 모여 있는 이 공연은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나 정말로 눈과 귀를 전부 만족시켜주는 공연이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출연진은 물론이고, 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전통예술이 서사에 적절하게 어울리도록 구성하여 앉은자리에서 다채로운 우리의 전통예술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소리꾼 역할을 맡은 송보라 님의 맛깔난 가창이 아주 인상 깊었다.


고로 '딴소리 판'을 판소리 공연으로 알고 간 이들, 무용 공연으로 알고 간 이들, 혹은 그저 전통 예술 공연으로 알고 간 이들 모두가 공연을 보기 전에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을 한 가지 이상씩은 얻어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뮤지컬과 같은 서양식 공연과 서양식 극장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은 관극의 틀을 깰 수 있고, 판소리나 전통 무용 공연을 자주 관람했던 관객 역시 기존의 '전통예술'에 대한 틀을 깰 수 있는 공연 '딴소리 판'. 어쩌면 모두가 한 번쯤 들을 필요가 있었던 "딴소리"를 전하는 공연이 아닐까?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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