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두산인문극장 강연 리뷰(4/4)
* 이 글은 2022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공정' DO; 에디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기관의 주요 가치 중 하나는 ‘공정성’이다. 덕분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공정이란 단어를 마주했더랬다. 정확하게는, ‘공정성’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공정성이 무엇일까? 초등학교 시절 바른생활 교과서 덕에 (이걸 기억하면 90년대생이다. 반갑다, 동년배.) 공정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관념은 갖고 있었지만, 정작 그 단어의 뜻에 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왕좌왕하다가, 모두에게 공평한 자원과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공정함이라고 어찌저찌 적어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내가 적어낸 문장이 잘 와닿는 문장이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공평한 자원과 기회가 돌아간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을지언정,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 뜻하는 자원과 기회는 대체 무엇이며, ‘공평함’은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공정성이란 무엇일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정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번 2022년도 두산인문극장의 개막을 알린 첫 강연은 바로 그 “피부에 닿는” 공정성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강연을 맡은 경북대학교 최정규 교수는 우선 아주 익숙한 사례들을 제시했다. 대학생으로서 겪었던 팀플과 수강생 증원, 직장인으로서 한번쯤 들어봤던 회사 내 공동체 의식 문제. 누구나 한번쯤은 수강신청에 실패해 증원 신청을 해봤을 것이고, 팀플은 당연히 겪어봤을 것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만사에 으쌰으쌰를 외치는 사람 한 명 정도는 만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례들을 통해,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공정성이라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관념을 조금은 가깝고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사례들은 흔히 공정의 정의로 알려져 있는 것들에 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내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눈다고 해서, 혹은 그렇게 하기 위해 이타심을 발휘한다고 해서 나의 행위가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타심에 기반한 행위라고 해도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면, 공정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공정한 걸까? 이번 강연에서는 호혜성이라는 개념이 그 중심으로 제시되었다. 호혜성, 많이 들어는 봤지만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는 않는 관념이다. 말 그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을 실천한다는 것. 내가 이만큼 줬으니, 이만큼 받아야겠다는 것이 호혜성이다.
이 호혜성은 '조건부적인 협조'의 밑바탕이 된다. 최정규 교수가 제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타인 역시 자신처럼 타인의 이득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확실히 있을 때에 한한다. 즉, 내가 준 만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사람들은 협력을 하고, 이는 협력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안이므로 호혜성은 궁극적으로 무임승차를 제지하고 협력을 일구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때로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조건부적 협조를 하는데 강연은 이를 '강한 호혜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때로 생판 모르는 남에게, 혹은 그런 사이끼리 협력을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강한 호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 여기엔 타인도 나처럼 협력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협력적 태도를 철회한다.
이를 바탕으로, 강연은 '강한 호혜성'이 외부에 대한 배척, 외면, 혐오를 설명한다고 말했다. 강한 호혜적 존쟁인 우리는 외부인에 대해 우리만큼 협력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기준이다. 그 기준은 누가 제시했으며, 얼마나 '공정성'이 있는가? 합리적이지 못한 기준으로 외부와 내부 간의 경계를 설정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은 외부인으로 인식되어 배척받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이번 강연에서 제시한 ‘공정성’의 정의는 참신하기 그지없었고, 그만큼 설득력 있었다. ‘공평’을 ‘공정’이라 여겼던 나의 좁은 사고 체계가 한순간에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강연을 맡은 최정규 교수님이 친근한 말투로 쉽게 설명해 주셔서인지, 학문적인 내용이었음에도 보다 쉽게 흡수할 수 있지 않았었나 생각해본다.
공정성과 같이 추상적인 관념을 탐구하는 것의 재미는, 교과서를 탈피하는 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많은 관념에 관해 학교에서, 학원에서, 책에서 알려주는 정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단지 익숙해진 것일 뿐, 그 정의엔 때로 허점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는데 말이다. 그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인문학적인 탐구다. 내가 익숙한 세계를 깨고,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의 오점을 깨달으며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인문학은 우리에게 그런 경험을 제공한다. 어쩌면 두산인문극장도 꾸준히 그런 역할을 해오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여정에 함께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비로소 실감하게 된 강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