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불법이 되는 세상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by 담화

책을 태워 죽이는 사람에서 책을 살리고 기억하는 사람으로 극적으로 변화하고야 마는 전직 방화수 가이 몬태그 씨, 안녕한가요. 당신의 '안녕'은 어디에 기초하고 있나요? 사람마다 안녕함을 느끼는 조건이 조금씩 다른 법인데 그토록 험악한 세계에서의 안녕이란 어떤 안녕일까요.


요즘 세상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아이들이 게임을 싫어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게임을 교과과정에 넣으면 된다고 하는 말이죠. 우습지만 우습지 않은 이 농담이, 어쩐지 책을 불태우도록 되어 있는 방화수가 존재하는 세계에서도 유효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서가 불법이고, 책은 불살라버리는 것이 당연한 세계에서 숨죽여 책을 감추고, 몰래 읽으며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갈 것만 같다는 게 그리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무엇이든 금지당하면 뒤늦게 불타오르는 이 한심한 열정이란.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매일같이 '권태롭게' 반복되는 일상을 깨트리는 사소한 순간이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온다는 것이 저는 늘 재미있습니다. 일종의 에피파니적 순간 말이에요. 방화수 가이 몬태그에게는 그것이 어느 날 밤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클라리세와의 만남이었겠지요. 계시를 던지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클라리세는 너무나 예사롭게 '행복하시냐'는 질문을 던졌고, 언뜻 듣기에 별 대단한 의미도 없이 가볍게 안부처럼 묻는 그 질문은 작지만 날카로운 돌멩이가 되어 연약한 유리 같았던 당신의 일상에 작은 금을 내기에 이릅니다.


"행복하지! 물론 그렇고말고."
(...)
물론 나는 행복하다. 도대체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그는 텅 빈 방에다 대고 물었다. 선 채로 환풍기 구멍 사이의 틈을 쳐다보던 그는 갑자기 그 바깥쪽에 뭔가가 숨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저 틈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26쪽


어떤 질문들은 내부로 깊게 침투하곤 합니다. 불편할 정도로요.


"저는 다른 방화수도 몇 명 알고 있지만 아저씨 같은 사람은 없어요. 아저씨는 제가 얘기를 할 때면 저를 쳐다보세요. 제가 달 얘기를 하면 달을 쳐다봐요. 어제 그랬죠? 다른 방화수들 중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전 알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얘기를 한다 치면 그냥 무시하고 가 버려요. 아니면 야단치고 으르거나. 아무도 남들에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이 없어요. 아저씨는 저하고 어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분이에요. 아저씨가 방화수인 게 이상하다는 건 그 때문이죠." -46쪽


그렇지 않은가요?


그럼에도 아직 당신의 내면에서 변화의 불씨가 타오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화서에 도착한 신고를 받고 책을 몰래 소장하고 있던 노인의 집에 출동했던 당신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하죠.


발코니에 여자가 나와 있었다. 말없이 시선으로 방화수들을 압도한 채, 침묵으로 그들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비티는 손가락을 튕겨 점화기의 불꽃을 켰다.
너무 늦었다. 몬태그는 숨이 막혔다.
여자는 경멸에 찬 눈초리로 손을 들고는 성냥개비를 난간에다 세차게 부볐다. 사람들은 한밤중의 거리를 마구 내달렸다. -70쪽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 집에서, 당신은 방화수들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노부인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책을 불태우려 하는 당신들을 막아선 그녀는 너무도 당연한 듯 책과 함께 자신을 불사르기를 선택하죠. 이 사건으로 인해 클라리세의 질문이 만들어 놓았던 균열은 기세를 붙여 당신의 굳건한 내면, 혹은 어떤 믿음을 갈라놓기에 이르고요. 게다가 이렇게 당신에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말들을 던져 놓은 클라리세가 갑작스럽게 증발합니다. 아내는 그 애는 죽었다던데, 같은 말을 해서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죠.

그리고 당신은 이제 뭔가를 깨닫습니다. 복기하고 회의懷疑하며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고 대부분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을 때에라야 인간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죠. 그리하여 당신은 가이 몬태그의 진정한 삶을 일구기로 결심합니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결단도 없이, 그건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루어지죠.


몬태그는 이제 자신 속에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바보라는 것조차 모르고 그저 두려워하기만 하는 몬태그.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심야의 도시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달려갔을 때 그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또 해 준 노인. -168쪽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점을 설정해 놓고 달려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요. 그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기다 우연히 다다른 곳에서 지나온 곳들을 돌아보며 아아, 그렇구나, 그렇게 된 것이구나, 하고 제 마음이 자신을 이끌어 온 길을 뒤돌아보며 비로소 한 발 늦은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요.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행동과 반추, 납득의 간격이 훨씬 짧아지기야 하겠지만서두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는 절로 생각하게 돼요. 나라면, 어떤 책이 되기로 마음먹었을까를. 단 한 권의, 살아 있는 책이 되어야 할 때 어떤 책이 되어 그것을 후대에 전하고 싶어 질지를.


당신의 여정은 숨 가쁘기 짝이 없고 이야기의 대부분이 지독히도 현실적으로 아포칼립스적이어서 때때로 현기증이 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뭔가요, 를 물었을 때 당신의 이야기를 종종 생각하곤 해요. 체제 순응자에서 저항자를 거쳐 희망을 전승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가이 몬태그를 항상 응원합니다. 힘내야 해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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