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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Nov 15. 2023

우리는 끝없이 어딘가에 근접해 갈 뿐이다

김나현, 휴먼의 근사치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책을 매일같이 넘기다 보면 어디에 도착해 있을지 가끔씩 궁금해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나 자신도 몰랐던 삶의 궤적을 살펴보고 싶은 욕망이라고 해도 괜찮고 그저 끝이 어디일지 알고 싶은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해도 되겠다. 너무나 알고 싶은 어떤 이야기의 결말을 살짝 엿보고 싶은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내가 끝없이 걷고 있는 길의 막다른 끝을 궁금해하다 보면 앞을 바라보던 질문의 촉은 어느새 안쪽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대체로 그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너는 누구인데?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은 뭐지? 네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야? 너는 둘 중에서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가져갈 거지? 나이가 어릴 때일수록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이제 인생의 절반 이상은 분명히 산 게 아닐까 속단하기 일쑤인 나는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았지만 미련이 절절 끓는 마음이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재촉해야 할 걸음을 붙든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내가 인간을 묘사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특징들이라는 거다.


인간은 딱 한 마디로 잘라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격과 특질이 모두 다른 개체다. 공유하고 있는 종특이라고 해 봐야, 글쎄 몇 가지나 있으려나. 그래봐야 신체적인 것들이지, 정신적으로는 거의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한 30년 전에만 해도, 몇 가지의 인간적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게 목록화가 가능했을 것 같다. 지금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은 결이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닐 것 같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만사 긍정주의자인 껍데기와는 달리 항상 나는 최악을 가정한다. 낙차의 충격에 정신이 부서지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다 여기까지 왔지? 


       

휴먼의 근사치 | 저자 김나현 | 출판 다산책방 | 발매 2022.06.21.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 정말 대책 없이 끌렸다. 속칭 어그로 끄는 제목은 아닌데(당연하다, 문학 단행본의 편집부에서 그걸 용인할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넘어가기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성을, 인간됨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특성들을 빅데이터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면, 그래서 '참'에 가까운 값을 도출할 수 있다면? 


가장 첨예한 이슈를 문학에서 논할 때 나는 언제나 흥미가 동한다. 요 근래 읽은 것들 중에 그런 작품 중 하나로 내가 몹시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단편집 <스마일>에 실린 <차오>가 있었다. 자율주행과 해킹이 소재로 쓰였는데, 몹시 흥미롭고 생각을 하지 아니할 수 없게 만드는 스릴이 있으니 일독을 권하... 아 다른 책 이야기하고 있었지.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울 수 있는지,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면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늘 골치 아프고 생각하기 싫은 것들이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 된다. 인간으로서의 독자성과 정체성. 각자만의 정의가 필요하고, 타인의 정의를 궁금해할 때 조금 더 인간적인 인간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라고 추측한다.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 사람의 타인을 만났을 때, 그를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항상 필요하고, 그것은 오랜 세월 집적된 그의 문화적, 지적, 관습적 데이터의 상호작용으로 산출한 결과이니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해까지도 필요 없고, 지금의 인간 사회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다. 


왠지 퀀텀 점프한 결론이지만,


그러니까 이야기를 많이 읽자구요. 그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복제된 이드도 계속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어떻게 학습하느냐에 따라서, 그 자신만의 방향성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제되었더라도 자기만의 방향이 결정되면 학습의 양과 질이 달라집니다. 모든 이드가 동일한 능력치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들이 속한 곳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학습을 통해 성장하거나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83쪽


"좋아한다는 건... 놓을 수 없는 거예요. 포기가 쉽지 않은 거요."  -94쪽


K는 인공지능의 논리가 무한히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해질 거라고 했다. 인간이라면 행동의 결과값이 비도덕적인 것으로 결론 날 경우, 그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산해 그 안에서 자신을 정당화시킬 합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논리값을 쌓는 과정이 지속되다 보면 우리의 논리도 그렇게 변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다가 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망하지 않기 위해서 멈출 수 있는 선택값을 부여하는 거라고 했다.  -220쪽


좋은 이야기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나현 작가님.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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