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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Nov 09. 2023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조우리,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사람은 겉보기가 다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말들은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결과 그림자를 가진다. 일전에 읽던 책에서 (유럽의 어느 나라) 장례식에 대한 글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듯 말 듯하면서 웃게 되는 대목을 발견했다. 대략 이러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장례식날, 추도사를 듣고는 있는데 무슨 말을 뭐라고 하고 있는지, 사람이 얼마나 왔는지, 끝까지 아팠던 그 사람은 이제 안 아플지, 이런 생각들이 슬픔과 범벅이 되어 밀려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있는데 장례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 미망인에게 자신과 얽힌 고인의 생전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는데 그것이 자신이 전혀 몰랐던 모습들- 이를테면 성격이라든가, 습관 같은- 이어서 몹시 놀라운 한편 끝까지 모를 수도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감이 함께 찾아와서 몹시 큰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어쩐지 내가 몹시 좋아했던 한 권의 책을 덮으려던 순간 작가가 선물처럼 남겨준, 내가 좋아하던 인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뒷이야기를 모조리 다 들은 뒤에서야 비로소 후련하게, 아쉽게 책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물론, 생각날 때마다 다시 들춰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장황한 서두를 붙인 이유는,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그 말 한마디를 뒷받침하려는 이유뿐이었는데 과하게 길어졌다. 그러나 자고로 블로그 포스팅은 깊게 생각 안 하고 그냥 키보드 두드려서 입력하는 걸로 끝내고 싶다는 괴벽이 있는 관계로, 골조도 없고 뭣도 없는 글이니 끝까지 가볍게 읽으시기 바라며 계속하겠다...


아무튼,


그러니까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지. 


본의 아니게 최근 YA/MG 소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정말 미묘하게 그 두 경계선 사이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알기에는 좀 어려운 감정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아니, 요즘 아이들이야말로 이런 감정이 뭔지 좀 알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그런 마음이 충돌을 해서 말이다.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 저자 조우리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22.07.11.

        


주인공 소년의 가정은 간신히 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언제 뇌사상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중환자와 같은 상태다. 주인공의 여동생이 5년 전 여름휴가지에서 실종되었고,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여동생의 실종에 크나큰 죄책감을 안고 있다. 더구나 그 여동생은, '아주 최소한의 행동만으로도, 예컨대 윙크를 한 번 한다든가, 작은 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한다든가, 지나가는 개미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웃게 만들 수 있는(31쪽)' '정말이지 엄청난 아이'였기 때문에 주인공의 자책은 깊어지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삶의 의욕이나 의지 같은 것은 주인공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알파 센타우리의 어드메인가 존재할지도 모를 외계인보다도 더 아득히 먼 개념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주인공은 외부 세계와, 다정함으로 무장한 타인들에게서 자신을 격리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신을 둘러싼 슬픔의 대기권에서 호흡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멀리 있어도, 나와 같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비애 속에서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사람끼리는 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옆에는 같은 슬픔 속에서 살아남는 아가미를 달고 있는 이들이 하나씩 모여든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래의 사실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더 크게 공명한다. 세상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과 바깥 세계 사이의 경계가 남들보다 희미하다. 괴로울 텐데. 하지만 고통의 전이라는 감각을 아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묘하게 위로된다.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아주머니와 엄마를 연결시킨 슬픔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150쪽
세상은 조각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들었고 마침내 하염없이 먹먹해져 버렸다. -152쪽


그렇게, 세상은 상처로 어딘가 깨어져 나간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니까,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고 멀쩡해 보일지라도 정말로 100%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는 법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관대해져도 괜찮으며, 공감의 범위를 넓혀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뭐가? 뭐든지.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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