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빈, 이토록 기묘한 양자
양자역학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번쯤 묻고 싶었다.
Q. 이 기기괴괴한 세계에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A. 저는……
보통 나는 문과 출신으로 흔히 오인받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문과 출신이 아니다. 뭐, 후에 그쪽으로 따로 학위를 받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체능 출신이다. 이런 출신 배경(뭐래니)을 가진, 나이도 적잖은 할미가(최근 스레드에서 04 할미썰을 보고 충격받은 나머지 몸져누웠다가 환생자로 자칭하기로 마음먹었다) 양자역학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순전히 따님 때문이었다(나와서 머리 박아). 중학생 때 물리학도를 지망했으나 수학 성적이 심각하게 달려서 눈물로 이과를 포기했던 딸이 이 재미있는 걸 나 혼자 알 수는 없다면서 나를 마주 앉혀놓고 양자역학의 근사함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흡사 양자역학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분위기. 관심도 없는 걸 듣고 있으려니 좀이 쑤시지 않을 수가 없는데, 없었는데……그런데 재미가 있어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강사의 능력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때 실감했다. 하품 연발하기 딱 좋은 얘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설명할 수가 있구나(후에 그녀는 실로 놀라운 면접 승률을 기록함으로써 말발의 달인임을 증명하였다).
아무튼 그래서. 나를 그렇게 입덕시켜 놓고, 그녀는 변절하여 다른 쪽으로 옮겨갔으나 그것은 또 다른 기회에 마땅히 다시 이야기되어야 할……아무튼.
두께로는 160쪽 남짓한 얇은 책이건만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책의 두께에 반비례하는 바, 자꾸 앞으로 뒤로 구간반복을 거듭하며 읽느라 도대체 이 시간을 들여가며 읽는 게 맞는 것인가 여러 번 회의를 거듭하였지만 결국 완독에 성공. 감격 또 감격이었다. 감격은 그렇다 치고, 다 이해했느냐 묻는다면.
적당히요(철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관측과 동시에 하나의 상태로 정해지는 것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순전히
양자 세계를 바라보는 표준적인 방식으로 수십 년 동안 자리매김한 방법은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알려졌다. 왜냐하면 이 해석을 강력하게 주창했으며 아주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이름(실제로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 일련의 개념들에 붙여진 이름)은 막스 보른을 매우 불편하게 했는데, 왜냐하면 보른은 보어 팀의 일원이 아니었고 코펜하겐에서 연구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확률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이 해석의 핵심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55쪽
라는 이유에서인데,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진심으로 애석한 기분이 들었다. 내 거 뺏기는 그 기분 알죠, 압니다. 심심한 위로를.
그리고 당연히, 그게 양자역학의 알파이자 오메가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더라고요? (아하하)
그렇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무려 여섯 가지의 해석이다.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니고……여섯. 이걸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해석하려고 시도할 일인가(일이다). 읽을 당시에는 간신히 간신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덮고 나니 또 뭐가 뭔지 헷갈린다. 그래서 책 제목을 지그시 노려보며, 나는 조용히 되뇐다. 기묘한 양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토록 괴랄한 양자라고 하면 딱 맞겠는 것을.
개인적으로 어떤 해석을 지지하는가 하면 정말 엉뚱한 이유로 데이비드 도이치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이유는 말 못 함 그러나 결국 말미에 말해버림) 그러나 결국은 자꾸 코펜하겐 해석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나마 이해가 쉽고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는, 정말 웃지 못할 이유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거니와 나는 잘 알지 못하니 이런저런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종합하자면 일단 이 해석을 내세운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당대 물리학계의 거두이기도 했거니와 당시의 실용적 분야에서 이 해석이 충분히 잘 들어맞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보이는 다른 해석이 발붙일 자리가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내가 선호하고 말고와 관계없이 여전히 불가해한 구석이 넘쳐나는 세계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이 시도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다. 그런 해석을 차근차근 정립해 나간 물리학자들은 물론이고 그걸 어떻게든 쉽고 간략하게 요약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시도도.
여기 이렇게 좋은 게 있어요. 재미있고 유익해요, 같이 좀 봐요, 내가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줄게요, 이런 마음이 뚝뚝 떨어지는 다정함. 물론 그들의 다정함이 간혹 나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독자의 짜증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런 노력들로 인해 사람들은 조금씩 더 똑똑해지고 옳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똑똑함을 써먹으려고 하는 이들을 알아볼 수도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돈 안 될 게 뻔한 책을 열심히 출판하고 있는 이들은 또 어떻고. 정말 다들 어찌나 열심이신지, 책의 최초 집필/출간 목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지점에서 감동받는 이런 독자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에버렛은 그 어떤 관측자도 다른 세계의 존재를 결코 알 수 없긴 하지만 우리가 다른 세계들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세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94쪽
도이치는 다세계 해석에 의하면 소설 작품에서 묘사되는 세계도 물리 법칙을 따르기만 한다면 다중우주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