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님, 뜻밖의 우정
우정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을 때, 연관검색어처럼 함께 떠오르는 낱말은 늘 지속이었다.
우정은 쉽게 탄생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소멸하곤 한다. 어떤 면에서는 사랑과 유사하기도 한 것이, 우정 또한 업신여김蔑의 감정으로부터 파국의 전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정을 오래도록 지속케 하는 근본적인 토대에는 상호 존중이라는 태도와 존경이라는 감정의 어우러짐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라도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우정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으니까. 내게도 그런 과정을 통해 잃거나 스스로 놓아버린 우정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한 그런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제법 노력했던 경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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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공감대 위에서 곧잘 발생한다. 하나의 삶이란 수없이 많은 조건과 맥락 위에서 직조되는 것이기에 우정은 어디에서나 생겨난다.
쉽게 생겨난 친근감이 시간을 두고 친애와 신뢰, 존경과 공감으로 단단해져야만 비로소 그것은 우정이라 불릴 만한 것이 된다. 정직한 본질만 두고 보자면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우정이 피어나지 말란 법은 없으나, 의외롭게도 우리는 몹시 편협한 조건에서 발생한 것만을 우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치우친 우정을 나누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안주하는 것에 만족하는 일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을 발견한 기분이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유독 노인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마음,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앞에서 속절없이 약해지고 환해지는 마음은 오랜 시간 동안 길러진, 나의 고유한 감수성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의 타고난 운동신경처럼, 음감이나 미감처럼, 내 안에서 예민하게 발달한 감각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10쪽
30대 후반의 여성인 저자에게는 노인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이름이었던 특별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인지- 라고 쓰고 잠시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 그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 저자가 말했던 그만이 특별하게 키워낸 감수성 덕이 맞지 않을까 싶고.
여하간 그가 노인을 보는 시선은 보통의 눈길과 사뭇 다르다. 써 내려갔듯이, 저자가 보기에는 '그 많은 일을 겪고도 끝내 '사는 일'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같은 삶의 질곡을 견뎌내고, 끝내는 '자족'할 수 있게 된 경지에 존경심을 가지는 것도 그런 것을 읽어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이의 자산일 것이다.
뭉뚱그려진 하나의 집단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지만,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노인의 삶을 혐오하기는 쉽지 않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닫으며, 남은 삶을 어떻게 꾸리고 즐겁게, 보람차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구체적인 순간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젊은 세대로부터 배척받지 않는 노인들에게는 확연한 공통점이 있다.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척박하게 살아왔어도 느지막이라도 삶을 즐기려는 태도가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쩐지 이제는 그리 멀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노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힌트를 얻는 기분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나를 기쁘게 해 주면서 살아야 해요. 안 그러면 슬픈 일들이 널렸거든요.” -38쪽
어떤 사람은 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 그런 사람에게 이후로 펼쳐지는 날들은, 어린아이처럼 다시 세상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는 것도. -41쪽
그러니까 내가 노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마음에는, 분명 이러한 이유도 있던 것이다.
막연히 노년의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그 시간에 깃들어 있는 여전한 별빛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갈 소중한 친구들에게, 노년의 시간으로 씩씩하게 같이 가보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 -171쪽
그러니까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정말로 아니라고, 남들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라고 여기는 그 나이에도 누군가는 무언가를 시작해서 끝끝내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도 한다고, 설령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더라도 시도하고 그 과정 중에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도 충분히 즐겁다고 말하는 인생 선배들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옛날을 떠올리면요, 선생님. 오래전에 내 맘에 쿵 박힌 것들이 이렇게 돌멩이가 되어가지고 아직 여기 있구나 느껴지거든요. 그런 게 쓰잔하지요. -251쪽
뱀발. 스레드(threads)에 항상 '책 사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처음으로 그분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 사세요. 진짜 꼭 사세요. 후회 안 하실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