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 심채경, 과학 산문
대중과학서의 범람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체감하는 바로는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만약 내가 10대였을 때, 이렇게나 다양한 종류의 대중과학서가 서점에 깔렸다면 나는 분명히 물리학과를 지망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는 쉴 새 없이 변하기 마련이라 지금의 기준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냥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아쉽다. 왜 그때 저한테 물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라는 걸 안 가르쳐 주셨어요, 유병옥 선생님. Mr. Mullholand. 몰랐잖아요(공부 못 한 본인 생각은 안 하고 열렬하게 남 탓 중). 갑자기 자신이 물리학도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던 동문 * 타학교 학우들이 줄줄이 생각난다. 이*혜야. 김*진아. 너희가 그래서 그렇게 '우월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연민했던 거구나. 그래 좋겠다. 늬들은 그 재미있는 걸 일찌감치 아는 특혜를 누렸어서 좋겠다, 참 좋겠다.
물론 내가 깊이 공부했던 분야를 파고들었던 데 대해 일말의 후회는 없다. 아니, 조금은 있지만, 못 들은(못 본) 것으로 하자. 아무튼 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지리멸렬하게 후회함으로써 현재의 귀중한 모래알 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취미는 없는 인간이고 싶으므로 없다 치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든다. 어떤 기회를 잡고, 누리는 일이 주위 환경과 운에 의존하는 부분이 결코 작지 않다는 새삼스러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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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과학자'로 통칭할 수 있는 두 사람이지만 엄밀히 말해 물리학자와 천문학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같지 않다. 시점도 다를 것이다. 이것을 독자에게 어떤 위치를 택해 이들의 대화를 관전할지 선택권을 주는 동시에 '무엇을 볼지', '어디에서 볼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며 독자 자신이 스스로를 조금 더 깊이 파악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흥미를 돋우기 위해 어쩌면 간혹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슈가 등장할 수도 있다.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화자를 놓아두면 그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떤 순간에서는 신경전이 벌어지게 마련이고 때로는 점잖은 설전이, 어떤 때는 원색적인 비난과 약점 공략이 오가기도 하는데 나는 명백히 후자가 더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당연하게도 선비님 같은 두 분의 서신 교환이니만큼 극히 예의 바르며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맛이 있는 서간집이라면 역시 남궁인, 이슬아 작가의 서간집이 최고 아닐까 싶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나는 세상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한 사람의 됨됨이를 빚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관찰의 방식이 사고의 흐름에 깊이 관여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같은 학문을 한다면, 세계를 보는 눈도 같아질까? 그럴 리가.
물리학자라고 해서, 혹은 천문학자라고 해서 그들이 모두 같은 창을 통해 세상이라는 풍경을 보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대화가 흥미로워진다.
비과학인인 독자가 보기에는 그들은 같은 과학자인데, 서로는 사뭇 다른 존재로 상대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어나는 생경한 깨달음이 있다. 그건 꼭 표면을 역방향으로 쓸어 올린 생선 비늘처럼 꺼끌하게 느껴지는 깨우침이다. 뻔한 이야기가 필요해서 그런 이야기를 찾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안도와 위안이다. 내가 익히 알고 있고, 기억하는 그 세계는 이렇게 건재하구나, 하는 위로의 감각. 반면에 이런 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은 날카롭게 베이는 서늘한 기운이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따끔한 일침과 함께 아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낯선 세계의 틈은 감히 발 들일 엄두가 안 나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정한 대화에 함께 어울리는 동안 우리는 무심코 깨닫게 된다. 그 또한 지금껏 모르고 있던 이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