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누군가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어떤 때는 너무 바빠서 책 읽는 것이 뜸해져서 쓸 책 이야기가 없어서 슬쩍 넘어가는 날도 있고, 어쩌다 한 권을 읽었는데 어떻게 해도 도저히 무어라고 끼적여야 할지 할 말이 찾아지지 않아서 은근슬쩍 기억의 저편으로 넘겨버린 책(들)도 있다. 최근엔,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정말 온갖 책들을 잔뜩 읽었는데 기억력은 갈수록 나빠지고 리뷰는 하루에 한 편 이상은 도저히 안 적어지고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아. 그래도, 가능한 한 기억나는 대로 차곡차곡. 그게 지금 나의 한계이고 최선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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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 도서관이 아니었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책이다. 시리즈의 첫 권인 서현숙 선생님의 책과 나란히 신간도서 코너에 꽂혀 있었는데, 서현숙 선생님의 다른 책을 매우매우몹시많이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에 냉큼 그 책을 먼저 뽑았더랬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이 책을 쓰신 이원재 선생님은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제목이 너무나… 그렇다, 너무나 사람을 홀리는 제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기막힌 제목이 있지. 제목만으로 사람 마음을 이렇게 따끈따끈하게 데울 수가 있나. 누가 지은 제목일까. 저자일까 편집자일까. 진짜 대단하다고 제목에만 100번쯤 탄복을 한 다음에 빌려 왔다.
빈말로도 길다고 할 수 없는 책을 덮고 나니 왜 이렇게 코끝이 시큰시큰할까. 뭐 이런 훌륭한 선생님이 다 있지.
나는 스승님이 하늘 같으신 시대에 10대 시절을 보냈고 잠시 몇 년간 떠나 있긴 했어도 나름 하드보일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 때 남자 담임 선생님에게 손바닥 불꽃 따귀를 맞아보았고 (믿거나 말거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남학생이 별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원산폭격을 당하는 와중에 의자 다리로(애 하나 병신 만들고도 남을 만한 체력이 남아도는 체육 선생이었고 그게 얼마나 충격이었던지 나는 여전히 그 체육교사와 피해자 남학생의 이름과 얼굴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쓰러질 때까지 얻어맞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별밤 녹음테이프를 친구 전해주려고 학교에 가져갔다가 불시에 당한 소지품 검사 시간에 빼앗기고 대걸레자루로 어깨를 신나게 얻어맞았다(그러고 보니 지금도 문제가 있는 내 오른쪽 어깨가 바로 그 부분이라는 게 불현듯 떠오르는데 흐음). 그리고 나는 20년 뒤 내가 그토록 호되게 처맞은(험한 말 쓰는 거 안 좋아하지만 당시를 복기하자면 정말이지 처맞았다는 말 말고는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최모 교사님, 평소엔 그렇게 가냘픈 척을 하시더니 어쩜 그리 힘이 좋으셨습니까) 진실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아무튼, 대체로 선생님들과는 그런 이 갈리게 따땃한 추억담밖에 없는 나는 그냥… 이토록 학생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퍼주고 퍼주고 또 끝없이 퍼주는(마음을) 선생님들이 그걸로도 모자라 끝끝내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이런 모습을 보면 도리없이 조금 눈을 깜빡깜빡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이 시리즈 자체가 10대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구성된 기획물이다. 책날개에 나와 있는 제목들을 살펴보니 제목도 어찌나 예쁜지.
난처한 마음,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우리 반에도 있다, 친구를 기억하는 방식, 누군가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망하는 데도 한계는 있다, 나의 오타쿠 삶…
어른이 아이의 고달픈 삶을 응원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다. 시리즈 중 겨우 두 권만 읽어보고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권위해체주의적 접근을 좋아한다. 다만 거기서 경계해야 할 점은 나는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 그거에 비하면 너희가 지금 겪는 일 정도야 뭐. 이렇게 타깃 독자인 10대를 순식간에 깎아내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겠지. 그런 이유에서 그 어떤 원고보다도, 저자와 편집자가 서로를 예리하게 살펴줘야 할 테다. 이미 삭을 만큼 삭은 우리 어른 교정자들이 볼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가시가 남아있다면, 호기심과 어려운 마음에 책을 펼쳤던 어떤 독자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나서서 이 사회를 바꾸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 세상이란 건 결코 남들이 바꿔주지 않는다.
내가 잘 살고 싶으면 내가 사는 곳부터 스스로 바꿔 나가는 수밖에 없다. 세상이 냉정하다는 건 이런 뜻일 것이다. 나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 다정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히 전해진다. 수백만 년 동안 사랑과 세상을 지탱해 온 것은 위대한 건축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그 따뜻한 말 몇 마디다. - 17쪽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늘 마음에 가닿는 말은 긴 말이 아니라고 믿게 된다. 꼭 학생과 선생님 사이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 너를 믿는다는 말, 너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 말랑말랑하게 한다. 그 말랑말랑한 마음은 마주 선 이의 작은 숨결에도 살살 흔들린다. 내 흔들리는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아지면 다툼은 그걸로 끝이다.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