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외,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세상사에 초연하게 내 할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인간은 얼마나 될까. 요 며칠간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환멸스럽게 만들었던 소식 몇 가지가 깊은 곳에 눌러놓았다고 생각한 지독하게 부정적인 생각들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될 대로 되든지 말든지, 나는 그냥 내 삶을 살련다. 한때 이런 사고방식을 쿨하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아주아주 어려서 뭘 좀 많이 모르던 시절에. 그렇게 나나 알아서 야무지게 잘 살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모든 세대가 어떤 식으로든 지나간 시간과, 오지 않은 시간과 닿아 있다. 자신의 부모와 자녀를 통해서든, 사회에서 만난 선후배를 통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과 얽혀 있다. 나 혼자나 알아서 잘 살면 그만일 수가 없음을 시간일 갈수록 뼈저리게 깨닫는다. 사람을 통해서만 엮여 있을까. 행위의 인과를 통해서도 그러하다. 우리의 과거세대가 여전히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가 해온,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미래세대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무인도에 틀어박혀도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될 수 없는 세상이라서 그렇다. 그런 판국에 어떤 집단의 인간성 몰락 현장을 들여다보게 (시제는 모르겠다. 과거완료라면 좋겠지만 현재진행형일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할 듯…) 되니 초긍정주의자, 낙관주의자조차도 이따위 세상 확 그냥… 이런 소리가 목구멍에 걸리고야 만다.
너무 끔찍한데, 더 끔찍한 건 이 뉴스에 ‘상처 입은 사람이 많기를’ 바라게 되는 현실이다. 이 현실을 끔찍하게, 불쾌하게 여기고 정신적 상흔을 입는 쪽이 정상인 까닭이다. 정상, 비정상을 함부로 나눌 일이 아니지만 현재 회자되고 있는 그 비인간성의 증거물에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쪽이 명백히 정상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말해야 하는 일에 침묵하고 있으면 세상이 더 미쳐 돌아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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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어떤 인연일까. 책의 표지를 다시 쓰다듬어 본다. 최근 문학계 관련해서도 크게 말이 돌았던 이슈가 있었는데, 뭐 다 됐고, 좋은 문학이란 결국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네가 겪은 그 마음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고. 너의 마음을 여기에 뉘어놓아도 괜찮다고. 우리 함께 손잡자고.
어떤 낯선 생각은 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46쪽
라고 김초엽은 정 실장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말해야 한다. 혐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대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매 순간 너무 많은 것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상처 입히는 존재라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움직임마다 이 세계의 것들이 몸에 감겨든다고. 누구도 원해서 태어나지는 않지만, 태어난 이상 이미 이 세계와 연루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70쪽
그러니, 몸을 둥글게 말 일이다. 말의 모서리를 다듬을 일이다. 왜 그 간단한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누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터득한 진리를 목청이 터져라 가르쳐줘도, 아니 아예 두개골을 열고 뇌에다 전기신호로 쏴주어도 절대로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 공감과 연민의 의미망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은 연민일 수도 있었다. 미련한 반발심일 수도, 알량한 책임감일 수도 있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우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을 설명할 낱말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201쪽
그럼에도 ‘한 단어로 환원 불가능한 그 감정’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울분을 불러일으키고 함께 화내고 슬퍼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은 그저 낙심의 연대인 걸까. 모르겠고, 참담하다. 게다가 요즘 한바탕 시끄러운 SNS 아포리즘적 글쓰기 클래스 또한 시끌벅적한데… 이래저래 사유가 깊은 긴 글들에 향수가 짙어진다. 아, 들쭉날쭉한 마음 덕에 오늘도 어수선한 하루가 될 듯하다. 그건 또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