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서 작가의 최고 덕목은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_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소설

by 담화

소설가는 어떤 책을 읽으며 감동할지 궁금해해 본 적이 있을까. 화가가 누구의 그림을 보며 질투 섞인 감탄을 금치 못할지는 또 어떤가. 작곡가는, 또 연주가는?


자신만의 탄탄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글에 노골적인 찬사를 퍼붓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건 어딘가 작위적이다. 글쎄,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겠지만 나란 인간이 워낙 삐딱해서 그런가 그게 정말 가능하긴 한 거냐는 생각이 먼저 들고 만다. 인간이란 게… 그렇게 선하던가요? 아닐걸. 아니지 않아요?


그런 까닭에 나는 이런 담백한 산문에 훨씬 쉽게 끌린다. 그저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던 문장을, 문단을 옮겨 적은 뒤 그리 길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은 작가가 무엇 무엇을 놓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무엇과 타협하면서도 이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했으며, 기타 등등. 소위 제대로 쓴 서평은 이런 형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평론가의 글은 마땅히 그래야 하겠지만 소설가가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그렇게까지 엄중하게 평해야 할 필요는 없을 테다.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하게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고작 몇 줄의 덧붙임, 원래 적어두었던 감상문의 추신 같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넘실넘실 엿보이는 것은 어찌 된 일일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79340&start=pcsearch_auto


인용한 글들에 붙여 수줍게 내 경험을, 마음을 한 자락씩 덧댄 이 글들이, 김연수 작가가 사랑했던 작품에 보내는 존경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책의 말미에 가서 조금 바뀌었다. 아무튼 그 내용을 보면, 이 책 자체가 ‘아끼는 책들의 스크랩북’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격려’처럼 달리 보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200쪽


독자에게 두루 보내는 응원처럼 보이는 이 문장을 왜 ‘쓰고 싶은 사람들’로 멋대로 한정했느냐면, 그것은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절로 그리 되었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쓰지 못한다.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 그 비밀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자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215쪽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칭찬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들게 된다. 여전히 무언가 쓰기 위해서 책상에 앉으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기대된다. -218쪽
그러니까 나는 매일 소설을 쓰고 싶었다. 매일 소설을 써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소설이야 대단할지 안 대단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만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219쪽


여기에 실린 이 책들은 작가를 좌절하게 했던 책들일 수도 있고 크게 동기를 부여했던 책들일 수도 있다. 혹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하고 동경 섞인 질시에 스스로를 빠트렸을지도 모르지.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결의 감정이 있구나. 내가 모르는 삶이 이렇게나 많구나. 그런 것들을 새삼 체감했을지도 모르고. 글쎄 이것은 순전히 나의 짐작이고 망상이어서 실제 김연수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언급하고 자신의 말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추측도 역시 독자의 즐거움 중 하나겠지.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를 선물 뜯듯 조심조심 구석구석 열어보는 수고는 정말로 의미가 있다. 내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열어본 순간,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의 내면의 또 다른 풍경을 들여다보게 되곤 하니까.


이야기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이야기에서 나의 경험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어진다. 겉보기에 다른 경험의 포장을 모두 뜯어내고 나면, 어딘가 보편적인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그런 공통의 체험을 발견할 때 독자는 도리없이 감동할 수밖에 없게 되지 않나.


살다 보면 우리도 가끔 쓰카다 씨와 같은 처지가 됩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는 그게 너 혼자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음성 자체랍니다. -37쪽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