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반찬으로 처음 만났던

연근조림 대신 연근강정

by 담화

입 짧은 엄마란 가끔 아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해지는지.

엄마의 어릴 때에 비해서는 가리는 음식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뭐 그리 가리는 게 많으냐는 타박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싶어. 그 영향으로 너희까지 편식이 심해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학교에서 급식을 먹어서 그런가,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너희는 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경험했고 덕분에 너희가 아는 미각의 세계는 제법 넓고 깊은 것 같아.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지.

그으러니까… 엄마가 딱히 여기서 외할머니를 탓하려는 건 절대 아닌데 어쩌면 조금 그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거 미리 못 땅땅 박아두고 계속 말할게. 할머니도 지금은 안 그러시지만, 엄마가 어렸을 땐 할머니가 진짜 못 드시는 음식이 많았어. 식자재 자체를 아예 집에 안 들이시는 거지.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게 몇 개 있는데 지금은 그게 할머니의 페이버릿 음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냥 헛웃음이 나네…?


요즘이야 학교마다 급식실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옛날(하 진짜 옛날 소리 쓰기 싫은데, 근데 옛날을 옛날이라고 안 쓰면 뭐라고 쓴담)엔 다들 도시락을 싸서 다녔단 말이야. 친한 친구들끼리 책상 붙여놓고 앉아서 반찬 나눠먹는 게 일상이었어. 그러다 보니 생전 구경도 못 해본 음식이 세상에 그렇게 많다는 걸, 엄마는 그때 처음 알았지.

그중에서도 엄마의 기억에 제일 강렬하게 남은 건 연근조림이었어. 이게 대체 뭘까. 희한하게 생겼어. 근데 왠진 몰라도 맛있을 것 같아. 엄마의 얼굴에 그런 속내가 다 드러나 보였는지 연근조림을 싸 온 친구가 너그럽게 권하는 거야. 먹어보라고, 우리 엄마 이거 정말 잘한다고. 그땐 요리를 잘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자부심이 정말 대단했지. 왜 아니었겠어?

그렇게 약간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제일 조그만 조각을 집어서 먹어봤어. 와, 그리고 엄마는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맛있는 음식이 많구나. 살캉한데 쫀득하고 짭짤한데 달콤하고. 그렇게 복잡 오묘한 맛을 내는 반찬이라니.

그 뒤로 엄마는 할머니에게 나도 연근조림 해 달라고 몇 번을 졸랐고 어떻게 해도 할머니가 그 친구 어머니가 해주시는 연근조림의 맛을 내지는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꽤 좌절했지. 그땐 지금처럼 포털 사이트를 뒤져서 뫄뫄 반찬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볼 수 없는 때였고 서점 가면 요리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투어 낸 요리책이 포진하고 있는 때도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반찬가게도 없는 시절이었다고.

그렇게… 전업주부에게는 사뭇 엄혹한 그런 시절이 있었어. 그 시절에 철딱서니 없는 10대였던 걸 지금은 감사하게 될 줄이야. 아무튼 그렇게 오랫동안 연근조림은 엄마에게 그립지만 다시 못 먹어볼 맛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잊혔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트에서 카트를 끌면서 장을 보다가 불현듯 발견한 흙투성이 연근을 발견한 순간 그 옛날의 기억이 와르르 밀려오는 거야. 이건 뭐, 프루스트의 마들렌도 아니고 뭐냐고. 우습고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그걸 한 묶음 사 와서 어떻게 해 먹어야 그 맛이 날까 제법 오래 고민했지. 그래서 그 방법이 뭐냐고? 궁금해? 그런데 너희는 연근을 그렇게 졸이는 건 별로 안 좋아하더라만. 너희가 좋아하는 건 훨씬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강정 스타일이었지. 그래도 궁금할까 봐 그건 다음에 또 설명해 줄게. 오늘은 귀찮고 맛있는 버전으로.


아, 제일 중요한 건 이건 무조건 그 끼니에 먹을 분량만 해야 한다는 거. 남기면 무조건 맛없어지니까.

두께는 가능한 한 얄팍하게 썰어보자. 딱딱하니까 저미듯 얇게 써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이건 다음 기회에 따로 또 할 말이긴 한데, 식칼은 아주 좋은 걸 써야 해). 그렇게 썰어둔 연근을 이제는 팬에 두른 기름을 끓여서 빠르게 튀겨내면 돼. 얇게 썰었다면 진짜 순식간에 익으니까 옆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관찰할 것.

그렇게 다 튀겨낸 다음엔, 남은 기름을 깨끗이 닦아내고 여기에 간장 : 물 : 조청 비율을 1: 0.5:0.8 정도로 맞춰서 붓고 살짝, 아주 살짝만 끓이자. 아마 순식간에 기포가 올라올 텐데 그때 튀겨서 기름을 뺀 연근을 와르르 붓고 얼른 섞어줘야 해. 그리고 양념의 수분기가 남지 않게 빠르게 버무린 다음에 참기름 아주 조금, 통깨 조금. 그렇게 완성되었으면 맛있게 먹어주는 걸로 끝.


사실 되게 번거로워 보이는데 연근을 일정하게 잘 썰어주는 것만 하면 그렇게 귀찮은 건 없어. 일식 느낌으로 미소 된장국 한 그릇과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고로케 하나 정도 곁들여 주면 진짜 맛있지. 말하다 보니 침 넘어가네. 우리 오늘 점심 그렇게 해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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