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에서 갓 꺼내는 감자 그라탱
벌써 2월이 되었어. 겨울방학도 이제는 반환점을 돌았다고 봐도 되겠지. 너희와 같이 꼬박꼬박 채워야 했던 하루 세끼, 차리는 횟수로 보자면 요일에 따라서는 하루에 네 끼에서 다섯 끼에 육박하기도 했던 식탁 차리기 미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이렇게 지나고 보니 그럭저럭 할만했다 싶기도 하고. 뭐든 지나가면 시작하던 당시만큼 힘들지는 않아서일까. 이게 바로 과거 미화의 현장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있지, 텍스트로 쓰인 부엌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는 거 혹시 아니, 얘들아?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요리책은 아직은 대부분이 조리법에 치중되어 있지만, 외국의 요리책에서는 레시피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저자의 부엌살림 이야기거든.
예를 들자면 어쩌다 요리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 인생 최초로 해본 요리는 무엇이었고 평생 잊지 못할 요리는 무엇인지. 또 가장 편애하는 식재료는 무엇이고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됐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드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등.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 소재 중의 하나가 먹는 것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하나도 모르는 음식 이야기뿐인데도 맛있어 보이는 요리 한 접시를 앞에 두고 풀어놓는 이야기에는 절로 시선이 가는 걸 보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온갖 해외의 진귀한(?) 식재료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20년 전만 해도 꽤 구하기 힘든 게 제법 있었어. 진짜야. 온라인 쇼핑몰이 없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다양하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어떤 음식들은 어떻게 해 먹는 건가 방법을 연구하기보다는 와, 이런 것도 있구나, 맛있겠네, 하고 그냥 구경하고 넘어가는 용도에 가까웠지.
근데 그 시절에 꽤 유명한 요리 커뮤니티가 있었거든. 물론 그때도 요리 블로그들이 없진 않았지만 커뮤니티가 조금 더 대세였더랬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런저런 대체품을 이용(?)해서 비슷한 맛을 내는 법을 거기서 상당히 많이 배웠어. 요리 고수들이 아낌없이 본인의 노하우를 나눠주시는 곳이었거든.
그곳을 운영하시던 분의 책에서 스치듯 지나가며 보았다가, 다른 데서 다시 배운 이후에 엄마의 주종목이(?) 되어버린 사이드 디쉬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감자 그라탱이야. 그것도 뭐랄까, 처음에는 정석대로 크림이 잘박 잘박하고 감자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스타일의 그라탱이었다가 엄마의 입맛 따라 지금은 이것이 감자수프인지 그라탱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희한한 음식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원래는 감자를 적당한 두께(1센티는 되지 않게)로 썰어서 생크림과 치즈를 덮어 오븐에서 구워내는 조리법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미 수많은 변화를 거친 터라 그냥 우리 집에서 해 먹는 스타일로 가르쳐 줄게. 어차피 너희는 엄마가 해주던 방식에 입맛이 길들여지기도 했으니까, 그렇지?
일단 감자 두 개를 삶자. 여기서 두 개라 함은 주먹을 쥐었을 때의 크기 정도를 이야기하는 거니까, 그거보다 작으면 뭐 대충 맞춰 봐. 껍질째 삶는 것이 맛있는데, 그건 껍질이 과도한 수분 침투를 막아주기 때문이래(그렇게 배웠어, 엄마도). 근데 뜨거운 감자 껍질 벗길 자신 없으면, 껍질 벗겨서 삶아도 괜찮아. 이왕 껍질도 벗긴 김에 적당히 토막내서 삶으면 조리 시간이 단축된다는 이점도 누리기로 하고. 소금 아주 조금 넣고 팔팔 끓는 물에 푹 삶는 거지.
감자를 삶는 동안엔 양파를 적당히 채 썰어서 식용유 조금 두르고 캐러멜라이즈를 해주면 돼. 짙은 갈색이 나도록 약불에서 달달 볶는 거, 알지? 그렇게 지루하고 진득하게 볶아줘서 단맛을 최대한 많이 끌어내자. 다 됐으면 다시 감자로 돌아가 볼까.
다 삶아졌으면, 체에 건져서 물기를 빼준 뒤에 뜨거운 기가 가시기 전에 감자 으깨는 도구로 마구 으깨줘야 돼. 그래야 부드럽고 균일하게 잘 으깨지거든. 여기서 팁 하나. 소위 포테이토 매셔라고 부르는 게 생김새가 각각인데, 이케아에서 파는 오목한 팬처럼 생긴 매셔 있지. 여기에 으깨면 감자 식감이 정말 크리미 해져. 이게 원탑이야. 입에서 그냥 사르르 녹아. 근데 얘의 단점은 생김새를 보면 알겠지만, 관리가 상당히 귀찮아. 부엌에서 자리도 많이 차지해. 그 밖의 다른 매셔는 그만큼 커다랗진 않지만, 식감 면에서는 조금 부실한 느낌이 있어. 그러니까 선택은 너희의 몫.
엄마는 여기에 그뤼에르 치즈와 모차렐라 치즈를 5:5의 비율로 섞어 넣거든. 그뤼에르 치즈가 상당히 비싸서 눈물을 조금 닦아야 할 거야. 도저히 그뤼에르까지는 안 되겠다 싶으면 모차렐라만 넣어도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근데, 체다는 넣지 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도 나쁘지 않지만, 파르미지아노는 경성치즈라 준비하는데 손이 더 많이 가니까, 그것도 각자의 선택.
아, 그뤼에르도 경성에 들어가긴 하지만 반경성이야. 실온에 두면 보잘것없는 손힘으로도 바스러지거든. 그에 비해 파르미지아노는 초경성… 반드시 치즈 그레이터가 있어야 해. 오케이, 잡담은 여기까지.
양파는 감자의 1/3, 치즈는 기호에 따라 가감이지만 1/2는 넘지 않는 게 좋겠지. 그리고 여기가 정말 각자의 기호에 따라 달라지는 건데 엄마는 수프 질감을 좋아해서 감자와 양파, 치즈가 푹 잠겨버릴 정도로 크림을 찰랑찰랑하게 붓지(물론 크림에는 전체적으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둔 상태이고!). 추천하는 허브는 타임, 파슬리 정도. 이건 어디까지나 옵션이야. 그리고 이걸, 오븐이라면 180도에서 20분 정도(지속적인 관찰 필요), 에어프라이어라면 150도에서 10분 정도 돌려줘. 이것도 모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드시 옆에서 수시로 체크해줘야 해. 피자 위에 올린 치즈처럼 황갈색이 돌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완성 시점인 거고.
서두르지 말자. 크림을 많이 넣어서 말도 못 하게 뜨겁거든. 잘못하면 입술도, 혀도 화상을 입어서 지독하게 고생하게 되니까 천천히, 알겠지? 가끔은 밥 대신 그냥 푹푹 퍼먹고 싶어지는 감자 그라탱 레시피는 이것으로 끝.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려서 길이 미끄럽네. 다들 조심하고 다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