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 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최근 유난히 제인 오스틴 관련 도서가 많이 나오고 새 번역본이 연이어 출간되는 건 작년 12월 16일이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각종 에세이와 아예 작심하고 제인 오스틴을 키워드로 넣은 기획 도서들도 많다. 그중의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012403
번역가 김선형 선생님이 새롭게 번역하신 제인 오스틴 전집이 매해 12월 16일을 기해 두 권씩 새로 번역될 예정인데(그중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이 작년 12월에 출간되었다), 그 두 권과 더불어 일종의 번역기라고 불러도 좋을 에세이집이 함께 출간된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작업일기는 메일링 서비스로 일부 선공개된 바 있다.
뭣도 모르던 병아리 시절 왜 이미 번역이 존재하는 작품을 번역하고 또 번역하느냐는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았던 적이 있다. 뭐, 누구나 떠올릴 법한 당연한 답을 들었지만 그런 의문을 가졌던 어린 시절엔 별로 납득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지금은 안다. 말할 수 있다. 언어는 물처럼 흐르고 색이 달라지고 온도가 달라져서 적절하게 말의 옷을 갈아입혀줄 필요가 있다고.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연하게 읽어온 책들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좋아하는 책의 제목을 말하는 것만으로 목소리가 한 톤은 높아진다.
내가 세계 각국의 열정적인 독서가들을 다 만나본 건 아니지만(가능할 리가), 정말 흥미진진하게도, 제인 오스틴의 이름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국적과 나이에 관계없이 그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의 눈은 정말로 별처럼 반짝이곤 했다. 너도? 응, 너도?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웃음소리.
제인 오스틴의 이름 아래 순식간에 맺어졌던 은밀한 우정은 얼마나 많았는지. 제인은 전 세계에, 온 세대에 걸쳐 존재하는 우정의 매개자이며 한층 친밀해지는 대화의 중개자였다. 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사실을 제인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에 으레 따라붙는 상찬과 수사에 익숙할 정도로 제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랑말랑한 얼굴을 가졌을 소녀 제인을, 가장 열정적인 지원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평온치 못한 삶에 시달렸을 제인을 만나기를 당연히 반가워할 테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내게도 역시 최애작은 「오만과 편견」이어서, 김선형 선생님의 글맛과 말맛이 잔뜩 묻어났을 이 번역본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순위를 다투는 책들 덕분에 아직 펼쳐보지 못했지만, 「디어 제인 오스틴」에 실린 발췌 수록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차오른다.
한편에서 허황된 낭만주의자처럼 깎아내리곤 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 또한 곳곳에 풍성하다.
그런데 제인 오스틴의 경우에는, 표면의 플롯 차원에서도, 심층 심리의 차원에서도, 영화화되었을 때 소실되지 않고 여전히 작동하는 강력하게 극적인 속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103쪽
이런 질문은 독자의 주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그러게, 하는 맞장구가 절로 흘러나오는 대목이다. 또한,
저는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의 화자를 갓 스물이 된 제인 오스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설 속 또 하나의 등장인물로 상정하고 입말에 가깝게 번역했는데요. 이 소설들의 화자가 편지글에 등장하는 제인 오스틴 본인과 매우 비슷할 뿐 아니라, 당대의 여러 텍스트를 비교해 볼 때 이 서술이 글보다는 말에 더 가깝다고 여겼고, 특히… -129쪽
이처럼 화자의 어조를 구어체에 가깝게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쓴 글, 선택한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서 모두 변명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또렷한 이유가 있는 선택과 설명은 신뢰를 부른다. 더구나 작품에 대해 이토록 애정 어린 깊은 이해를 동반한 글을 쓸 수 있는 번역가의 새 번역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을 테다.
문학은 고유한 작가와 고유한 독자가 만나 부딪히고 변화해서 세상에 다시없을 단 하나의 의미에 다다르는 장입니다. 오직 성실히 사랑하겠다 마음먹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81쪽
여러 번 한 말이지만, 원래 사랑 이야기는 재미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꼭, 남주와 여주가 존재해야만 하는 법은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