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 국경 없는 미술실
다정한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오늘 며칠 늦게 리딩 케미스트리 최신화를 듣고 있는데 성해나 작가가 이다혜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다정을 행하고(실천하고) 계세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마음이 살짝 따끔하게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의 다정을 알아보고 감동하는 건 그래도 제법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정의 (실행) 방법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아마 없는 것 같다.
다정의 범주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개념을 내 나름으로 정의하기에 앞서 사전의 뜻풀이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이번에도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전 뜻풀이에 조금 실망했다.
사전은 다정하다를, 정이 많다. 또는 정분이 두텁다. 이렇게만 풀이하고 있다.
언어는 항상 살아있고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뜻풀이도 사람들의 인식과 어휘감수성을 반영해서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하는 게 맞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데는 또 그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음을 어딘가에서 주워 들었기에 함부로 말을 얹지는 못하겠다,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이… 아무튼 조금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무튼 그런 까닭에 다정을 조금 더 속속들이 파고들자면, 다정은 친절보다 품이 좁다. 다정은 많아야 한두 사람에게 가 닿을 수 있다. 두루 친절할 수는 있지만, 두루 다정할 수는 없다. 다정함은 상대를 가늠하고 베풀어지는 감정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게 다정한 사람이 저 사람에게는 다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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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신 신경아 선생님은 저자이자 주인공이다. 선생님은 책의 주인공은 본인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시겠지만, 내가 보기엔 역시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이주 아동, 다문화 가정 아동들에게 더 따뜻한 관심의 볕을 끌어오고자 애쓰는 선생님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신경아 선생님이 발령받은 곳은 선생님들이 대체로 기피하며,
“샘~ 괜찮아요. 내가 안산에서 근무해 봤는데 안산, 생각보다 정말 커요. 위험한 지역은 극히 일부예요. 딱 거기만 피하면 다른 데는 진짜 근무하기 괜찮아요. 지하철역도 많아서 오히려 출퇴근은 편하다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24쪽
이렇게 말하는 바로 그 지역에 있는 학교였다.
선생님들이 말했던 그곳이었다. “안산에서 딱 거기만 피하면 된다”던 그 골목. -25쪽
그러니 선생님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전근 점수가 높은 순으로 순위 배정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운이 나빠도 최소 2 지망으로 발령 날 거라고 확신했을 정도로 선생님의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상황이 얼마나 날벼락같았겠는가. 휴직을 할까, 병가를 낼까 고민했다고 고백하는 선생님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저출산 이슈까지 겹쳐서 학생 수는 줄어들고, 배정 교사수도 줄어드는 가운데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학생들이 태반이고, 심지어 그 학생들의 출신국가도 제각각이니 학교가 얼마나 아수라장이었을지 능히 상상할 수 있다.
우리 학교가 얼마나 비선호인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은 기간제교사를 뽑을 때다. 채용 공고를 올려도 지원자가 별로 없고, 어렵게 계약서를 쓴 분들도 며칠 뒤 조용히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39쪽
이 책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다가, 척박한 땅을 갈아서 기어이 과실을 거두는 농부를 칭송하는 비유를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힘겹기야 하겠지만 땅을 가는 농부는 적어도 어떤 비전을 갖고, 명확한 청사진을 품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교사는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뭔가를 기대하고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는다(는 건 이상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동요에도 등장하는 등대지기와 더 닮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내가 빛을 비춰주고 있다. 네가 길을 잃지 않도록. 네가 외롭고 힘겨울 때 누군가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서 매일을 투쟁하듯 버텨내는 아이들에게, 있을 곳을 내어주려 했던 선생님. 그를 달리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선생님에게 나라를 대표할 만한 스승이라는 상을 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주겠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