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진, 사랑을 연습한 시간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딸이라면 고민할 것이다. 엄마와 나를 이을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게 있을까. 예를 들면, 상처의 대물림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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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내가 나누었던 공통의 시간, 닮음, 애증, 기타 등등등.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어쩐지 주제와 변주곡 같다. 딸마다 다른 곡을 연주하는 것 같아도, 흐르는 선율 아래의 어딘가에서 유사한 종류의 통주저음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가 딸들의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위치가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엇비슷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바라건대 장조와 단조의 화음이 모두 풍성하게 살아있는 선율을 남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엄마가 딸에게 남겨주고 싶어 하는 정신적인 유산이, 원형 그대로 온전히 전해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니 세상의 많은 딸과 엄마가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남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짝 놓아본다. 모두의 이야기가 레퍼런스이고, 유효한 위로이고 응원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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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 작가의 이름을 어디서 처음 들었던가를 되짚어 보면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책이 내가 신유진 작가를 처음 만난 장소였다. 책은 여러 사람과 조우하는 공간이며 장소이다.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나만의 장소로 두고 있고 싶은 책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이곳저곳에서 말한다. 그런 공간을 지어내는 작가의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좋은 장소를 잃어버리는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내가 될 테니까.
이 책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근원, 엄마와 내가 여성으로서 통과한 삶, 그리고 타자였다.
내게 가장 가깝고 그래서 늘 멀어지는 엄마라는 타자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확인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함께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내 존재의 빈칸을 타인의 이야기, 그 안에 담긴 믿음으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가 타자의 그리움에 대한 응답이라면, 나는 타자의 믿음으로 온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누군가의 그리움과 슬픔을 기쁨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내 삶도, 내 글도 존재해야 할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13쪽
이것이 이 책을 써 내려간 작가의 각오이자 출사표이다.
엄마는 그곳에서 주로 밥과 싸웠다. 밥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밥 아닌 무언가를 하기 위해.
(…)
“여자들은 그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안에 중요한 뭔가를 만들어. 한 번은 반드시 그걸 바깥으로 꺼내야 하고.” -23쪽
이 페이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깨달았다. 내게는 어디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밥 아닌 무언가를 하기 위해 분투하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결국은 엄마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사실도.
엄마가 이 글을 읽을까. 읽지 않으면 좋겠다. 언제나 들키는 건 무섭다. 하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아래에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 두 마음은 언제나 함께 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동시에 알아줬으면 하는 나의 진짜 마음이 있다. 나도 형언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아마도 엄마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다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만 준다. 그것이 엄마의 언어이고, 자존심이다. -173쪽
엄마가 있고, 엄마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단언할 수 있다. 엄마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고, 아무리 친밀한 모녀 관계라 해도 신뢰를 장담할 수 있는 관계 또한 귀하다고.
엄마와 나와 엄마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결국 사랑의 언어를 복기하는 일이다. 사랑의 정수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를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아름다운 방법론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