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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Dec 12. 2023

번역이란 무엇일까요

줌파 라히리,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그리고 언어란 또 무엇인가요-

라고 쓰고 보니 할 말이 없다. 


‘무엇what’ 자리에는 그야말로 ‘무엇whatever’이나 올 수 있다. 언어는 세계다. 도구다. 철학이다. 관점이다. 인간이다. 소통 수단이며 이야기이다. 입맛대로 넣으세요, 라고 할까(많은 사람의 답변과 사유를 들어보고 싶어 지긴 한다. 이것도 병이군).      

적어도 언어란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대상임은 분명하다. 경계가 없이 무한히 펼쳐진 황야. 그곳을 개간할 의욕을 낼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존재한다. 운이 좋은 것일까, 그런 개척자 정신을 가진 작가들을 우리는 많이 만날 수 있다. 책장담화를 쓰면서 이런 작가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오늘 이야기할 작가는 그런 언어 재능을 연마하는 데서 각별한 즐거움을 느끼는 분들 중 한 사람으로, 이미 팬층이 두텁기도 한 줌파 라히리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 저자 줌파 라히리 | 출판 마음산책 | 발매 2023.11.20.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작가로 데뷔한 이래 대단한 소설들을 써냈지만, 줌파 라히리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낀 것은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작품들을 모두 새로 배운 그 나라 언어로 써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글을 쓰는 것은 아무리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어떤 종류의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것을 내 안에서 뽑아내야 하는 까닭이다. 단어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상이 넘쳐흐르도록 많다고 해서 그 고통이 경감되는 일 따위는 결코 없다. 


모어로 쓴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내게 익숙지 않은 외국어가 도구로 주어질 때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안 그래도 부족한 표현력이, 어휘력이 바닥을 긁는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 희생당하는 것은 한 줌씩의 머리카락이기 마련이고(애잔).      


나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더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언어를 더 잘하게 될까, 어떻게 해야 그것을 내 언어로 만들 수 있을까. -p.28     


그의 특별한 천착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부터 뿌리를 뻗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친숙한 영어와, 영어를 낯설게 느낄 어머니에 대한 배려와 낯섦 사이에서 갈등하는 어린 줌파 라히리의 모습을 보면 그가 언어에 대해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벼리고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세상 경험이 현저히 적은 나이에 겪는 진지한 갈등이란, 이질적인 환경이란, 이렇게나 한 사람의 삶을 깊이 쥐고 흔든다. 무서울 정도다.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살면서 나는 더 주의 깊고 적극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독자, 작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새로 마주치고 배우고 공책에 기록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작은 문을 이룬다. 이때 내 이탈리아어 사전은 문간이 되어준다. 나는 내가 읽는 책, 내가 쓰는 문장, 내가 완성하는 텍스트, 아울러 이탈리아인 친구와 나누는 대화 하나, 내가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 하나까지 전부 문으로 여긴다. -p.35     


언어를 문으로 여긴다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언제든 내게로 와서 열리는 문. 현실에서 구현 가능한 ‘어디로든 문’은 외국어가 아닐까.      


새로운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실명과 비슷하다는 점을 나는 알고 있었다. 글쓰기란 다름 아닌 세계를 인식하고 관찰하고 시각화하는 것이니까. 이제 나도 이탈리아어로 앞을 볼 수는 있지만, 시야의 일부만 보일 뿐이다. 여전히 반쯤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있다. 나도 로마노처럼 불확실한 손으로 글을 쓴다. (...) 명확하고 완전하게 볼 수 없기에 다른 식으로 세계를 조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인식시키고 납득시킨다. -p.37     


이걸 쓰느라고 책을 다시 넘겨보고 있는데 이 문장 밑에 연필로 줄이 두껍게 여러 번 그어져 있는 데다가 별도 세 개나 붙여 두었더라. 그러나 굳이 외국어가 아니어도, 모어로도 글을 쓰는 일이 낯선 사람은 마치 불의의 사고로 암흑의 세계에 빠진 사람과 같은 기분으로 사방을 더듬어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익혀 나가는 기분일 것이라 짐작한다. 글로 인식하고, 축조해야 하는 세계란 그 정도로 실물 세계와는 다르다. 기막힌 비유는 진실을 보는 새로운 틀을 제공한다. 그 역시도 언젠가는 클리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낯선 언어로 글을 쓰는 일이 세상을 완전히 낯선 감각으로 더듬어 나가며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이 표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스어로 기원법을 나타내는 말은 ‘기도하다, 간청하다, 갈망하다’를 뜻하는 동사 ‘euchsthai’에서 유래한다. 만약 문학이 곧 독자적인 언어라면 –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 이 언어의 주된 서법은 기원법일 것이다. 기원법이 그렇듯 문학은 지금 여기의 너머를 비추고, 때로는 이렇게가 아니라 다르게 되었더라면 하는 맹렬한 소원을 토로하니까. -p.107     


나는 유의어 사전을 자주 탐독하는데, 아마 그 안에 그야말로 생성적 텍스트가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유의어 사전은 치환의 행위를 강조하고, 단일한 단어가 아니라 단어들을, ‘한 가지 언어lingua’가 아니라 ‘언어들lingue’을 고집한다. -p.187     


책이 정말 좋은데, 곱씹어볼 내용이 너무 많고 내가 꺼내어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하찮기 그지없어서 그저 인용문에 단편적인 감상 몇 줄 붙이는 게 전부인 것이 아쉽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면 훌륭한 리뷰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언어 사이를 건너 다니는 일, 내가 속해있는 언어의 좌표에서 빠져나와 잠시 다른 포지션에서 세상을 조감하는 일, 어떤 특정한 언어를 구사하거나 그 언어로 사고할 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기묘하게 조금씩 변하는 일 같은 것에 관심이 있거나, 번역가에게 한 번쯤 태클을 걸어보고 싶었다든가 혹은 번역일에 흥미가 있었다면 한 번쯤 읽어 보시기를. 무엇보다 저자가 그 줌파 라히리가 아닌가! 


-2023. 12. 12 당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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