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삼촌의 최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되어버렸다.
2016년 3월의 어느 봄날, 삼촌의 부고를 들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부고를 전해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삼촌과의 "좋은" 추억이 많지는 않았던 탓일까,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다. 일기장에 몇 줄 끼적인 일이 전부였다. 말하자면 뭇 사람들 하듯 공중에 술 한 잔 흩뿌리는 대신, 나는 방 한 귀퉁이에서 글이나 훑어내며 무덤덤히 애도했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까닭이 무엇인가? 나도 이제 제법 탄생으로부터 멀어졌다. 그게 전부다. 꿈도 꾸지 않고 잠을 푹 자고 일어난 날, 내시경 수면 마취로 기절하고 일어난 날 '죽음이란 이런 느낌일까' 중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영영 잃는 일에 대해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희끄무레한 감각쯤은 알아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기한다. 아래는 2016년 3월의 어느 날 써내려갔던 어설픈 애도글이다. 시간의 무게에 주저앉은 문장들의 모서리를 약간씩 다듬으면서, 얼기설기 짜맞춰 주머니 속에 구겨넣고 넘어갔던 당시의 애도를 아주 조금은 더 완성하고자 한다.
장송[葬送]
2016. 3. XX.
삼촌이 죽었다. 전화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이 새벽에 하늘나라 갔단다." 침대에 누워 잠이 덜 가신 눈을 끔뻑거리며 생각했다. 종교가 없던 삼촌도 '하늘나라'에 가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침묵했다. 내가 삼촌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여러 형제자매 중 막내라는 것, 유난히 힘도 체격도 좋았다는 것, 자주 사고를 치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술이 삼촌을 마셔버렸다.
언뜻 듣기로는,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몇 년 후 할머니도 병환으로 돌아가시면서 그때부터 삼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원체 자주 마시던 술이 급격하게 늘어갔다. 사고를 치고 변변찮은 직업이 없어도 보살펴주던 보호자도 없어졌다. 형제들은 가슴을 쳤지만, 개입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로 부양할 가족도 없었으니 삼촌은 서울 경기 어디쯤에서 일을 찾아 떠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나는 잘 모른다. 학교 때문에 서울에서 따로 살았고, 그동안 다른 가족들은 삼촌 사는 곳을 찾아 방문하기도 하고 했던 것 같지만. 어머니는 삼촌 사는 곳에 보낸다고 반찬을 만들기도 했고, 도대체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근심도 했고, 삼촌과 통화하고 나면 늘 깊은 한숨과 함께 슬픈 표정에 잠겨 있었다.
명절에도 삼촌은 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친척끼리 모이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다. 삼촌과는 연락조차 잘 되지 않았다. 명절 인사를 위해 전화해도 낮에는 잘 받지 않았다. 저녁 즈음은 되어야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나도 서울에 있고 삼촌도 주로 경기권에 있는 모양이었으니 거리로는 그렇게 멀다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도 내 삶을 살기에 정신이 없는데 어린 시절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삼촌에게 굳이 연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삼촌을 마지막으로 본 지가 5~6년은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내가 삼촌의 인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삼촌의 최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되어버렸다. 형제들은 삼촌의 방황과 자기 파괴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어 알코올 병동에 입원시켰다. 병동에 입원시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데 들어간지 얼마 안 돼 삼촌은 갑자기 쓰러졌고(CCTV 증거가 있다고 한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영영 세상을 등졌다. 오늘이 아마도 쓰러진지 9일인가 10일째 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떠난 이에게 시간이라는 게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삼촌이 참 정도 많고 조카들도 예뻐하고 그런 사람이었다는 어른들의 말을 자주 들었다. 굳이 거기 반박할 이유는 없다. 짚이는 점들이 있다. 확실히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내가 삼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유독 막내삼촌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했다. 그 두려움 이전의 기억이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최초의 감정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감정의 골에 쐐기를 박은 한 가지 일은 기억난다. 초등학생 때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외출하셨을 때 삼촌이 우리 집에서 아는 분과 둘이 술을 마신 적 있었는데, 그때 형과 나는 옆에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앉아 온갖 소리들을 견뎌내야 했다. 형은 계속해서 술을 따랐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의 삼촌은 무슨 말을 하다 내게 윽박지르기도 했고 때론 명령조로, 훈계조로 말하기도 했다. 그 위압적인 상황이, 삼촌의 위협적인 말과 목소리가, 술 마신 이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무서워서 나는 울었다. 그래도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아있어야 했다. 부모님이 밤늦게 귀가하고 나서야 '축제'는 끝났다.
...
한두 달 전부터 삼촌은 갑작스레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절반 정도는 제정신일 때였고 나머지 절반은 술에 취해 난폭해진 상태였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했던 이야기를, 제정신일 때는 기억하지 못했다. 삼촌이 나에게만 이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술 먹고 자꾸만 전화를 돌리면서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나와의 통화에서의 경우 '이상한' 말이란 대부분 이런 말들이었다. 미안하다,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은 다 나의 탓이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렇다, 왜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다녀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냐 이 새끼야, 삼촌 3월 초에 고향 내려갈 건데 너도 내려와라, 같이 밥 먹어야 하지 않겠냐, 애인도 데리고 와라, 왜 안 돼 이 새끼야, 등등.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마음을 이상하게 만드는 사실들이 있다.
첫째, 한두 달 전부터 갑자기 주변에 전화를 돌리는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는 것.
둘째, 삼촌이 실제로 내게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운동화들을 몇 켤레 보냈다는 것.
셋째, 위에서의 생활(이라고 할 것도 없던 모양인데)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것.
그리고 삼촌은 고향에서 쓰러졌다. 최후를 신비화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삼촌이 마치 죽음을 준비하고 죽을 곳을 찾아 귀향한 것만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스산해진다.
어머니는 삼촌을 병원에 입원시킨 후 휴대폰을 압수해 집으로 가져왔었다. 마침 나도 집에 내려갈 일이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을 살펴보게 되었다. 도대체 삼촌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당시엔 못된 궁금증이었다. 휴대폰 바탕화면에는 내가 아는 삼촌의 풍채 좋은 사진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예전엔 저렇게 몸도 좋고 살집도 있었는데··· 요번에 보니까 술만 자꾸 마셔대니 엄청 마른데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더라. 감기가 걸렸다고 하는데 발음도 뭔가 이상하고, 제정신도 아닌 것 같고. 어쩌다, 어쩌다가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젊을 적에 저보다 못하던 애들은 다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몹시 한스러워했다.
문자 메시지함으로 들어갔다. 오타와 내용을 봐서 취중에 보낸 것이 틀림없는 메시지들, 그리고 보내려다 말아서 임시메시지로 남겨진 메시지들이 잔뜩 있었다. 평범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욕설이 다수 있었고, 돈 문제 관련 알력들도 몇 개 눈에 보였다. 그중 유독 마음을 건드린 문자가 하나 있었다. 분명 술을 먹고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못 보낸 문자같았다.
'형님 다 그만두고 아빠어머니 곁으로 따라갈라요.'
어머니에게 굳이 이 문자는 보일 필요는 없었다. 휴대폰을 껐다.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대서 마음을 안 좋게 아느냐, 네가 술 안 마시고 전화하고 이야기하면 다들 얼마나 좋아라 할 건데 왜 그러느냐, 어머니가 삼촌을 달래며 물었다. 삼촌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너무 외로워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삼촌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을까. 삼촌에게 인생이란 어떤 빛깔과 냄새였을까. 술은 쓴 맛이 났을 테고, 술만 마실 수는 없으니 뭔가를 씹었을 테고, 술이든 안주든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 뒤엔 배가 찼을텐데. 술병을 만지면 차가웠을텐데. 엄마아버지가 그립고 또 외로워서 술을 자꾸만 마셨던 것일까. 술을 마실수록 눈에 띄게 작아지고 약해지는 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카가, 그리고 질려버린 사람들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형들과 누나들, 조카들을 떠올릴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뒤틀리며 망가져가는 시간들 안에서 어떤 기분으로 잠을 자고 깨고 했을까.
시골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온 친척들이 그 근처에 살던 시절이라 자주 거기 모였다.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가축들을 키웠고 할머니는 식당을 운영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식당일이라면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허름하지만 규모는 꽤 큰 식당이었다. 큰 마당이 있고 큰 식사모임을 위한 별채가 있었다. 뒤쪽으로 본채가 있었다. 본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었다. 집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올라가서 앉을 수 있는 큰 상이 중앙에 있고, 상 위에는 온갖 물건들이며 담금주며 하는 것들이 놓여있었고, 그 옆으로는 가족들이 사는 방들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큰방이 있었고, 중앙에는 넓은 방과 이불들이 있었다. 거실에서 한번 더 들어가면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회색빛 복도가 있었는데, 왼쪽에는 옥상으로 가는 계단과 방이 하나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또 다른 방이 하나 있고 더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었다. 집 어디서든 바로 마당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곳은 할아버지가 주워온 조약돌들로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영정 사진을 들고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중 당신께서 손수 그곳을 하나하나 다 지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당에서 골목쪽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아래로 큰 하천이 흘렀다.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거기서 물고기를 자주 잡았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내려가면 큰 공원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뛰어다니면서 공도 차고 곤충채집도 하면서 놀았다. 언젠가 막내삼촌과 공원에서 공을 찼던 기억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 혼자 거기 계실 이유가 없었다. 집을 허물었다. 다시는 그 마을에 갈 이유가 없었다. 할머니는 시내로 나와 아파트에 살게 되셨다. 그리고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며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막내삼촌이 시내의 할머니 집에 머물면서 할머니의 대소변부터 모든 수발을 다 들었다고 한다.)
다른 형제들이 모두 출가한 후 삼촌은 거실에 바로 붙어있는 중앙의 큰 방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하루는 거기서 놀고 있다가 옷을 갈아입는 삼촌의 등에서 검은색의 현란한 문신을 봤던 기억이 난다. 역시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내겐 길 잃은 추억만이 남아 거처를 구하는데 어디에도 몸 부빌 곳이 없다. 그래서 기억들이 발버둥치다 하얗게 얼어붙어 이내 사라져버리곤 한다. 지금도 잠자리에 누우면 시골 집의 초록색 철문과 마당을 가득 채운 조각돌 새벽녘의 개구리 소리가 선명하다. 하물며, 막내삼촌도 그 마을에서 그 집에서 그 공원과 골목에서 정말 많은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삼촌에게도 당연히 유년시절이 있었겠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이 허물어지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셨을 때 삼촌의 추억들은 어디로 가야 했던 것일까? 더불어 살 가족이 없던 삼촌은 양 한 마리 없는 목동이 되어 과거 속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 아닐까? 양이 아니라 자기가 먹을 풀과 시내를 찾아서? 그렇다면 삼촌은 목자가 아니라 길 잃은 양이었던 셈일 게다.
과거. 삼촌은 결국 과거에서 벗어나오지 못했다. 감히 추측하건대 현재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불러들이기 위해 술을 마셨을 것이다. 동생은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막내삼촌은 아직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세요. 삼촌 말들 들어보면 아직도 옛날에 사시는 것 같아요." 이 말을 전해들은 다른 삼촌은 정확한 얘기라고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삼촌이 죽었다.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술로 술로 스스로를 인도하던 삼촌은 별 하나 없어 칠흑처럼 깜깜할 세계로 들어갔다. 아니면, 이 세상이 애초에 삼촌에게는 너무나도 깜깜했던 것은 아닐까. 과거가 당신 안에서 너무 커다랬던 까닭에, 빛 한 줄기 없었던 것은 아닐까. 외로웠다는 것은 어두웠다는 의미였던 것일까.
삼촌은 죽었다. 웃음이든 주정이든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기약도 할 수 없게 되었고,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짐작마저 무용한 것이 되었다. 아빠어머니를 찾아서, 모두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인데도 서둘러서 떠났다. 슬프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이다. 기분은 눈물을 흘린 것 같기도 하고. 내일 할아버지 할머니의 묏자리 근처에 삼촌을 화장한 납골을 안치한다고 한다. 거기서는 삼촌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헤맬 필요가 없기를 기도한다. 그게 전부다. 전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