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업에는 사유가 개입할 '틈새'가 희박하다.
종이 위 늘어놓았을 때 아무 감흥 없는 문장의 집합도 가락을 붙이면 시가 된다. 반대로, 좋았던 노래 가사에서 음정의 얇은 막을 걷어내면 감정의 울림이 소멸하곤 한다.
어째서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가설이 있다. 감정의 반향은 노래의 지연(delay) 효과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 그냥 읽었을 때 10초 남짓 걸릴 문장들을 선율에 태워 30초 동안 발음하기 때문에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시간을 끌기 때문에" 감정이 증폭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난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하지만 그러려면 오래 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연인의 갑작스러운 침묵과 마주하면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인다. 연설중이던 리더의 침묵은 청중에게 가장 큰 동요를 일으킨다···.
요컨대 어떤 효과를 위해서는 틈새가 필요하다. 틈새를 벌리는 가장 좋은 테크닉은 이렇듯 시간을 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정의하건대 노래란 의미 전달의 끊임없는 지연에서 오는 쾌감이다. 반강제로 주어진 여백 속에서 감정과 생각이 움직인다. 별 것 아닌듯 해도 기억에 남기 쉽다. 정확히 이 지점이, 내가 처음 F&B 산업으로 이직했을 때 당황했던 근본 이유였다. 이 바닥은 틈새가 좁다.
수백 개 종류(SKU) 식음료 품목들을 이해하고 관찰하며 관리한다. 이전까지 브랜드라는 큰 실체가 중요한 도메인에 있었던 탓일까, 개별 품목의 존재란 참으로 덧없다는 느낌이었다. 몇 백 원의 이익을 남기고 사라진다. 한번에 수백 수천 개가 움직이니 개별 품목의 존재감은 오로지 장부 위에서 어렴풋하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얼마 후 식탁에 오를 것이다. 이윽고 모습을 완전히 감추기까지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겠지. 씹히고 삼켜져 위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한 순간까지.
감상적 읊조림을 위한 묘사가 아니다. 요점은 식재료든 음식이든 소비자에게 인식되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이다. 틈새가 좁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요식업의 프로덕트는 사유될 시간이 부족하다. 식탁 위에서 수 분 내 빠르게 마모된다. 순식간에 끝나는 노래이다. 각인되고 감정을 자극할 '확률'이 낮다. 반대로 오늘 저녁 구매한 로션을 생각해보자.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몇 주 몇 달은 지속적으로 인식된다. 소유의식도 확실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감상과 스토리가 만들어질 여유가 있다.
요식업의 트렌드가 빠른 것은 개별 품목들의 수명이 짧기 때문은 아닐까. 많은 SKU들의 물량공세로 식품산업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물량으로 틈새의 부족을 채워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 위에서 음식은 금새 사라진다. 지연효과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바이럴 마케팅을 통한 반복이 중요하다. 짧은 틈새들을 모아 괜찮은 간격을 만들어야 한다. (바이럴은 어쩌면 요식업의 음악과도 같다.) 더 나아가 요리란 결국 일종의 명상 행위일지도 모른다. 식재료의 지연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식품산업에서 어떤 고단함을 느낀다. 품목들의 소용돌이와 영업사원들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빠른 계산들을 보고 있자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적혈구들의 현란한 춤을 보는 느낌이다. 존경스럽다. 결국 빠르게 사라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식재료와 음식들. 그 얇은 층을 겹겹이 쌓아올려 이익을 내는 산업. 최대한의 지연 효과를 창출하는 마케팅 전략. 이 산업은 작은 음표들을 수집하는 채굴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