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음이 힘든 날에는 뮤지엄에 가요. 뮤지엄에 가면 그 무엇보다도 위로가 되서요. 뮤지엄에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보다보면 그렇게 마음이 치유되고 위로 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이번주에 회사에서 일이 (라고 쓰고 사람이라고 읽...) 힘들어서 뮤지엄에 다녀왔어요.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 위치한 노구치 뮤지엄 (Noguchi Museum)이란 곳이에요. 이곳은 이사무 노구치라는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에요.
혹시나 더 자세히 궁금해하실까 해서, 노구치 뮤지엄이 어떤 곳인지 설명을 책에서 가져왔어요.
노구치 뮤지엄은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인 이사무 노구치가 1985년에 그의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하고 보관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디자인하고 설립한 이사무 노구치 재단과 가든 뮤지엄을 말한다. 이 뮤지엄은 총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야외에 조각 공원이 있다.
그는 미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지냈다. 세계 대전 이후 일본에서 자란 그는 일본이나 미국,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의 미국인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길러주고 후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동양이 갖는 신비로움과 단순함과 절제의 미를 세계에 전해준 예술가이다. 그는 조각가였고, 무대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램프와 같은 산업 제품과 가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 아이템은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판매된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뉴욕의 현대미술이야기" p141-143)
제가 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2년전 쯤이었을 거에요.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림에만 관심이 있었지, 조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뮤지엄에 가도 조각 부분은 제대로 본적이 없어요. 휙하고 지나가곤 했죠.
저의 조각에 대한 관심은 필라델피아에서 MBA 생활을 할 때, 필라델피아 로댕뮤지엄 (Philadelphia Rodin Museum)에 방문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이곳은 프랑스 파리 로댕뮤지엄을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로댕 작품을 가진 뮤지엄이에요.
제가 꽂힌 작품은 뭐였을까요? 대중적으로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 이나 "지옥의 문", "키스" 가 아니었어요.
바로 이 조그마한 손 조각이었어요.
이 작품은 "The Cathedral"이란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충격받아서 한참을 가만히 멍하니 바라봤어요. 두 손이 맞닿으려는 그 찰나의 순간의 설레임을 조각상에 담다니. 그 손 끝의 설레임이 마음 속 깊이까지 전해와 나의 마음까지 설레게 하다니.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하염없이 바라봤어요. 그때부터 였어요. 조각을 사랑하게 된 것이.
그래서 유명한 조각가인 이사무 노구치의 뮤지엄에 가는 길이 너무 설레더라구요. 노구치는 어떤 조각을 만드는 예술가일지 궁금했어요. 노구치 뮤지엄은 제 기대 이상으로 멋졌고, 제가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는 뮤지엄 Top 3가 되었어요. (나머지 두군데는 다른 포스팅에서 천천히 소개해드릴게요)
저는 뮤지엄에 방문해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그들과 대화를 하려고 해요. 그래서 뮤지엄에 갈 때는 최대한 여유롭게 시간을 잡고 혼자서 가요. 특히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요. 나와 그 예술가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요. 마음이 힘들었던 저에게 노구치가 오늘은 세가지 위로을 건내네요.
아래 갤러리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돌맹이 같은 조명이 보이세요? 저는 그 조명에 매료되서 저 조명을 한참을 바라봤어요. 멀리서 보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데요, 가까이가서 보면 저 조명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조명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이에요. 어떠세요? 너무 충격적으로 창의적이지 않아요?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저 돌 조명의 모습과 그 조명이 주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져요. 저는 이 조명을 보면서 내가 지금 사는 삶의 모습도, 그 삶 속의 경험들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어요.
그러니 지금 힘들더라도 조금만 발자국을 옮겨서 다른 관점에서 봐보라고 노구치가 말해주더라구요. 그러면 확연히 다른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구요.
저는 아래의 조각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멀리서 볼 때는 무슨 옷걸이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여러가지 형체들이 서로를 꼬옥 껴안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다양한 형체들이 (다양한 경험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어요. 자세히 살펴보면 따스한 포옹 같아 보이는 행복한 형체도 있고, 가위처럼 보이는 슬픈 형체도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함께 꼬옥 퍼즐처럼 맞춰져서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게 참 신기했어요.
나의 행복한 기억과 슬픈 기억이 퍼즐처럼 이렇게 언젠가는 맞춰지게 될거라고 노구치가 말해주는것 같더라구요. 그러니 그 어떤 순간이든- 행복한 순간이든 슬픈 순간이든- 그 모든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라구요.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작품인 나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이들은 어느 순간 뒤를 돌아 보았을 때 아래의 작품처럼 멋지게 맞춰질 것이니까요.
뮤지엄 일층에는 노구치가 돌을 가지고 시도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요. 노구치는 돌의 재질, 색상, 모양 등을 가지고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해요. 단순히 한가지 스타일만을 가진 돌 작품이 아니에요. 마치 여러명의 다른 예술가들이 전시를 해둔 것 마냥 작품들의 느낌이 확연이 달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작품들이 노구치 한 사람이 만든 작품들이라니. 한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는지. 정말 감탄 그 자체였어요.
예를 들어서 아래의 두 작품은 비슷한 느낌이죠? 색상과 재질은 다르지만, 작품이 주는 표면의 느낌이 맨들맨들 부드러워요.
아래의 돌 작품들은 어때 보이세요? 뭔가 좀더 표면이 오돌토돌하고 살짝은 거친, 무언가 정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돌"의 본질 그대로를 최대한 살린 느낌이지 않으세요? 위의 작품들과 느낌이 확실히 다르죠.
아래 작품들도 위의 작품들과는 다르죠. 아래 작품들도 보는 작품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돌의 재질과 색감이 달라져요. 겉으로는 맨들맨들한 재질 같아보이지만, 안에는 굉장히 거칠고, 또 뒷면은 다른 면들에서 보이던 검정톤이 아닌 주황색톤의 다른 재질로 이루어져 있더라구요. 하나의 돌맹이 안에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함게 표현한 것인지.
아래 작품들에는 돌의 표면에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구멍을 뚫기도 하고 길게 자국을 남기기도 하구요. 정말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 그의 다양한 시도와 창의성을 보면서 몇번 시도해보고 좌절하고 주저 앉았던 저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어요. 나는 어쩌면 지금 맨들맨들한 표면의 돌만들기 하나에만 너무 꽂혀서 이것만 내가 시도해보고 잘 되지 않는다고 혼자서 좌절한 것은 아닌지. 돌맹이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도 다양한 도전을 해볼 수 있는데, 나도 더 다양하게 내 삶속에서 도전을 해보라고 노구치가 말해주는것 같았어요.
이렇게 노구치와 한참을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뮤지엄 직원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하네요. 뮤지엄 이층은 절반도 못봤는데 아쉬웠어요. 나오는 길에 아래 작품을 보며 노구치의 창의력에 다시한번 감탄하고 왔어요. 단순한 평면의 벽이 아니라, 벽이 마치 파도의 물결처럼 요동치는 느낌이죠? 벽이 파도의 물결처럼 금방이라도 일렁일 것 같아요. 노구치, 너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인거니. 정말이지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구나. 다음에 곧 다시 와서 마저 노구치와 대화해야겠어요.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퀸스보로 다리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감사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삶에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이 되어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말에 푹 쉬고 다시 힘을 내서 일을 해야죠. 제가 겪는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멋진 조각의 원료가 되어서 언젠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맞춰질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