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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의 빛글 Nov 27. 2024

기독교적 가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명리학의 재해석

운명이 결정되었다면, 노력 안해도 되는가?

기독교인이나 일반인, 혹은 명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명리학을 운명 결정론으로 보고, 노력을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사주 명리학은 운명결정론처럼 보이지만, 노력 없이는 자기가 갖고 태어난 사주의 그릇을 채우지 못합니다. 또한, 같은 사주라도 태어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1. 사주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

"사주대로 산다"는 말의 오해와 실제

사람들이 "사주대로 산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서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리학은 사람의 성향, 강점, 약점, 환경 등을 이해하는 도구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성격적으로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할 수 있는데, 이는 사주에서 나타나는 성격적 경향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창의성을 발휘할지, 아니면 억누를지는 환경적 요인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2. 사주대로 사는 사람도 노력을 한다

사주가 사람의 성향과 강점을 알려주는 지도 역할을 한다면, 그 지도를 활용해 어디로 갈 것인지는 노력과 선택의 문제입니다. 사주에서 나타난 직업적 경향이 맞는다면, 그 직업에서 더 빛을 발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결국 본인의 몫입니다.

따라서 "사주대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강점과 성향을 이해하고, 이를 더 잘 발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3. 운명 결정론과 운명 개척론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운명 결정론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부정된다고 느껴 거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잘 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노력해서 이룬 것인데, 사주 때문이라고 한다면 내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리학에서 말하는 운이 정해진 결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삶의 흐름과 환경을 이해하는 도구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람이 강한 날씨에 바람막이를 준비하는 것은 운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일 뿐,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그 바람이 우리를 완전히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운명은 개척되고 개척해야 할 것 같지만,  때때로 흐름에 순응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이는 기독교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믿음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과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특성을 깨닫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4. 운명과 자유의지의 조화

자유의지는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혹은 사주)이라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선택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의 영역과도 일치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내가 선택한 것이 곧 하나님이 주신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명리학이 결정된 운명을 분석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나의 성향과 환경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돕는 도구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운명을 개척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은 자신이 가진 성향과 환경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명리학에서 말하는 사주의 흐름, 운에 따른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노력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명리학은 사람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5. 운명은 도구, 노력은 선택

명리학은 "삶의 흐름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도구"로 운명 결정론과 운명 개척론을 조화롭게 합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계절을 이해하고 씨를 뿌리는 것이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지, 그가 게으르거나 운명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흐름을 이해하고 적절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수확을 얻은 것입니다.

명리학도 이와 같습니다. 삶의 흐름(운)을 이해하고 준비하며, 이를 통해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명리학은 사람의 성향과 강점을 이해하고, 더 나은 결정을 돕는 지혜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길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축복입니다. 명리학은 그 길을 이해하고 실수를 줄이도록 돕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향과 환경을 활용해 성공합니다. 

명리학은 성공한 사람의 노력과 성과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타고난 강점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결국 성공은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6. 결론

명리학이 운명 결정론이라고 한다고 해도 노력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명리학은 삶의 흐름과 성향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더 나은 선택과 결과를 이끌어내는 도구입니다. 

명리학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흐름을 이해하고 계획하는 도구로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도구로써 우리의 자유의지와 노력의 결실을 돕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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