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에 친구들과 튀르키예 여행을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추울 때 여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몸은 추위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이 그렇게 잡혔는데 어떻게 하나? 그냥 가야지. 11월이라는 날씨에 대비해 최대한 따뜻한 옷으로 준비했다. 친구들이 사진 찍는 것을 대비하여 스카프를 다양하게 챙기라고 했다. 옷을 많이 가져갈 수 없으니 다양한 연출을 위해서는 스카프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집에 있는 스카프 3장을 챙겼다. 현지의 날씨는 많이 춥지 않은 늦가을 날씨였다. 지역마다 온도 차이가 컸고, 당연히 일교차도 심했다. 지중해 유람선을 타러 가는 날 아침은 조금 쌀쌀해서 스카프를 둘렀다. 세련된 친구가 내가 두른 스카프와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기가 가지고 온 목도리(?)를 둘러 주며 “잘 어울리네. 이 거 빌려줄게.”라고 했다. 이 목도리는 삼각형 모양의 베이지색 스카프였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가는 털실로 짜인 니트였다. 거울을 보니 내가 입은 옷과 훨씬 잘 어울렸다. 목에 직접 닿는 느낌이 털실이라 따가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촉감이 보들보들했다. 그리고 매우 가벼운 느낌이라 더 좋았다. 나를 잘 챙겨준 친구가 고마웠다. 들뜬 마음으로 배를 타고 나갔다. 바람이 부니 조금 추웠다. 친구가 내 목에 둘러 준 목도리는 열 일을 하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 친구에게 그 목도리가 너무 좋아서 집에 가면 그것을 떠 봐야겠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뜨기는 뭘 떠. 그냥 사.”라고 했다. 이제 우리 나이에 고생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고 웃으며 말했다. “사? 그런데 떠 보고 싶어서~”
여행의 피곤함이 가시고, 목도리를 뜨기 위한 실을 사러 동대문으로 향했다. 동대문시장 지하상가에는 털실 파는 곳이 많이 있었다. 수 없이 동대문 시장을 갔어도 털실 파는 곳에 눈길을 준 적은 없었다. 나는 어릴 때 하도 뜬 옷을 많이 입어서 니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털실로 옷을 떠서 주셨었다. 언니 옷도 당연히 털실로 뜬 옷들이었다. 언니가 커서 그 옷을 입지 못하게 될 때 그 옷을 물려 입었다. 그 니트 옷에 구멍이 나면, 그 옷을 푸셨다. 풀어진 털실은 꼬불꼬불 라면 같았다. 이때 우리 엄마는 털실에 김을 쏘여 꼬불한 털실을 쭉 펴는 마법을 쓰셨다. 쭉 펴진 털실과 가지고 계시던 여분의 실을 콜라보하여 화려한 무늬를 넣어 새로운 옷을 떠 주셨다. 이 옷을 입고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선생님이 “예쁜 옷을 입었네”라고 관심을 주셨었다. 심지어 길 가던 모르는 사람도 “이 거 예쁘네요. 좀 봐도 돼요?”라고 하기도 했다. 아마도 엄마가 떠 주신 옷이 다른 사람들 눈에 예뻐 보이는 훌륭한 옷이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싫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시장에서 사는 옷을 입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성인이 된 이유로 니트 옷은 입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니트 옷을 보며 예쁘다고 말해도 거기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털실을 사러 동대문 시장에 갔다. 무슨 바람이 세게 분 걸까? 여행에서의 내 목에 둘러졌던 가볍고 따뜻했던 느낌이 강했나 보다. 하하하.
동대문시장 내의 털실 가게 이곳저곳을 돌며 실을 구경했다. 가게 안에는 간이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뜨개질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곳 동대문 시장 털실 가게의 시스템은 상점에 걸려 있는 작품을 고르고 털실을 사면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뜨는 방법을 공짜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란다. 털실가게마다 샅샅이 뒤졌으나 어떤 가게에도 내가 원하는 그 목도리 형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그 친구의 목도리 사진을 주인에게 보여주며 이것을 뜨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보시더니 사진만으로 뜨는 방법을 알려 주기 힘들다고 하시며 다른 스타일을 추천하셨다. 그 목도리에 꽂혀 있어서 그런지 사장님이 추천하는 스타일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실의 가격만 묻고 나왔다. 당연히 시장에 가면 프로 뜨개질러들이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이왕 맘먹고 시장에 왔으니 아무 목도리 라도 떠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장을 더 돌아보았다. 그때 마침 삼각형 형태의 큰 숄이 보였다. ‘저런 무늬가 아니긴 한데 아무튼 삼각형 모양이니까.’ 여기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사장님께 사진을 보여주며 그 목도리를 뜰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물었다. 내게 돌아오는 답은 “어려워요”였다. 이제 더 돌아다닐 힘도 없었다. 이쯤에서 나와 타협했다. ‘삼각형 모양의 같은 느낌의 비슷한 색의 털실로 떠 보자’였다. 사장님은 빨간색 코바늘 3호와 fox라고 쓰인 오트밀 색의 실 6묶음을 꺼내셨다. 목도리 1개만 뜰 거라 이렇게 많은 실은 필요하지 않아도 6묶음이 1 세트라 사야 한다고 하셨다. 가격이 8만 원. 실을 처음 사 보는 터라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분위기에 휩싸여 구매했다. 코바늘이 매우 예쁘기는 했지만 가격이 1만 원이라고 하니 더 찝찝했다. 무를 수 없는 분위기 속에 9만 원을 결제했다.
나도 뜨개질을 배우는 분들의 무리에 들어갔다. 사장님은 삼각형 모양의 목도리 뜨기 방법이 그려진 프린트물 1장을 주셨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코바늘 뜨기 기본을 배운 경험이 있기에 다 알아볼 수 있었다. 보고 그대로 떠 보라고 하시며 시작점을 알려 주시고 코 늘려가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눈도 침침해지고 앉아서 뜨개질하고 계신 분들의 수다로 집중력이 흐려졌다. 배도 고파졌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라는 이유는 충분했다. 사장님께 내가 교본을 보고 뜬 몇 단을 보여 드렸다. “그렇게 떠 나가면 돼요.”라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짐을 싸서 집으로 왔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바로 앉아서 뜨개질을 했다. 조금씩 불어나는 단을 보며 뿌듯했다. 좋지 못한 습관대로 멈추지 못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까지 떴다. 저녁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뜨개질을 했다. ‘쉽네 뭐~'라는 생각으로 코를 줄여 가야 하는 시점까지 떴다. 뜨다 보니 뭔가 무늬가 맞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 틀린 것인지 보고 또 보았다. 교본을 보고 그대로 떠야 하는데, 뜨다 보니 나름 규칙이 느껴져 내 맘대로 뜬 것이다.
‘이런 이런 어쩌면 좋아? 나의 소중한 시간과 노동이 헛 것이 되다니! 아이고 아까워라. 풀어야겠지? 삼각형 형태는 만들어질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뜰까?’
복잡하고 허탈한 생각을 뒤로하고 하루 반 이상의 시간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꼭 해야 하는 일만 후딱 해치우고 뜨개질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교본을 보고 꼼꼼하게 보고. 교본을 보고 뜨는데도 또 잘 못 떠서 풀어야 하는 시점이 여러 차례 있었다. 구멍을 대각선으로 나게 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았다. 교본에 첫 단부터 끝 단까지 모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간 생략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헷갈렸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팠지만 결과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소파에 앉아서 뜨다가 바닥에 앉아서 뜨다가 식탁의자에 앉아서 뜨다가 물 한 잔 먹고 뜨다가. 오후 10시쯤 완성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친구가 빌려줬던 목도리에 버금가게 내가 뜬 목도리도 훌륭했다. 목에 둘러보니 색도 잘 어울렸고 사이즈도 적당하고 촉감도 좋았다. 힘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복습할 겸 똑같은 모양으로 1개 더 떴다. 실수를 많이 한 만큼 공부가 되었는지 좀 더 수월하게 목도리가 완성되었다. 딸에게 선물했다. 내가 만든 것에 관심 없는 딸이 예쁘다고 했다. 흐뭇하다. 좋다.
어쩔?
니트를 좋아하지 않아 전혀 뜨개질에 관심이 없었는데, 뜨개질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운동하고 나가서 돌아다니는 취미활동을 해야 한다는데, 이렇게 꼼지락거리는 활동이 좋으니 어쩌면 좋아. 친구와 수다의 시간은 1순위로 두고 있지만, 운동 및 산책은 꼼지락거리는 취미활동에 밀리는 것이 걱정된다. 이러다가 뜨개질도 나의 취미생활 영역으로 들어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뜨개질 활동이 재미있었다. 좋았다. Good Job!